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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장님, 속았죠? 사실 저 청소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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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 카운터 한편에 드리워진 커다란 흰색 종이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담배 판매 7월 1일부터.' 종이 뒤 가지런히 진열된 담배를 사지 못해 발길을 돌린 손님만도 제가 머문 30여 분간 5명이 넘었습니다. 사장 이 모(60) 씨의 한숨이 담배 연기처럼 뿌옇게 보일 것만 같았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12월 어느 날 새벽 이 편의점에는 조숙한 얼굴의 한 청년이 들어섰습니다. 담배를 달라는 말에 당시 카운터를 보던 아르바이트생이 매뉴얼대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이 청년은 "신분증을 재발급 중"이라며 신용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찝찝했지만 결국 담배를 내줬습니다.

며칠 뒤 사장 이 씨는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당시 결제된 카드는 도난 카드로 밝혀졌는데 경찰이 카드를 훔친 이 청년을 조사해 보니 만 19세가 안 된 미성년자였던 겁니다. 결국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이 씨 아르바이트생은 검찰에 넘겨졌고, 이 씨 역시 구청으로부터 6월 한 달간 담배 판매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마저도 이 씨가 반성문 성격의 진술서를 쓰고 나서야 두 달을 한 달로 줄인 겁니다. 이 씨는 "담배가 편의점 매출의 절반이라 전년도 6월 매출이 7천500만 원인데 3천300만 원으로 줄었다"라며 "어린애들한테 속아서 팔게 된 건데 장사를 못 할 수준으로 처벌하니까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초 6개월을 일하기로 했던 아르바이트생도 미안한 마음에 일을 그만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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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뚫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

술, 담배를 사려는 청소년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영업 사장님들. 창과 방패 같은 이 구도는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소위 '뚫리는 가게'를 찾으려는 청소년들의 수법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을 찾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바쁜 시간대에 불쑥 찾아오는 것은 예사. 취재 과정에서 만난 편의점주들은 "요즘에는 돈을 주고 정교하게 위조한 신분증을 들고 다니는 애들도 있다"라며 "요즘 애들을 외모만으로 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아무리 꼼꼼하게 확인하려 해도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속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순 호기심에 사가는 건 그래도 양반이죠. 악의적으로 어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도 있습니다. 2015년 11월 인천의 한 편의점주와 돈 문제로 다퉜던 고등학교 2학년 아르바이트생은 편의점을 나오며 계략을 꾸밉니다. 키 190cm에 100kg이 넘는 거구의 친구를 섭외해 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매하게 한 뒤 자진해서 경찰에 신고를 하게 한 겁니다. 업주는 1개월 담배 판매 정지를 받았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30대로 보이는 학생에게 속은 겁니다. 억울했던 점주는 행정처분 소송을 걸었고 다행히도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은 "청소년에게 속아 담배를 판 편의점에 영업정지는 부당하다"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2년 넘는 소송 기간 동안 수천만 원의 손실을 본 해당 편의점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실제 담배를 살 수 없어 발길을 끊은 손님들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담배 판매 정지를 한 달만 받아도 최소 3개월은 여파가 간다는 게 점주들의 설명입니다.

막는 자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주성태(47) 씨는 7년 전 악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던 어느 날 한 청년이 담배를 달라며 위조 신분증과 함께 돈을 내밀었습니다. 며칠 뒤 도난 카드를 쓰다가 잡힌 이 청년의 나이는 겨우 14살. 중학생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 중학생의 거짓말에 주 씨 편의점을 포함 일대 편의점 세 곳이 동시에 한 달간 담배 판매 정지를 받았습니다. 주 씨는 억울함에 변호사 비용 1천만 원을 들여가며 1년여간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중학생은 기소유예, 즉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 주 씨는 자신의 가게에 무려 100만 원을 들여 '신분증 위조 감별기'를 설치했습니다. 신분증에 있는 지문과 구매자의 지문을 대조해 청소년을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주 씨는 자신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편의점도 감별기를 도입할 수 있게 본사에 지원금을 요구했고 일부 받게 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싼 비용과 프랜차이즈별로 보조금 지급 비중이 달라 보급률은 아직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대다수 편의점들은 눈썰미에 의존해 청소년들을 걸러내고 있는 거죠. 어쩐지 막는 이의 방패가 단단해 보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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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량한 자영업자 구제…술은 OK, 담배는 아직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선량한 사장님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도 조금씩 마련되긴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게 술이나 담배를 판매하게 되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과 함께 행정 처분을 받게 됩니다. 이때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변조, 도용한 사실이 입증되거나 폭행, 협박 등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해 불기소 처분이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면해 주자는 조항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법이 그리 섬세하게 적용되진 않고 있습니다. 행정처분은 판매 품목에 따라 관련 법을 적용받는데 술은 식품위생법을, 담배는 담배사업법을 따릅니다. 지난달 12일부터 식품위생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식품접객영업자'에 속하는 식당과 술집 등까지는 청소년에 술을 팔았다고 해도 이들의 속임수가 있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담배사업법은 관련 조항이 없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5월 김현아(자유한국당) 의원이 같은 맥락에서 편의점, 슈퍼 등 담배 판매자들도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술은 억울한 영업정지는 당하지 않게 됐지만, 담배는 여전히 선량한 자영업자들을 구제할 법안이 없는 셈입니다.

● 속인 청소년보다 속은 점주가 더 잘못했다?

문제는 처벌이 여전히 속은 점주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하단 점입니다. 청소년보호법 취지는 말 그대로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것. 청소년이 유해한 물질을 경험했다면 미성숙한 청소년보다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판매자, 즉 어른들이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마련된 선량한 자영업자 구제 방안도 "판매한 건 잘못이니 처벌받아야 하지만 청소년들 잘못도 있으니 처벌은 최소화하자"는 의미인 셈이죠. 정작 이런 유해물질을 사간 청소년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은 어쩐지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겁니다.

물론 청소년도 처벌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면 '공문서 위조죄'입니다.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죠. 벌금형도 없어 간단한 사법절차인 즉결심판 대상도 아닙니다. 경찰은 공문서 위조 혐의가 입증되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당수 청소년들이 초범이고 나이가 어린 점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기소유예란 '죄가 있는 건 맞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세우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일부 재범했거나 죄질이 불량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다수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행정처분으로 수천만 원의 손실을 떠안는 점주들과 달리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니라서 경제적 손실조차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영업 하는 사장님들은 청소년에게도 책임을 좀 더 묻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선량한 자영업자를 구제하는 법안도 좋지만 청소년들이 자신의 잘못에 걸맞은 처벌을 받지 못하면 이 같은 엄연한 범죄행위가 근절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서 한번 다녀가고 학교에서 꾸중 한번 듣고 그만인 수준에서 과연 술·담배를 향한 무한한 호기심이 끊어지겠냐는 겁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편의점주들 모두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아느냐"며 "처벌이 별 게 없다는 걸 경험하면 다시 사러 올 수밖에 없다"라며 재범을 우려했습니다.

지난 10년(2009~2018년) 간 공문서 위조죄로 검거된 청소년은 1만 6천834명. 신분증을 두고 왔다며 속인 행위 같은 건 적용할 혐의도 없어 통계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일각에서 꼭 무거운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의 단순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비행을 막는 것도 '청소년 보호'의 일환이 아닐까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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