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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제재품목 北 밀반입 현황’ 등 기밀 74건 2320만원 주고 건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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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무관, 軍기밀 입수하다 귀국조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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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국군정보사령부의 전직 공작팀장 H 씨는 알고 지내던 탈북민 출신 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에게 자필로 쓴 문서를 건네며 타이핑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흘 전 H 씨가 정보사 후배를 통해 빼낸 ‘3급 군사비밀’ 문건을 직접 손으로 옮긴 자료였다. L 씨는 이 자료를 ‘거래서’라는 제목의 한글 파일로 만든 뒤 H 씨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다음 날 H 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당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일본 자위대의 영관급 장교(무관)를 만나 두 번 ‘세탁’된 기밀 자료를 전달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L 씨는 얼마 뒤 동일한 자료를 또 다른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100만 원을 받고 넘겼다.

북한의 미사일 시설 위치 등의 대북 첩보와 북한 정권 내부 동향 등 민감한 우리 군 기밀 자료가 복수의 누설자를 통해 일본 측에 넘어간 것이다.

○ 민감한 대북 첩보 일본에 통째 유출

15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H, L 씨가 일본에 유출한 74건의 기밀 자료에는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의 군사, 외교, 경제 등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 모두 정보사가 수집한 3급 군사비밀이다. 누설될 경우 정보의 출처와 수집 방법이 특정돼 외교 마찰이나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일본대사관 무관들의 국내 군사기밀 수집 행위는 북한이 4, 5차 핵실험을 강행했던 2016년 이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돼 귀국 조치된 일본 무관 A 씨는 2015년 초부터 2017년까지 H 씨에게 접근해 군사기밀 54건을 넘겨받은 대가로 1920만 원을 건넸다. H 씨는 일본 무관에게 건넨 자료가 정보사의 군사기밀이라는 사실을 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누설된 군사기밀의 대부분은 북한 정권과 군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북한 군수공업부의 해외 군사기술 입수 추진’ ‘북한 군단 통화일람표’ 등 북한군 전력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북한의 소형 핵탄두 개발 관련 내용’ ‘북한 무수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지속 이유’ 등 수집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 군 정보 당국의 시각이 담긴 분석 자료도 있었다.

특히 ‘제3국 정보기관에서 분석한 A국 군대 현대화 동향’ ‘A국에서 분석한 북의 수중발사탄도미사일(ULBM) 개발 및 활용 가능성’ ‘G국 국방부의 최근 북한 무기 구매 동향’ 등 우리 군이 파악하고 있는 해외 정보기관의 첩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우리 군의 정보력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였다.

‘고순도 텅스텐 및 알루미늄 합금 밀반입 동향’ ‘A국의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 동향’ 등 북한의 대북제재 품목 밀반입 현황에 대한 자료도 일본에 넘겨졌다.

○ 동료 생사 달린 첩보원 명단 600만 원에 넘겨

군사기밀은 ‘상품’처럼 취급됐다. H 씨는 정보사 후배에게 “용돈 벌이나 하자”며 설득해 2, 3급 군사기밀 100여 건을 빼냈다. 군사기밀 조회 단말기(DITS)에서 확인 가능한 군사기밀을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해 넘기는 방식이었다.

H 씨 후배가 빼낸 자료 중에는 해외에서 신분을 속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명 ‘블랙’ 요원들의 명단과 활동 지역 정보도 있었다. 다행히 국내 정보 당국이 정보 유출 사실을 파악해 요원들을 신속히 피신시켰지만 하마터면 신변이 위태로울 뻔했다.

H 씨는 동료의 생사가 달린 이 자료를 중국 정보기관에 넘겼고 후배에게 대가로 670만 원을 지급했다.

L 씨는 H 씨를 통해 전달받은 군사기밀들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북한 관련 단체가 발행하는 ‘정세 분석 보고서’ 형태로 재가공해 일본에 팔았다. 일본 측은 L 씨와 ‘제공한 비밀자료를 SS, S급으로 나눠 평가해 그 대가를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의 비밀정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신동진 shine@donga.com·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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