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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수애비입니다]③ “사직서 쓰고 평생 육아해” 아빠 구실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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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쓸랬더니 퇴사 압박에 계약직 전환 요구도

제도 미비한 중소기업, 있어도 눈치 보는 대기업

인사 보복해도 벌금 500만 원이 고작, 처벌 강화 법안 국회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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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에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 강 모 씨는 지난해 9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회사 임원으로부터 퇴사를 강요받았습니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사직서 쓰고 육아를 해. 회사가 문 닫으면 닫았지 네 육아휴직은 안 내줄 거다"

강 씨의 전화 통화에 녹음된 임원의 목소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살벌합니다. 이 임원은 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는 협박성 발언도 했습니다.

"야 너 정리하라고 난리인데 뭐하러 정규직에 두냐. ○○○ 과장 육아휴직 쓴다 했다가 급여 한 달 치 받고 그냥 그만둔 거야"

아빠의 육아 참여가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육아휴직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봅니다.

일부 사기업만의 일일까요?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15년째 근무 중이던 A 씨.

지난 2016년 5월 직장에 육아휴직 의사를 밝혔더니, 개발원은 비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내달았습니다.

황당한 요구였지만, 사정이 급했던 A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건을 받아들였는데, 복직하고도 보복성 조치는 계속됐다고 합니다.

원장의 개인 텃밭을 가꾸라는 등 업무와 상관없는 허드렛일을 시키고 퇴사를 강요받기도 합니다.

가정 친화적일 거 같은 외국계 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 한국법인에서도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사 보복이 있었다는 사실이 노조 측 폭로로 밝혀졌습니다.

3개월의 육아휴직을 쓴 남자 직원이 원직 복귀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고,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괘씸죄를 물어 2개월 이상 대기 발령 상태로 뒀다는 겁니다.

정부가 나서서 아빠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지만, 일터에서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일터와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법인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1년간 육아를 위해 휴직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법에서도 보장한 권리지만, 회사에 다니는 많은 아빠는 육아휴직이 여전히 꿈만 같은 소리라고 합니다.

■ 아예 없거나, 있어도 못 쓰는 육아휴직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8' 보고서를 보면 2017년 기준 종사자 수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93%가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던 반면, 종사자 5~9인 사업체는 33.8%만 육아휴직 제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육아휴직 제도조차 없는 겁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쓸 수 없는 분위기는 매한가지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지역 중소기업을 다녔던 이 모 씨는 "자기 연차 쓰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가뜩이나 사람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아빠가 육아휴직 쓰면 평생 육아휴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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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제도가 있는 대기업은 어떨까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조 모 과장. 미취학 아동 둘을 키우고 있는 그에게 육아휴직 의사를 물었더니 "그러고는 싶지만, 육아휴직 제도는 그림의 떡"이라는 대답을 들려줬습니다.

이 기업은 조직문화가 불도저 같기로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제도가 있어도 활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지난해 9월 직장인 6천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도 그랬습니다.

기업 종사자 수 300명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41%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 인사 불이익 가장 무서워

육아휴직을 선뜻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데 눈치를 줘서'가 40%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대체 인력이 없어서(23%), 복직이 어려울 것 같아서(1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휴직 중 줄어드는 월급 때문에(13%)'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줄어드는 월급도 문제지만,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조직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더 무섭다는 얘기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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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셨듯 고용 상태가 불안한 중소·자영업보다는 대기업일수록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고, 사기업보다는 공기업이 대체로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고용 상태가 불안하면 육아휴직은 엄두도 못 내는 직장인이 대다수입니다.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가 육아휴직 사용 비율도 높고 출산율도 전국 1위라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런데 현행법은 인사 불이익에 대한 처벌이 다소 관대한 편입니다.

■ 솜방망이 처벌규정, "육아휴직 의무화해야" 주장도

앞서 말씀드린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요? 최대 500만 원 벌금이 전부입니다.

고용부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소문이 다 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도 튀는 일인데, 퇴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고용부에 신고하기도 어려운 일인 것이죠.

그래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이 지난해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계류 중입니다.

처벌 수준도 강화해야겠지만, 육아휴직 자체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육아휴직제도 남성참여 제고를 위한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소득대체율은 물론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생성하고 또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관련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내 차원에서 육아휴직을 강제해 효과를 보고 있는 일부 기업도 나오고 있습니다.

롯데의 경우 2017년 업계 최초로 전 계열사에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육아휴직을 최소 1개월 이상 사용하도록 하고 정부 보조금에 회사 지원액을 얹어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해주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도입 18개월 만에 사용한 이 제도로 덕을 본 직원이 2천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제도를 일부 기업의 오너십에 기대지 않고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려면 어떤 점이 수반돼야 할까요. 다음 편 기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변기성 기자 (b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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