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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홍차처럼 와인처럼…삼척 덕풍계곡의 황금빛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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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삼척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은 계곡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에게 성지로 통한다. 협곡 풍경도 그만이지만, 낙엽과 나무에서 우러나온 와인 빛깔 계곡물이 매력적이다. 버들치부터 1급수에 서식하는 산천어까지 헤엄치고 있어 몸에는 해롭지 않다. 삼척=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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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 힘들 만큼 경치가 빼어나면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 지어내 포장한다. 신라 진덕왕 때 의상대사가 용소골 끝자락에서 나무로 만든 기러기 세 마리를 날리자, 한 마리는 울진 불영사에 떨어지고, 또 한 마리는 안동 흥제암으로 날아가고, 마지막 한 마리는 덕풍계곡 용소에 떨어졌다. 이 일로 일대에 천지 변혁이 일어나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산수가 탄생했다.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은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제법 알려졌지만, 여전히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계곡 초입 풍곡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6개의 광산업체가 있어 3,000명이 넘게 살았지만 현재 주민은 240여명에 불과하다. 1987년 광산이 모두 문 닫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2002년과 2003년 태풍 루사와 매미가 잇따라 덮치며 마을은 사실상 폐허가 됐다.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덕풍계곡이라는 천혜의 자연 때문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계곡을 찾는 이들을 위한 숙박과 식당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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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트레킹이 시작점 부근의 마지막 농가. 옛날에는 계곡 깊숙한 용소골에도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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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시작 지점부터 물빛이 탁해 살짝 당황했다.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제2용소까지는 위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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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주차장에서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이 시작되는 응봉산(999m) 입구까지 거리는 약 5km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갈 만큼 길이 좁고, 마을 안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여름 성수기에는 차량을 통제한다. 걷기에 자신 있다면 맑고 푸른 강줄기를 끼고 걸어도 좋지만, 초반부터 힘을 빼고 싶지 않으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12인승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 편도 2,000원이다.

덕풍계곡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줄을 잡고 미끄럽고 가파른 바위를 건너야 했던 험악한 곳이었으나, 지난해 위험 구간마다 난간과 텍을 설치해 트레킹이 한결 수월해졌다. 초입에서 제1용소까지 1.5km, 거기서 제2용소까지 다시 1.5km다. 한 자락 돌아갈 때마다 예상치 못한 절경에 시간이 지체될 수는 있어도 길이 힘들어 늦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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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혹은 홍차. 상류로 갈수록, 깊을수록 물빛은 더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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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용소부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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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의 깊이는 약 40m. 떨어지는 폭포수 외에는 완전히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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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좁고 물살이 세지기 때문에 비 예보가 있으면 트레킹을 접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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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용소에서 제3용소까지 3km는 내금강에 비유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지만 산양이 서식하는 생태유전자보호구역이어서 산림청에서 통제하고 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아예 발을 들이지 않는 게 현명하다. 계곡이 좁고 험해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기 때문이다. 조난을 당할 경우 GPS만으로는 119구급대도 찾아가기 어려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구조대를 운영할 정도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개망초 꽃이 하얗게 핀 묵정밭을 돌면 바로 계곡과 나란히 걷기길이 이어진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하얀 바위 위로 흐르는 시린 초록 물빛을 상상했는데, 계곡물이 살짝 주황색을 띠고 있어 당황스럽다. 얕은 곳은 맥주 빛처럼 노랗고, 깊은 곳은 커피 색처럼 검다. 폭우가 내린 직후가 아니면 덕풍계곡은 대체로 이런 빛깔이다. 협곡에 떨어진 나뭇잎에서 탄닌 성분이 우러나온 때문이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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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깊을수록 갈색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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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용소 풍경. 3용소까지 가는 길은 생태유전자보호구역이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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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발 담그고 쉬어갈 만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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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용소 풍경. 사진보다 실제가 더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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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낯설던 물 색깔이 익숙해질수록 매력적이다. 하얀 물줄기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소로 떨어졌다 뽀글뽀글 기포를 품으며 솟구치는 모습은 콜라처럼 청량하다. 때로는 홍차처럼, 때로는 와인처럼 깊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황금빛 계곡물에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등산객 발길에 모래라도 몇 알 떨어지면 버들치와 피라미 등 수면 가까이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가 먹이를 노린 듯 재빨리 몰려들었다 흩어진다. 산천어와 은어 등 팔뚝만 한 물고기도 심심찮게 서식한다는데 물속 깊은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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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물에 물고기가 노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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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생경하던 갈색 물빛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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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의 또 다른 매력은 어느 한 구석 버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계곡의 하얀 바위는 곧장 가파르게 솟아 협곡을 형성한다. 뱀처럼 휘어지는 물줄기를 돌 때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그래도 절경은 웅장한 폭포 소리와 소용돌이 바람이 어우러진 제1용소와 2용소다. 폭포 아래는 수심이 40m에 달해 수영을 할 수 없지만, 탐방로 곳곳에 물이 얕게 흐르는 반석이 많아 발을 담그기에 좋다.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지 않고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하다. 운이 좋으면(혹은 나쁘면) 배고픈 물고기가 달려들어 천연 닥터피시도 경험할 수 있다.

덕풍계곡은 혼자서 다녀오기에 여전히 멀고 힘든 곳이다. 승우여행사(02-720-8311)가 7~8월 덕풍계곡 당일치기 상품을 내놓았다. 오전 6시30분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오후 8시30분 돌아온다. 4만8,000원~5만1,000원.

삼척=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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