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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먹을거리 체계로 본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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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홀트-히메네스의 신간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우리는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음식은 삶, 건강, 행복을 증진한다.

하지만 식품회사의 목적은 다르다. 경영진과 주주를 위해 돈을 버는 게 최우선이다. 이익이 무엇보다 먼저이고, 인간적 가치는 그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의 먹거리 체계는 노동 등 모든 비용을 최소화하려 한다. 값싼 먹거리를 최대한 많이 공급하기 위해서다. 행복이 아닌 이윤의 도구로 전락한 결과 우리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건 풍요의 저주다.

미국 농업생태학자인 에릭 홀트-히메네스는 저서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에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가 이윤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 역사를 되짚는다. 이와 함께 우리가 현재 직면한 상황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찬찬히 설명한다.

농민운동 연구자이자 먹을거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의 말처럼, 오늘날 세계의 먹거리 체계는 매우 기형적이다. 지구 한편에선 과잉생산으로 농부들이 파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10억 명이 굶주림으로 시달린다.

미국만 해도 4천500만 명이 먹거리 불안정을 겪고 있으며, 성인의 3분의 2가량은 비만으로 고생한다. 토양, 공기, 수질이 심각한 해를 보고, 칼로리와 당, 염분이 과도하게 높은 식품 또한 넘쳐난다.

저자는 자본주의야말로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윤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먹거리마저 인간의 건강과 행복이 아닌,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자본주의 발전에서 농업이 수행한 역할과 농업 발전에서 자본주의가 수행한 역할을 동시에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먹거리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살펴보고, '사회적 필요노동시간'과 '상대적 잉여가치' 개념에 대해 들려준다.

먹을거리 체계가 자본주의화함에 따라 자본주의가 겪는 주기적 위기 과정을 다루며, 자본의 호황과 불황 주기로 사회가 치른 대가도 고찰한다. 이와 함께 먹을거리 체계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제,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의 정치경제적 역사를 돌아보고, 흑인·여성·빈민 착취의 뿌리 또한 분석해본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유발한 기아와 지구온난화, 음식 쓰레기 등 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결책을 살핀다.

저자는 "먹거리 운동이 성공하려면 계급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나아가 먹거리 운동단체와 환경 운동단체, 사회정의 운동단체 간에 전략적 동맹을 강력히 구축해야 하다"고 역설한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체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먹거리 체계를 바꾸는 게 난망하기 때문이다.

한울엠플러스. 박형신 옮김. 400쪽. 3만9천원.

연합뉴스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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