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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어느덧 피해 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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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 게임업체 A사는 2017년 말 신규 게임 개발을 중단했다. 이 회사는 연간 수백억원대 매출을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올렸지만, 그해 3월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국산(産) 게임에 신규 게임 허가증(판호·版號) 발급을 전면 중단하자 존폐 위기에 놓였다. 매출이 급감하자, A사는 오히려 중국산 게임을 수입해 한국에서 서비스 대행하는 회사로 전환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중국 게임 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 게임업체들은 중국 규제가 장기화되면서 이 회사처럼 신규 게임 개발을 포기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중국 게임 '소녀전선'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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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한국산 게임에 대해 허가증 발급을 중단한 지 2년 4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리니지M·리니지2레볼루션·검은사막·배틀그라운드와 같은 최고 히트작이 등장했지만 정작 바로 옆 세계 최대 게임 시장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예전처럼만 진출했다면 1조~2조원 이상의 신규 시장 창출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게임업체들은 '기회비용'을 상실했지만, 중소 게임 개발사들은 생존을 못하는 상황이다. 게임업계에선 2년 사이에 적어도 100곳 이상이 신규 게임 개발을 포기했거나 아예 폐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게임의 뿌리인 중소 개발업체가 흔들려

중국 당국은 한국 게임에 대해 허가증을 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적도 없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중국 직접 진출길은 막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벤처 투자자들은 게임에 대한 신규 투자액을 줄이고 있다. 벤처투자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이 게임업체에 실시한 신규 투자는 2014년에 1762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엔 1411억원으로 감소했다. 중국 진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투자 감소는 직원 100인 미만의 중소 게임 개발사에 직격탄이다. 한 중소 게임업체 관계자는 "2014~2015년 중국에서 한국 게임 붐이 일자, 우후죽순처럼 중국 시장을 노린 중소 게임 개발사가 생겨났다"며 "최근 1~2년간 이런 게임업체의 폐업이 이어지면서 한국 게임 개발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게임 제작·배급업체는 2016년 908개에서 2017년 888개로 줄었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중국 시장에 직접 못 들어가자, 이제는 중국 업체에 IP(지식재산권)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간 2144억4000만위안(약 36조8000억원)에 달하는 중국 게임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 중국 현지 업체에 게임 개발 권한을 팔고, 사용료(로열티)를 받는 장사에 나선 것이다. 한국 게임업체가 모두 IP 판매에 나오면서, 로열티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협상할 때 '어차피 직접 진출 못 하지 않느냐'며 '갑'처럼 나오는 중국 업체가 많지만, 우리로선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북미·유럽·동남아…돌파구 찾기에 나서지만 아직 성과는 없어

국내 게임업계는 북미·유럽·동남아시아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국내 게임 매출의 70%는 해외에서 나온다. 해외 수입의 40%는 여전히 중국 시장에 의존한다. 예전에 허가증을 받아둔 인기 게임들에서 나오는 수입이다. 앞으로 후속작이 끊긴다고 가정하면, 서둘러 중국 이외의 대안 시장을 찾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대안으로 콘솔(TV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게임기) 게임 장르를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장르인 콘솔 시장은 국내 개발사에 외면받아왔다. 하지만 중국의 PC온라인게임·모바일게임이 모두 막힌 상황에서 북미·유럽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콘솔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넷마블은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를 닌텐도의 콘솔인 스위치 버전으로 개발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캐릭터를 활용한 콘솔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넥슨은 미국 법인에서 콘솔 격투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진출도 활발하다. NHN은 지난 5월 신작 모바일 게임 '라인 디즈니 토이 컴퍼니'를 대만과 태국 등에서 출시했고, 게임빌도 지난해 9월 태국·베트남 등지에 신작 '탈리온'을 내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대형·중견 게임사들은 그나마 새 장르나 신규 시장을 개척할 자금력이 있지만 중소 게임 개발사는 여력이 없다"며 "정부가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중국 정부와 협의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로라 기자(auro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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