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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인터뷰] 국내 유일 여성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머스탱 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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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머스탱 샐리(Mustang Sally·본명 조은주)가 기자와의 인터뷰에 임하며 미소 짓고 있다. /방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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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방정훈 기자 = “지금 돌아보면 사람은 삶의 경험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20대 때 만들었던 곡들을 보면 경험담이 많았거든요. 웃기고 재밌는 내용을 들려주고 싶었고, 사람들이 웃으면 되게 좋았어요. 이처럼 일상의 경험을 얘기하는 건 담백하지만, 언젠가부터 타인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은 경험보다는 가치관 위주의 가사로 곡을 쓰려고 해요.”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머스탱 샐리(Mustang Sally·본명 조은주)는 국내 유일한 여성 블루스 싱어송라이터로서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맥 라이스가 1965년 발표한 곡 ‘머스탱 샐리’의 동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어머니에 따르면 길을 가다 찬송가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울 정도였다. 아마 가사를 인식한 게 아니라 곡 자체의 분위기를 느끼고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며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 건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드러냈다.

이후로 그는 부모님이 사주신 오디오 기기를 통해 비틀즈·마이클 잭슨·마돈나 등 팝가수를 접하기 시작했고, 중학생 때는 직접 인터넷방송 DJ로 활동하며 같은 음악 애호가들과 소통했다. 그러던 중 타 DJ가 하는 공연을 접하고 직접 무대에 서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손에 잡았다.

샐리는 ”고등학생 때는 기타로 대학에 들어가려고 학원에 다녔다. 그때 당시 선생님이 블루스 록을 하고 계신 분이셔서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립튼의 곡을 쳤다. 이때만 해도 블루스란 게 강렬한 음악인 줄 알았다“라면서 ”지금은 블루스를 들으면 다른 의미로 신나고 기분이 좋아져 춤까지 추고 싶어 진다“고 블루스와의 첫 인연을 언급했다.

그는 학원 선생님의 소개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메리제인이라는 밴드로 활동했다. 콜드플레이·트래비스 등 브릿락 위주의 음악을 지향하면서도 하드록과 블루스적인 성향이 가미된 팀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샐리는 ”밴드 경험은 학창시절 밴드부 밖에 없어서 처음엔 되게 힘들었다. 그런데 활동을 시작하면서 너무나 재밌었다. 팬들이 점차 많아졌으며 이 가운데 친구가 된 사람들도 꽤 많았다. 당시엔 좀 스스로 우쭐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부끄럽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2013년부터 혼성 밴드인 ‘머스탱 샐리’를 결성, 보컬 및 기타로 활동하다 2015년 솔로로 전향했다. 샐리는 이에 대해 ”음악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져 좀 심플해지고 싶던 찰나, 선배인 CR태규가 솔로를 제안해서 용기를 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어쿠스틱 기타로 혼자 음악을 만들려니 정말 많은 것을 멤버들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닫고서 혼자서도 풀 밴드에게 뒤지지 않는 연주를 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며 ”결국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노래, 카주 등의 리드 악기 역할까지 5인분을 고민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덕분에 이제는 많이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기타란 천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번 연습을 시작하면 평균 5시간은 그 자리에서 계속 기타를 치고,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재미를 느낀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어떠한 행동에 동화되고 즐길 때야 가능한 플로우(고도의 집중이 유지되는 의식상태) 상태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샐리 역시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음악과 연주를 통해 국가와 나이, 언어를 초월해 좀 더 쉽게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단, 다양성이 부족한 작금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숨기지 않았다.

그는 ”댄스나 발라드 음악을 하는 제외하고는 다 비슷한 현실인 것 같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우리 나중에 박물관으로 들어가 후손들에게 옛날에 이런 음악이 존재했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하곤 한다“면서도 ”저는 그저 수도승이 도를 닦듯이 계속 안으로 파고들며 연구할 뿐“이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샐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사람들도 안다. 진심으로 음악에 마음을 담지 않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듣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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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 더 자신의 색깔을 다듬고 싶다. 길에 들어서서 더 작은 갈래들이 있으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 가고 싶다. 계속 좁은 길로 들어가면 아무도 못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며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를 밝혔다.

