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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여기 은행 맞아요? 들어갔다 나갈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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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뽑고 앉아서 환율 변하는 전광판 숫자 보고 있는 게 즐겁겠습니까? 굳이 올 필요 없다는 손님한테 '일단 오세요' 했으면, 최소한 '잘 왔구나' 싶은 즐거운 경험을 드려야지요. 그게 저희가 지점을 이렇게 꾸민 이유입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편 오피스 빌딩 1층에는 서점인지 은행인지 헷갈리는 곳이 있다. 벽면엔 책이 가득하고, 앉아서 책 보고 차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많다. 다만 한쪽 작은 창구에서 은행원 4~5명이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고객을 맞는다. 북카페처럼 꾸며놓은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2호점' 광화문역지점이다. 은행 업무 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이 있던 곳에는 셔터가 내려오고 나머지 공간은 밤 10시까지 온전한 서점이 된다. 차응호 지점장은 "창구 거래가 10% 미만으로 줄었어도 여전히 주변의 항공·해운사 등 기업 손님이나 외교부 등 관가 거래가 아직 있다"며 "이 손님들이 계속 오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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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인 줄 아셨죠 - "일하다 쉬고 싶을 때 잠깐 들르세요. 커피 마시면서 책도 보고, 힐링하다 가시면 됩니다."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뒤편 KEB하나은행 광화문역지점은 서점인 듯 은행인 듯 꾸며져 있다. 대기 시간 동안 비치된 책을 보거나 한쪽에 마련된 공간을 빌려 삼삼오오 모임도 할 수 있다. 책을 쓴 작가들의 '저자 설명회'같은 문화 행사도 열린다. 고객 머릿속에서 '은행을 찾는 건 지루한 일'이라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더 많은 고객이 찾게 하기 위해 꾸민 특화 점포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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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들이 건물 1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2층에 있는 지점도 찾아보기 어렵고 5·6층까지 밀려 올라가기도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터넷·휴대폰 속 '손안의 은행'으로 옮겨간 결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은 입출금이나 자금 이체 같은 금융거래의 절반 이상(53.2%)을 온라인으로 처리했다. 오프라인 지점을 통한 것은 8.8%에 불과했다. 단순 조회 업무는 인터넷 뱅킹을 통한 것이 압도적(87%)이었다. 오죽했으면 올해 초 한 대형 은행이 직원 3분의 1이 빠지는 파업을 벌였는데도 은행 업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돌아갔을까.

은행 지점은 3월 말 기준 전국 6743곳으로 최고치(2012년·7687곳) 대비 12.3% 줄어든 상태. 앞으로 지점 통폐합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제 은행들은 고객과의 접점을 유지하기 위해 꼭 남겨야 하는 지점을 어떻게 탈바꿈할지를 고민 중이다. 갈래는 크게 두 가지. 고객이 많이 찾는 시간대에 은행 문을 열어놓거나, 되도록 한 번이라도 더 찾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라운지로, 서점으로… 은행들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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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국민은행의 옛 서교동지점은 작년 4월 이후 홍대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40년 된 낡은 지점 건물을 부숴 없애는 대신, 홍대 산학협력단에 설계를 맡겨 젊은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 'KB락스타 청춘마루'로 새 단장 한 것이다. 전통적인 은행 업무 공간은 없애고 일하던 직원 20명도 다른 지점으로 배치됐다. 복합 ATM(자동입출금기)만 남았다. 새로 문 연 지하 1층~지상 3층짜리 이 건물에선 콘서트와 각종 공연, 전시, 강연이 시시때때로 열리며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신한은행 홍익대지점도 공간을 카페처럼 꾸미고 미술 작품을 전시하면서 젊은 고객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6년 서울 동부이촌동지점 안에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폴바셋'을 입점시켰고,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지점에선 '크리스피크림도넛' 매장을 결합해 운영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해외에서 더 거세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지점이 카페나 공유 사무실, 강연장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 심지어 아이 때문에 은행 지점에 나오기 어렵다는 고객을 위해 전문 보육 교사를 배치해 부모가 은행 일 보는 동안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한다. 영국 버진그룹 계열 은행 '버진머니'는 지점 공간을 안락한 항공사 VIP 라운지처럼 꾸미고 있다. 호주국립은행(nab)이나 폴란드 아이디어뱅크(IdeaBank), 프랑스 BNP파리바 등은 지점 안에 남은 공간을 깔끔하게 새 단장 하고 지역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커뮤니티 단체 등에 '공유 사무실'로 빌려준다. 어떻게든 사람이 모이게 만들어야 금쪽같은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객님 금쪽같은 시간에 맞춰라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분당중앙금융센터지점 등 5곳은 다음 달부터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닫는다. 종전보다 한 시간 늦게 열고 늦게 닫는 일명 '굿타임 뱅크'다. 주변 기업 고객들이 아침보다는 오후에 몰리는 특성이 있어 고객 수요에 맞게 영업시간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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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장까지 있는 영국 은행의 지점 - '비행기야? 볼링장이야?' 영국 버진그룹 계열 은행인 '버진머니'는 지점 내 대기 공간을 비행기 좌석처럼 꾸미거나 볼링을 칠 수 있도록 레인도 깔아놨다. '은행을 찾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경험을 주기 위한 전략이다. /버진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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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에는 정오에 문 열고 저녁 7시에 문 닫는 은행도 있다. 역시 이곳 지점을 찾는 고객 대부분이 늦은 오후에 많기 때문에 영업시간을 고객에게 맞췄다. KB국민은행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7시에 닫는 2교대 근무 체제의 '9 to 7 뱅크'와, 늦게 열어 늦게 닫는 '애프터 뱅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중국 동포 인구가 많은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동 등지에는 일요일에도 문 여는 '외국인 특화 점포'가 속속 들어서 전국에 40여곳이나 된다.

이렇게 영업시간을 조정한 '탄력 점포'가 작년 말 기준 733곳. 전체 은행 점포의 11% 수준이다. 연말이면 이 숫자가 1000곳에 달할 전망이다.

김은정 기자(ej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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