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작가 최인훈이 손녀 앞에서 벌을 선 까닭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주기 맞아 딸의 회고 산문집 나와

작가 아버지 조명한 ‘회색인의 자장가’

기일인 23일엔 ‘추모의 밤’ 행사도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딸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위대한 작가의 독자가 되는 것은 행복한 노릇이지만, 그 자식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로 행복할까.

“나는 복잡한 유년을 보냈다”고, 최인훈의 딸 최윤경(45)씨는 썼다. ‘내 아버지 최인훈과 함께했던 날들’이라는 부제를 단 산문집 <회색인의 자장가>(삼인) 도입부에서다. <광장>과 <회색인> <화두>의 작가 최인훈의 1주기(7월23일)를 앞두고 나온 이 책에서 윤경씨는 아버지 최인훈에 얽힌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시간 순서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풀어 놓는다.

지성과 관념의 작가 최인훈은 딸이 어린 나이일 때부터 바깥 현실과 구분되는 또 다른 현실로서 ‘머릿속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외적인 현실과 독립적이고 대등하게 추상적 현실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바깥 출입을 좋아하지 않았”고, 집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고 책만 읽었”다. “식탁에서도 늘 문학과 예술과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는 때로 욕설이 포함된 신랄한 비평을 곁들였고,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 <뽀뽀뽀>는 유치하다는 이유로 시청을 금지당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인훈은 딸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어렵고 복잡한 얘기는 아빠가 많이 했으니까, 윤경이는 이담에 그냥 쉽고 재미있는 글만 쓰면 되지”라고 부담을 덜어주듯 말했지만, 딸은 자신이 아버지 인생에서 “사건이 못 되고 있었다”는 판단으로 괴로웠다. ‘Girls, be ambitious’(소녀들이여, 야망을 지녀라)라는 영어 문장을 써 가며 딸을 독려하던 아버지는 동시에 딸이 조금만 아프거나 날이 춥거나 덥거나 하면 학교에 가지 말고 쉬라고 진심으로 권하고는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몰래 친구네 집에서 놀던 딸을 귀가시켜서는 자신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실린 책을 건네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성탄절에 외박을 하겠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옥아 넌 교인이던가? (…) 정신이 성한 사람이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느냐. 넌 남의 제사에 가서 곡을 해본 적이 있느냐?”

바깥 출입을 싫어한 최인훈은 딸의 졸업식에도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가족 여행을 간 적도 없었다고 윤경씨는 기억한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인가는 자전거 한 대를 빌려 와 딸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는지라 딸은 “온 동네 아이들을 다 골목에 불러 구경시키고 싶었다. 나도 아빠가 있고, 아빠와 이런 것도 한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실제로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신기한 구경’을 했다.

한겨레

딸에게는 엄하면서 동시에 과잉보호를 했던 최인훈이 손녀를 보자 ‘표변’했다. 딸이 결혼하는 것도, 혹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은 권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딸이 아이를 낳자 “무조건적 사랑의 얼굴” “한없이 약하고 무방비인, 사랑만인 표정”으로 손녀를 대했다. 어린 손녀들이 집에 와서 잘 때면 “숨을 잘 쉬고 자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신의 방과 손녀들이 자는 방을 오가며 아이들 코에 귀를 대고 쉬는 숨을 확인하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큰손녀 혜규가 네댓 살 무렵에는 서재 방문 뒤에 손을 들고 웃으며 벌을 서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다. 아니, 손녀가 아니라 최인훈이! 손녀가 불렀는데 할아버지가 늦게 대답했다든가, 삶은 밤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는 속도가 늦었다거나, 유치원에서 유행하는 농담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죄목이었다.

한겨레

<회색인의 자장가>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만이 아니라 독자가 잘 몰랐던 인간 최인훈의 면모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게 한다. 한반도 북쪽 끄트머리 회령 출신인 그는 마당에 쌓인 눈을 아까워해서 치우지 못하도록 했다. 종류와 무관하게 꽃을 좋아했고 생마늘과 된장을 즐겨 먹었다. 가곡을 즐겨 들었으며, 폐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단번에 담배를 끊었다. 새로 글을 쓰면 식구들에게 돌려 읽혔으며, ‘기억’ ‘시간’ ‘민하다’ ‘그럴듯하다’ ‘던적스럽다’ 같은 말을 즐겨 썼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 전쯤 딸이 안부 전화를 하자 최인훈은 뜬금없이 “나는 좋은 가장이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떠난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한창일 때 차를 몰고 가을 풍경 속을 지나던 딸은 어느 순간 ‘아버지를 이겼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나는 살아서 이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이 너무 무섭고 죄스럽고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딸은 사반세기 전 소설 제목 ‘화두’에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때 아버지가 느꼈을 외로움에 뒤늦게 생각이 미쳐, 이 책을 쓰던 카페 한구석에서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애증과 혼란이 앙금으로 가라앉은 뒤, 딸은 이런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아버지는 내게 영원한 신화이다. 극복하고 싶으면서 간직하고 싶은 신화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에는 최인훈이 딸 윤경씨 및 손녀들과 찍은 사진들, 그리고 둘째손녀 은규가 그린 삽화가 실려 있다. 한편, 23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다리소극장에서는 ‘작가 최인훈 1주기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린다. 연극배우 박정자와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삼인 제공

한겨레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