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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신율의 정치 읽기] 한일 무역분쟁에 윤석열 사태…靑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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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지나치고 있다. <연합뉴스>


요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문재인정부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게 생겼다. 판문점 회동으로 지지율이 조금 회복되고는 있지만, 이런 지지율 상승세가 어느 정도 유지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최고조를 향해 치닫는 한일 간 갈등이고, 또 하나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이다.

먼저 한일 간 갈등을 보자.

당장은 한일 간 갈등이 대통령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의 시간이 길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일 간 갈등이 당장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외부와의 갈등과 긴장이 국민을 단합시켜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시작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지지율 80%를 넘긴 경우는 케네디 전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 이렇게 딱 세 경우밖에 없다(미국 갤럽 조사 기준). 지지율 80%를 넘긴 경우는 대부분 전쟁이라는 국가 위기와 관련 깊다. 예를 들면 걸프전과 9·11 테러가 역설적으로 대통령 지지율 상승의 동력이 된 것과 같다.

이런 ‘세계 보편적인 법칙’을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모를 리 없다. 7월 21일에 있을 참의원 선거는 아베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른바 ‘평화헌법’의 개정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선거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전체 당선자 중 70% 이상을 획득하면, 아베는 자신의 의도대로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전체 당선자 중 70% 이상을 석권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특정 정당이 70% 이상 당선자를 낸다는 것은 이른바 ‘싹쓸이’를 했다는 의미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이변이 일어나기 힘들다.

이럴 경우 정치적 책략가들은 외부의 적(敵)을 찾는다. 못 찾으면, 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이론을 떠올리면 정치에 있어서 적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적이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우리 의식’이 보다 명확해진다. ‘우리 의식’은 정당이라는 정치적 결사체의 생존을 가능케 한다. 현재 아베 총리의 행동은 칼 슈미트 이론에 매우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절대적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외부와 내부의 적이 필요한데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외부의 적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을 터다.

과거 일본의 외부 적은 북한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북한과 대한민국을 ‘혼합’해 외부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로, 아베 총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7월 5일 BS후지TV에서 말한 내용과 아베 총리가 7월 7일에 한 언급을 들 수 있다. 하기우다 고이치 간사장 대행은,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사 용도로의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은 (대북) 제재를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 간 약속(한일 청구권)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 무역 관리 규정도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이런 언급은 현재 아베 총리 측이 북한과 대한민국을 ‘엮어서’ 외부의 적으로 ‘만들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이 더 깊은 수렁에 스스로 빠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할까? 물론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오히려 그런 대응을 문제 삼으며 더욱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리는 아베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차분히 대응하면 된다. 지금 청와대 대응은 괜찮은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가 현재로서는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고 말만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당사자끼리 만나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보다는, 제3자가 나서 중재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정부는 미국에 중재 역할을 적극적으로 주문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런 행동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일 간 경제전쟁이 장기화되면 우리 경제가 받는 피해가 커지고 또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필연적이 돼 정국이 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는 우회 전략이 절실하다.

문제는 이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장기적으로 한일관계는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런 장기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다. 또 지금까지 외교적 행태를 보면 트럼프는 다자간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양자 간 문제 해결을 선호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2015년 위안부 문제처럼 미국이 중재해 한일 간 갈등을 해결하는 상황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들 듯싶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상황이 어찌 됐든, 미국과 접촉하고 중재를 부탁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윤석열 후보자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됐지만, 야당 의원들은 윤 모 전 용산 세무서장 뇌물 사건 관련 윤석열 후보자가 윤 전 서장에게 이 모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을 청문회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청문회가 거의 끝날 무렵,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윤 후보자가 2012년 뉴스타파 기자와 나눈 통화 내용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자는 “ ‘이 사람(윤우진)한테 변호사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양반하고 사건 갖고 상담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대검)중앙수사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이 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대진이 한창 일하니까 네가 윤 서장 한번 만나봐라(라고 했다). 이남석이가 그냥 전화하면 안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남석이한테 ‘윤석열 부장이 보낸 이남석입니다’ 이렇게 문자를 하면 너한테 전화가 올 거다. 그러면 만나서 한번 얘기를 들어봐라. 일단은 임시로 이남석이를 보낸 거예요”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이른바 윤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이 불거졌고, 야당은 진실을 추구해야 할 검찰총장이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다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과거 사례를 볼 때, 청와대가 야당의 이런 주장을 묵살하고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검찰총장 자격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청와대 역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과거의 청문 대상자를 둘러싼 의혹도 결코 가볍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 경우는 전화 통화 녹취가 계속 거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과연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두 문제 모두 해결하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하다. 윤석열 후보자 사안은 임명을 강행해도 문제가 증폭될 가능성이 있고 지명 철회를 해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일 갈등 문제는, 앞에 언급한 대로 미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입장과 행동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7호 (2019.07.17~2019.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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