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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달 착륙은 미-소 합작품이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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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1961년 흐루쇼프에 첫 요청

베를린장벽 건설-쿠바미사일 위기에도

1963년 유엔 연설 통해 다시 공개 제안

흐루쇼프, 비로소 긍정적 검토 시작

두달 뒤 케네디 사망으로 물거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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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달 위를 걷다.”

50년 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전하는 <뉴욕타임스> 1면 헤드라인이다. 당시 전 세계 36억 인구 중 6억명 이상이 지켜봤다는 달 착륙은 자본주의체제 리더로서 미국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체제 경쟁 구도가 낳은 산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원대한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미-소간 합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 나사(미국항공우주국) 수석역사가 로저 로니우스(Roger D. Launius)가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논평에서, 이와 관련한 두 나라 지도자 간의 교류 내용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그에 따르면 1961년 5월25일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통해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의 달 착륙과 무사 귀환을 약속한 직후 소련과의 전면적인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만약 이것이 성사됐다면 달 착륙 프로그램은 경쟁 프로그램이 아닌 국제협력 프로그램으로 재편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케네디는 연설 다음달인 6월 소련 최고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상회담에서 소련에 협력을 제안했다. 흐루쇼프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는 그런 이야기는 핵실험금지조약 협상을 지켜보고 하자고 응수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이후에도 이 방안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1963년 가을까지 케네디의 마음은 냉전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 초강대국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쪽으로 아폴로 프로그램을 짜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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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우스는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961년 동독 정부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경계에 콘크리트 담장(베를린장벽)을 쌓기 시작한 데 이어, 1962년엔 소련이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 하면서 미-소가 정면충돌 직전까지 가는 등 두 나라 사이의 긴장 상태가 매우 고조돼 있었다.

그럼에도 케네디는 1963년 9월 소련을 향해 미국과 협력할 것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정식으로 공동 달 여행을 제안했다. 그는 "우주엔 주권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며 과학자들을 한 국가가 아닌 세계 모든 나라의 대표 자격으로 달에 보내자고 말했다. 비로소 흐루쇼프도 케네디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달 뒤인 11월22일 케네디가 피살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만일 그때 케네디가 피살되지 않고 대통령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면, 이후 아폴로 프로그램의 진행 방향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미국인들은 단독으로 우주 탐험에 나섰고 8년후 마침내 아폴로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 소련 역시 단독으로 유인 달 착륙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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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우스는 그럼에도 우주에서의 미-소간 협력은 냉전기간 내내, 주로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지속됐다고 밝혔다. 그러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소련 방문으로 이뤄진 미-소 데탕트를 계기로 협력이 활발해졌다. 1975년엔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즈 19호가 대서양 상공 지구 저궤도에서 도킹하는 역사적인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Apollo-Soyuz test project)’가 성사됐다. 7월17일 도킹에 성공한 두 나라 우주비행사들은 서로의 우주선을 오가며 공동으로 각종 실험을 진행했다. 냉전 종식 이후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 프로그램 등에서 두 나라를 포함한 국제 협력은 더욱 활발히 이뤄져 왔다.

그러나 로니우스는 올들어 짐 브라이든스틴 나사 국장이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연방우주국장 초청을 취소한 것을 계기로 우주 협력이 삐끗해진 점을 꼬집으며, 모든 우주 탐사와 개발은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유인 우주여행 프로그램은 서로 긴밀히 협력할 때 가장 성공적이었다"며 "협력을 포기하는 건 일을 어렵게 만들고 비용을 늘리며 시간 낭비를 야기하는 무모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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