‘Texas Blues’ ‘We Got The Blues’ ‘깎아주세요’ ‘애정표현’ ‘친구야’ 등 지금까지 유튜브 등으로 공개된 샐리의 음악엔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 심지어 꿈의 내용 등이 솔직담백하게 가사로 표현돼 있다. 여기에 과장 없이 너무나도 솔직한 그의 라이브 멘트가 합쳐져 그저 멋이 아닌 진정한 우리네 일상을 음악에 담아내고픈 그의 따뜻한 품성이 충분히 느껴진다.

그는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받거나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하고 싶을 땐 하고 하기 싫은 땐 다른 쪽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어차피 자신이 정말 좋아하면 다시 돌아가게 돼 있다”면서 “전문가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최소 10년 이상을 해야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다. 저의 경우도 기타를 친지 벌써 18년이 됐는데 2년 뒤에 자신만의 색깔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라고 조언했다.

샐리는 음악인이 아닌 인간 조은주로서의 목표에 대해 “결혼을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좋다. 이전엔 정말 불안했는데 짝을 찾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더라”고 언급하며 7년간 교제한 연인에 대한 신뢰를 표했다.

샐리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곡은 무엇일까. 다소 의외에 대답이 나왔다. 그는 “한 번도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은 곡인데, 자신만의 길을 가기에 힘든 시기, 가사를 쓰며 울었던 곡이 있다. 그때 제가 제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쓴 노래다. 지금도 힘들 때마다 부르면 스스로 위안이 되는 곡이다. 제목은 아직 없다”며 진심 어린 애정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의 원천 중 하나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장면의 정서가 곧 블루스라는 것. 샐리는 이 영화를 보며 곡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얻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샐리는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라는 게 있다. 즉흥 공연을 녹음한 라이브 앨범인데 그가 굉장히 아픈 상태에서 아침까지 링겔을 맞다가 공연을 한 것이다. 거기다 피아노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야 말로 살신성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 좋다”며 가장 좋아하는 앨범도 소개했다.

그는 이어 “팻 매스니(Pat Metheny) 내한 공연 때는 ‘오프 램프(Off Ramp)’ CD와 기타 가방에 사인을 받고, 서툰 영어로 쓴 편지를 드린 적이 있다. 혹시나 해서 제일 밑에 이메일 주소 적었는데 답장을 보내주셨다.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짧은 글이었지만 너무나 감동했다”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와의 값진 일화를 공개했다.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에바 캐시디(Eva Cassidy) 등 여성 블루스 싱어송라이터의 영향을 받았다는 샐리는 “특히 보니 레이트의 경우는 정말 여장부 같은 느낌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저도 그런 블루스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실험음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홍대에 있는 ‘팔점 갤러리’에서 우연히 실험음악을 접했다는 그는 어떠한 계획 없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보고는 연주 중의 실수나 구성에 대해 걱정하기보다 좀더 순간의 흐름에 맞기는 음악을 하게 됐다고 한다.

샐리는 2017년 말에 설립된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의 에디터도 맡고 있다. 주로 운영에 대한 기획과 섭외, 홍보를 담당하는 자리다.

그는 “홍대에 ‘블루스 하우스’라는 바가 있었는데 거기서 공연을 했었다. 이후 그곳을 운영하다 문을 닫은 사장이 숙대입구에서 소사이어티가 하는 블루스 바를 맡고 있더라. 그래서 달마다 한 번 정도 공연을 하게 됐고, 극장으로 바뀐 지금도 에디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도 이제 여기서 정규적으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소사이어티와의 인연을 밝혔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은 활동에 대해 “작년 페스티벌 책자에 들어간 참가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고, 뮤지션에 대해 알지도 못해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21개의 팀 중 반 이상을 직접 만났고, 관객들이 궁금해할 것은 물론 개인적인 질문도 하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상당히 좋았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샐리는 소사이어티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성에 대해 “뮤지션들의 교류가 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면서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블루스소사이어티 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한국과 느낌이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 자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노래나 춤도 함께 하더라. 이러한 정서가 너무 좋았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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