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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신율의 정치 읽기]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재선 위한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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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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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전 세계 이목은 판문점으로 쏠렸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았고, 그뿐 아니라 남북미 세 나라의 정상이 한곳에 모이는 풍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번 회동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박수를 쳤고, 여당은 물론이고 이른바 범여권이라 불리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 자유한국당은 달랐다. 7월 1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어제 사실상 3차 미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통미봉남(通美封南) 고착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안보와 국방을 챙기지 않는다면 북한의 통미봉남 전술과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사이에서 또 다른 차원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당 지도부의 언급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외교, 특히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 남북관계는 정파를 초월해야 하는 문제다. 야당이 이런 식의 언급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한마디로 야당의 발목 잡기로 비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지도부 발언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 판문점 회동에서 가장 큰 수확을 얻은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가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성추문이 다시 불거지고 있고, 현지 시간으로 6월 27일 밤에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첫 번째 TV 토론은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시청률조사기관 AGB닐슨에 따르면, NBC 뉴스가 주최한 민주당 대선 후보 TV 토론을 약 1530만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그만큼 유권자 관심이 트럼프의 대항마에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트럼프에 대한 여론 지지는 그리 높지 않다. 미국 정치전문매체인 더힐이 지난 5월 10일과 11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대선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44%에 그쳤다.

이 때문에 현재 트럼프는 바이든 민주당 후보나 혹은 샌더스 후보와의 1 대 1 가상 대결에서 번번이 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터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호조고, 과거 정권에 비해 실업률은 엄청 낮아졌으며, 임금까지 오르고 있는데 지지율이 40%대에서 요지부동이니 안달이 날 법도 하다. 그 한 방 중 한 가지가 이번 판문점에서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이다. 이것이 한 방이 될 수 있을지는 이번 회동에 대한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들 반응을 보면 대충 짐작이 된다.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선두권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6월 30일 ABC방송의 ‘디스위크’에 출연해서 “그(트럼프)가 우리의 적들과 함께 앉아 협상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나는 그것이 단지 사진 촬영 기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판문점 회동은 단지 이벤트일 뿐이지,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외교의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경선 주자 훌리안 카스트로 전 주택도시개발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적국들과 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신중해야 할 외교에 대해 매우 변덕스럽게, 매우 무계획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쇼다. 모두 상징적인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샌더스의 평가와 거의 다르지 않다.

민주당 인사들 반응은 한마디로 이번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의 일종의 ‘대선 유세’였으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단순한 쇼 혹은 이벤트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혹독한 비판은 역으로 이번 회동이 그만큼 대선에 효과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였기에 경쟁자들이 하나같이 판문점 회동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트럼프가 북한 핵문제를 대선에 이용하려 한다는 흔적은 도처에 존재한다. 트럼프-김정은의 3차 미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미사일 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트럼프는 이렇게 답변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것은 소형 미사일로, 나는 이를 미사일 발사라고 보지 않는다… 단순한 테스트(로 생각한다). 김정은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문제지, 우리나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 정도는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는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ICBM의 제거를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CBM만 제거하면 북한이 어느 정도의 핵을 갖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비핵화의 초보적 조치만 한 채 ICBM만을 폐기하면, 이를 트럼프는 비핵화라고 떠벌리며 자신이 북한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구했다는 식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 일본 입장에서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만 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트럼프의 불법이민자·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에 대한 불관용 정책을 주장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는 상당히 어긋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이런 언행을 ‘일삼는’ 이유는, 이들 불법이민자는 선거권이 없는 반면, 불법이민자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미국인들은 선거권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유권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속으로는 불법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미국 유권자의 수가 적지 않아 이를 알고 있는 트럼프가 표를 얻기 위해 반인권적 발언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표가 없으면,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모욕해도 된다는 것이 트럼프식 사고(思考)다. 결국 트럼프는 모든 사안을 표로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핵문제도 여기서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문제를 표로 환산해 접근하면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 대신 ICBM의 폐기 정도에서 문제를 수습하며 자신이 미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내년 대선 전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외교적 생색을 내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포장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생각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재선을 위해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를 최우선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있음을 이번 회담을 통해 보여줬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나경원 원내대표가 말한 ‘통미봉남’ 전략으로 북한이 나아가려 한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앞에 언급했듯이 북한이 재선에 급급한 트럼프를 최대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북한이 외무성을 미국과의 대화 파트너로 내세운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는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고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뿐 아니라 황교안 대표의 ‘자국우선주의’에 대한 경고 역시 ‘발생 가능한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당 지도부의 언급을 단순한 ‘발목 잡기’로 봐서는 안 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핵이 있는 상황에서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할 점은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분계선을 넘나들며 보여주려 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이제는 평화로운 사이가 됐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언급한 자신의 재선 도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업적의 과시’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앞서가며 이번 판문점 회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6호 (2019.07.10~2019.07.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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