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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인공 근육이 10㎏ 번쩍 들어…"택배원 수고 덜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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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근육을 통해 ‘입는 로봇’을 개발한 한국기계연구원 박철훈 박사


“왜 사람처럼 오래 달리는 로봇은 없을까?” 2012년 한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에 서 있던 과학자의 머릿속을 채웠던 고민은 특이했다. 출발 직전의 긴장감에 머릿속이 하얘질 법도 했지만, 과학자 특유의 고민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짧지 않은 거리인 42.195㎞를 쉼 없이 달리면서 이 고민은 더욱 증폭됐다. 한국기계연구원 박철훈 박사 얘기다. 수영과 자전거, 마라톤까지 섭렵한 스포츠맨인 박 박사는 2015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까지 한 인물이다. 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즐기는 그가 ‘인공 근육’ 연구에 집중한 건 우연이 아니다.

박 박사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내놓은 인공 근육은 보통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옷감처럼 돌돌 말 수 있으면서도 무거운 물건을 들 만큼 큰 힘을 낸다. 인공 근육이라고 해서 진짜 근육에 외과 수술을 해 붙이는 식은 아니다. 인공 근육의 주재료인 형상기억합금을 옷 가게에서 파는 보통 점퍼 안쪽에 솜을 넣듯 바느질했다. 팔이 있는 자리에 붙이면 진짜 팔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을 감지하는 센서와 연동되면서 형상기억합금도 수축한다. 수축은 사람을 돕기 위해 물건을 들 힘이 생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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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의 팔 부위에 붙인 인공 근육으로 물건을 드는 힘을 보조 받는 모습의 개념도. 인공 근육의 주재료인 형상기억합금이 열을 받으면 수축하는 힘을 이용한다.


박 박사팀은 형상기억합금을 실처럼 얇게 뽑아 20가닥을 모은 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주머니에 넣었다. 인공 근육을 점퍼 옷감 속에 넣어 고정했더니 ‘입는 로봇(wearable robot)’이 된 것이다. 인공 근육의 힘은 놀랍다. 인공 근육이 장착된 의복의 총 무게는 1㎏에 불과하지만 무려 10㎏짜리 물건을 들어올린다. 한 팔에 한 개씩 장착하면 모두 20㎏의 추가 근력이 생기는 셈이다. 꽤 큰 쌀 포대를 거뜬히 들 힘이다.

하지만 박 박사팀의 연구가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형상기억합금을 어떤 모양으로 가공할지가 문제였다. 다른 나라 연구진이 만드는 입는 로봇은 금속이나 딱딱한 플라스틱 뼈대를 몸 바깥에 붙이고, 관절을 움직이려고 전기모터나 압축 공기를 쓴다. 당연히 무겁고 불편하다. 할리우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군인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려고 신체 바깥에 착용하는 장비가 전형적인 형태다. 실제로도 많은 국가에서 이 같은 형태의 입는 로봇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 극복하려고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한 것인데 돌파구가 쉽게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양한 시도 끝에 찾아낸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박 박사는 “얇은 실 같은 형상기억합금을 용수철처럼 꼬았다”고 말했다. 전기를 흘려 열을 가하면 형상기억합금이 실제 근육이 수축하는 비율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모양새였다. 인간 근육은 원래 모양의 최대 40%까지 수축하며 몸을 움직인다. 어렵지 않은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만, 어느 나라 연구진도 착안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연구실에서 만든 인공 근육 한 주머니 단가는 2만 원이다.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서 고안 중인 입는 로봇이 1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나가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박 박사는 “무거운 짐을 반복적으로 싣고 나르는 택배원의 수고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연대노조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원의 약 80%는 상체 근육통에 시달린다. 이 기술은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근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일상에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근육의 힘이 떨어져 하지 못했던 집안 일을 원활히 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힘을 새로운 기술이 제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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