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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3000원짜리 옷이냐?" "노래해봐"…'직장 내 괴롭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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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괴롭힘 금지법 오늘부터 시행…현장선 "기준 애매"

"CEO의 괴롭힘 근절 선언,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

사회 통념상 타당한 업무 지시·독려는 괴롭힘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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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식은 맛있었냐?"

용역업체에 다니는 A씨는 중간관리자 B씨가 보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날 사내에서 A씨가 간식을 먹는 모습을 본 직원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B씨는 그동안 회사 내 CCTV 모니터를 통해 직원들이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을 관찰했던 것. 그는 직원들의 움직임을 실시간 감시하고 이와 관련해 경고성 메일,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 사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다.


#. A 과장은 직속 부하 직원인 B 사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질책하려다 '아차' 싶었다. 오늘(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등 개정 3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무 태도가 안 좋은 직원을 훈계하거나 업무상 실수를 반복하는 직원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괴롭힘에 해당할까. 현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협조를 받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


-어디까지가 직장 괴롭힘인가.


▲직장 괴롭힘으로 인정되려면 원칙적으로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①지위ㆍ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것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 ③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나쁘게 하는 것이다. 요건 ①에 해당하려면 행위자가 회사 내 직위ㆍ직급뿐만 아니라 나이, 출신 지역, 근속연수, 직장 내 영향력 등에서 상대방이 저항하기 어려운 가능성이 있는지 봐야 한다. 요건 ②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사회 통념상 맞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개인적 심부름 등 사적 용무 지시, 폭언ㆍ욕설을 수반한 업무 지시, 집단 따돌림, 의도적 무시 등이 해당한다. 직원들 앞에서 옷과 가방을 지적하며 모욕감을 준 상사,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을 CCTV로 감시하는 상사, 직원들에게 마라톤 연습을 강요하며 훈련에 빠지면 벌금을 내게 하는 행위, 회사 행사 때마다 장기자랑을 시키고 간부들 앞에서 노래를 강요하는 행위 등도 모두 직장 괴롭힘에 해당한다. 요건 ③에 해당하려면 그 행위로 피해자가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받았거나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데 지장이 발생할 정도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사내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 이런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밤낮 없이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창에 개인적인 글을 올리고 "왜 대답이 없냐"고 답을 요구하며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상사가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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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을 변경하지 않으면 오늘부터 처벌받나.


▲10인 이상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ㆍ조치 사항 등을 담아 취업규칙을 개정해 고용노동청에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을 바꾸지 않을 경우 노동청 신고나 사업장 근로감독을 통해 시정 지시가 내려진다. 불이행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취업규칙 변경은 괴롭힘 행위인지를 놓고 노사 간 법적 분쟁을 막는 중요한 예방 조치다. 사내에서 금지되는 괴롭힘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취업규칙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관련 사항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 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 방지 조치 등을 담도록 했다. 또한 고용부는 취업규칙 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사업체를 위해 취업규칙 표준안을 마련했다.


-업무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질책' '꾸중'도 괴롭힘인가?


▲사회 통념상 타당한 수준이라면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독려ㆍ지시ㆍ지도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류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디자인 담당자가 수차례 시안을 보고했으나 상사가 "콘셉트에 맞지 않으니 보완해라"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 디자인 담당자의 업무량이 늘어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상사의 지시는 사회 통념에 어긋났다고 보기 어렵고, 성과 향상이라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행위가 벌어진 상황과 행위 내용ㆍ정도 등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저성과자 명단 공개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저성과자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추후 저성과자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 '낙인 효과'에 따른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괴롭힘 판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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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괴롭힘 예방 교육, 전담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처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 법이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려면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CEO가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메시지를 선언하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인 예방 조치다. 사내에 직장 내 괴롭힘 전담 조직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장 상황에 따라 이미 제도화 된 고충처리위원회,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체계 등을 활용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은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취업규칙에 담을 것을 고용부는 권유하고 있다. 고용부는 앞으로 30인 미만 사업장 등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제도 안내와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센터 운영 사업을 내년도 예산안에 담기도 했다.



세종=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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