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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빨간 책방’지고 ‘김미경TV’가 책 시장 쥐락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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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대표적인 도서 팟캐스트였던 ‘빨간책방’이 지난달 14일을 마지막으로 7년간 방송의 마침표를 찍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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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세월이 흐르고 프로그램의 수명이 다하고 이제 우리는 퇴장하지만 이토록 책을 안 읽는 시대에서 우리는 함께 책을 읽어 가면서 세상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2012년 5월 1일 도서 팟캐스트 ‘빨간책방’이 문을 열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 이다혜 씨네21 기자가 진행하고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기획ㆍ제작한 팟캐스트였다. 빨간책방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책을 소개하며 도서 관련 콘텐츠의 강자로 우뚝 섰다. 1회당 평균 다운로드 수가 15만건을 넘었고 ‘밤은 책이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등 방송 내용을 토대로 한 책도 출간돼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출간된 지 오래된 도서가 방송에서 다뤄지며 갑작스러운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사례도 잦았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2003년 국내 출간된 뒤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2014년 빨간책방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로 거듭나기도 했다. 격주 공개방송은 애청자들이 매번 티켓 확보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들은 빨간책방에 자사 책이 소개되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최근 300회를 맞이했을 정도로 오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았지만 빨간책방은 지난달 14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연준혁 위즈덤하우스 대표이사는 마지막 방송을 알리는 영상에서 “300회를 기점으로 변화를 주려고 했으나,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는 바뀐 환경에 대응하기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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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책 팟캐스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동진의 빨간책방’ ‘책읽아웃’ ‘책, 이게 뭐라고’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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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대표가 언급한 ‘바뀐 환경’은 유튜브의 급부상이다. 대중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유튜브 속 책 소개 채널로 옮겨 가면서 빨간책방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빨간책방은 유튜브 채널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30회를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출판업계에서는 “영상 위주 방송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빨간책방이 막을 내리면서, 도서 팟캐스트 시장은 만년 2인자들의 각축장이 됐다. 온라인 서점 Yes24가 제작하고 김하나 작가와 오은 시인이 진행하는 ‘책읽아웃’과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Book21이 제작하고 가수 겸 작가 요조와 소설가 장강명이 함께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가 1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됐다. ‘책읽아웃’은 청취자가 6,037명에 불과하지만 저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책의 뒷얘기를 듣는 인터뷰 코너를 두어 애서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최근 방송이 2017년 6월에 업로드 된 거이지만 김 작가의 스타성 덕분에 팬층이 아직 단단하다. ‘책, 이게 뭐라고’는 청취자 2만명이 든든한 원군이다.

팟캐스트 시장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다지만 “빨간책방에서 소개된 책은 1~2쇄는 더 찍는다”는 말이 있던 과거의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출판 시장 영향력은 이미 유튜브로 옮겨갔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한 유명 유튜브 채널은 책을 한번 소개하는 대가로 700만원을 받지만, 출판사들이 줄을 서 방송 기회를 얻기조차 힘들다는 소문이 돈다.

‘겨울서점’과 ‘김미경TV’ ‘책읽찌라’ 등이 요즘 잘나가는 ‘북튜버(북+유튜버)’다. 자신만의 개성을 내세워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겨울서점’은 책 리뷰와 낭독, 책 포장 풀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무기로 구독자 10만명을 확보했다. 스타강사 김미경이 운용하는 채널인 김미경TV는 구독자 수가 72만명에 달한다. 채널에 책이 소개되면 베스트셀러 순위가 들썩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김미경TV에서 소개됐던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등은 방송 직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이 이전 일주일과 비교했을 때 최대 536배 증가했을 정도였다. 주로 경제ㆍ자기계발서가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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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북튜버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겨울서점’ ‘책읽찌라’ ‘김미경TV’ ‘편집자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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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북인플루언서’라 불리는 북튜버들의 활동이 책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출판사들 역시 자체적인 채널을 개설하고 있다. 책의 저자와 출판사 편집자 등을 동원할 수 있어 여느 북튜버들에 비해 활용 인력이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창비는 자체 유튜브 채널 ‘TV창비’에서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낸 박상영 소설가와 함께 이태원과 인천공항을 방문하는 영상을 게재했고, 민음사의 ‘민음사TV’는 ‘평론가란 무엇인가’ ‘어서와, 출판사는 처음이지’ 등 업계 내부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문학동네는 회사 동명의 대표 유튜브 채널 이외에도 ‘문동씨’라는 이름의 문학동네 브이로그를 새로 개설하는 등 채널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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