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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신율의 정치 읽기] 정부 해명 오락가락…믿지 못하는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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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6월 15일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연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의 신고로 발견됐다는 정부 당국 발표와 달리 삼척항에 정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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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가장 손쉽게 대응하는 방법은 바로 남 탓을 하는 것이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남이 못해서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됐다는 식의 언급을 하면, 손쉽게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본인 생각일 뿐이다.

더구나 본인 잘못이 있음에도 남 탓을 하면, 많은 이들이 그를 믿지 못할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특정 사안의 관계자가 자꾸 말을 바꾸며 남 탓을 하면 다들 그 당사자를 더욱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남 탓을 하는 것도 모자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정부기관이 특정 사안에 대해 오락가락하니 국민 속은 터진다.

“바다가 넓으니까 그냥 뚫리면 어쩔 수 없다는 그런 말이지?”

지난 6월 20일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푸념처럼 내뱉은 말을 YTN ‘돌발영상’이 포착해 방영한 것이다. 명언이다. 사건이 알려지고 난 직후 합동참모본부가 “군의 경계작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합참 입장은 정경두 국방장관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로 여지없이 어그러졌다.

정경두 장관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군은 (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의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점검해 책임져야 할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문책하겠습니다. 군은 이런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계태세를 보완하고, 기강을 재확립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 장관 언급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왜’가 빠져 있다. 6월 17일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6월 15일 오전 6시 50분께 (북한) 소형 선박 한 척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한 결과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방장관이 경계 실패를 자인하게 됐나. 즉, 왜 입장을 바꿨는지에 대한 해명이 빠져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가 나중에 보니 보통 일이 아니어서, 그제야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는 추론이다.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북한 선박의 ‘유유자적한 귀순’이 있었던 지난 6월 15일 오전, 합참 지하 벙커에서는 군 수뇌부 대책회의가 열렸다. 국방부 대변인은 이 회의와 관련해 기자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반적인 상황을 다 봐야 하는 부분이니까 (우리 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이 충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결국 6월 15일 회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개최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6월 17일 합참의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발표는 도대체 어떻게 나왔을까.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6월 15일에는 ‘경계태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군 수뇌부 대책회의까지 했는데 이틀 후 합참은 ‘경계태세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말은 6월 20일 국방장관의 “(경계태세)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겠다”는 대국민 사과로 다시 뒤집어졌다. 경계태세에 문제가 없었다면 국방장관이 관련자 문책 얘기를 들고나올 이유가 없었을 터다. 결국 ‘심각한 문제’가 ‘경계태세 문제없음’으로 바뀌었다 다시 ‘문제 있음’으로 또 바뀐 것이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민 생존과 안위에 직결되는 문제를 다루는 국방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과 정부기관이 이렇듯 오락가락하니 근심스럽다. 은폐 의혹이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물론 청와대 측은 은폐 시도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6월 22일 페이스북에 “(북한 선박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은폐는 없었다’ ”는 글을 올렸다. 고 대변인은 “정부는 (사건 발생일인) 15일 당일부터 사실을 알렸다. 15일 오후 2시 해경이 기자들에게 ‘북한 어선이 조업 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자체 수리해 삼척항으로 옴으로써 발견됐다’는 문자를 공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 보도에 따르면, 정경두 장관은 6월 20일 “사건 처리 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주무부서 장관도 ‘은폐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어떤 근거로 ‘은폐는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인가. 동해 해경이 강원도 영동 지역 소수 기자들에게 보낸 짧은 휴대전화 문자 공지 말고,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제기되는 은폐 의혹은 북한 어선을 발견했다는 문자 공지만으로 모두 해소되기 힘들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소한의 사실로 볼 때, 은폐는 아닌지 몰라도 축소 내지는 ‘거짓성 자기변명’이 난무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를 지적해야겠다. 정경두 장관이 사과문에서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문책하겠다”고 한 부분이다.

어렸을 때 故 강재구 소령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1965년 강재구 소령은 맹호부대 제1연대 10중대장을 맡고 있었다. 맹호부대는 당시 월남 파병을 앞두고 있었다. 부대는 파병을 앞둔 시점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훈련 중 이등병이 실수로 중대원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강재구 소령은 중대원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날려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었다. 이로써 자신은 산화했지만, 100명 이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런 강재구 소령의 모습은 참군인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군인은 모름지기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정경두 장관의 대국민 사과를 보면 자기희생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설령 억울해도 자신이 군 지위체계상 최상위에 있는 인물이라면 경계 문제가 터졌을 때 마땅히 본인 책임부터 거론하고 나섰어야 한다. 그런데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하니, 이는 ‘또 다른 남 탓’으로 보인다. 많은 이가 이번 경계작전 실패의 가장 중요한 ‘관련자’는 바로 정 장관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경계태세 문제 정도를 장관이 책임지겠다 나서는 것은 좀 과하지 않느냐 할 수도 있다. 맥아더 장군은 “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계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런 중요한 일을 실패해놓고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우리 군 전체를 생각할 때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급박한 사태라도 벌어지게 되면 과연 령(令)이 제대로 설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 일이 정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빠른 시간 내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하도록 하겠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안보 문제는 정쟁화돼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정쟁으로 비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처음부터 문제 소지가 있는 언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오락가락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부를 믿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지금 언론이 제기하는 의문점과 의혹은 국가 안보와 관련돼 있는 상황이다. 일단 의혹과 의문점을 해소하고 난 이후 “정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그뿐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정부와 권력의 핵심은 관련자에 대한 단호한 징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자기 부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모습만 보인다면, 현 정권은 문제가 발생하면 남 탓, 부하 탓만 하며 자신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무책임한 정권으로 비칠 수 있다. 자신이 먼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만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 생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5·창간호 (2019.07.03~2019.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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