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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인터뷰]유인택 "골드회원 얘기했더니 내 방에서 카드로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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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사장 취임 100일

구석구석 놀고있던 공간들이 채워졌다

뉴시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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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인택(64) 예술의전당 사장 집무실에 있는 카드단말기를 이용한 첫 손님은 박양우(6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그런데 카드단말기가 왜 사장실에 있을까.

취임직후인 지난 4월30일 약속한 ‘임기인 2022년까지 연회비 10만원을 내는 골드회원 10만명 모집’을 지키려는 자기암시와도 같은 위치 선정이다.

“장관님은 예술경영 전문가이고, 저는 펀드 전문가 아닙니까. 하하. 예산 이야기를 하면서 잘 통했어요. 골드회원 이야기를 꺼내니, 기꺼이 개인 카드로 결제를 하셨습니다.”

1988년 십시일반으로 1억8000만원을 모아 신촌에 예술극장 한마당을 지었고, 1994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제작 당시 7700명으로부터 3억원을 모은 ‘펀드전문가’답다.

6월29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 유 사장은 특유의 너스레와 함께 이야기에 막힘이 없다. 최근 중국 공연예술기관 ‘국가대극원’과 업무협약(MOU)을 위해 베이징을 다녀오는 등 빠듯한 일정을 강행하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었을 때 예술에 대한 후원은 대기업 위주였습니다. 경제규모가 12위, 1인 국민소득 3만달러인 시대인데, 후원에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야죠. 특히 벤처인들은 젊은 시절에 문화를 향유한 세대입니다. 이 분들을 문화예술계 지원 세력으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이 제 진단이에요. ‘예술의전당’이라는 좋은 브랜드를 잘 활용해서 문화 후원을 받아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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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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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 만 문화예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박봉의 월급쟁이, 젊은 사람들도 예술 향유에 적극적이라 십시일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0만원은 경조사 때 내는 돈이죠. 잘만 설득하면 기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에요. 그 동안 명분과 설득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거나, 그 부분에 소홀했건 거죠. 공공극장이라고 국민의 세금, 즉 공공 예산에만 매달리지 말고 민간 부문의 재원을 흡수하면 다른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3월22일 16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유 사장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영화 ‘프로듀서 1세대’로 통하는 영화 기획·제작자 출신이다. 한국형 기획영화 제작의 효시 격인 ‘결혼이야기’와 ‘미스터 맘마’를 비롯해 ‘화려한 휴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목포는 항구다’ 등을 제작했다.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 대표이사를 지냈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문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무대를 통해서다. 제약학과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고, 연우무대 사무국장 등을 거쳤다. 뮤지컬계에서도 활약했다. 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스쿨 교수를 지냈고 부산 동서대학교 뮤지컬학과와 산학협동으로 창작뮤지컬 ‘구름빵’을 제작했다. ‘구름빵’ ‘화려한 휴가’ ‘마법 천자문’ ‘광화문연가’ 등의 뮤지컬에 펀드매니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 단장도 역임했다. 이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대표로 자리를 옮겨 연극을 비롯,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기획·창작·제작 활동 경험, 투자·자금 운용 등의 경영 능력을 거듭 강조하는 유 사장은 CEO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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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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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 사장은 순수예술인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금기시되는 돈 이야기를 수면 위로 꺼내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취임 후 자신이 “기승전 돈’’이라고 강조한 부분이 기사 헤드카피로 등장했다며 껄껄거렸다. “돈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면 예술계나 극장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돈 문제를 회피하거나 모른 척하면 발전하는 것이 없죠. ‘우리는 지고지순한 예술을 하니까’라는 식의 당위성만 강조하면 무용지물입니다. ‘돈’ 대신 ‘재원’ ‘재정’ 등의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직설화법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유 사장의 근심 중 하나는 문화예술인들간에 ‘예술의전당’이 공공연하게 ‘1등 극장’으로 통하지만, 정작 일반 국민들은 이곳이 ‘국가 극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극장의 맏형 격에 맞는 위상과 방향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에 역점을 두고 모든 사업을 하려고 해요. 공공성 확보가 중요하니까요.”

예술의전당은 공연계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국내 미술 전시관 중 손꼽히는 한가람미술관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계는 예술의전당을 ‘남의 동네’ 보듯하는 것도 현실이다. 블록버스터 전시회 대관 말고는 용도를 모르고있다시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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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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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보수·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한국미술협회(미협)와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를 동시에 만나 손을 맞잡기도 한 유 사장은 “문화예술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직원들과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연장을 대관 수요는 많은데 극장 공간이 한정돼 있다는 것을 감안, 리허설룸을 소극장으로 탈바꿈시키자고 제안한 직원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였다.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던 사업이어서 유 사장이 발로 뛰어 개인 후원자를 구했다. 설계, 발주 등을 거쳐 내년 1월2일 리허설룸을 소극장으로 다시 문을 열게 하는 것이 목표다.

7월 계약이 만료되는 로비의 뷔페식당 공간을 육아로 문화향유가 단절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라운지로 쓸 계획도 공론화, 직원들과 논의를 통해 확정했다. “사장이야 지나가는 손님이죠.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계속 일해 나갈 80, 90년대 태어난 직원들이에요. 이들의 생각, 극장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죠.”

예술의전당 사장은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리다. 유 사장이 대학로에 있을 때만큼 공연을 자주 보지 못하는 이다. 그럼에도 창작를 향한 열정은 여전하다. 대학로 극장들과 닮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호남오페라단의 ‘달하, 비취시오라’, 더뮤즈오페라단의 ‘배비장전’ 등 창작 오페라를 흥미롭게 봤다.

유 사장은 영화든, 뮤지컬이든, 몸담은 현장마다 창작에 전력투구해왔다. 그는 모든 회계가 1년 단위로 책정돼 오랜 기간 숙성시키지 못하는 한국의 공연 시스템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예술의전당이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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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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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에서 ‘제작극장’으로서 예술의전당의 구실에 대한 갑론을박은 오래 전부터 벌어졌다. 한국 공연계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처럼 전속 예술단체를 두지 못한 예술의전당이 제작극장으로서 역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극장들처럼 전속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보유해야 유기적인 오페라 제작이 가능하다고 본다. 예술의전당에 사무국과 연습실을 두고 있는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등은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다.

유 사장은 공연계에서 박제돼 있는 ‘제작극장에 대한 개념’을 경계했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공론화’를 통해 선입견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공극장이 민간 부문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기획을 우리가 하고, 소속돼 있는 예술가들을 기용하는 전속예술단과 달리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신인들을 발굴한다면 공공극장으로서 하나의 제작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유 사장은 평생 을로 살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부분만큼은 자신 있다고 자부한다. 예술의전당 사장은 예술가처럼 고고하게 굴어야 할 것 같은 명함임에도 불구하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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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6.30. cho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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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은 예술계 최고의 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국회, 기획재정부 등 눈치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특히 ‘서예 박물관’은 찬밥 신세라고 했다. 여름 방학 기간에 대관이 안 돼 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유 사장과 직원들은 아이디어를 내 이곳에서 영화포스터전을 열기로 했다.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인데, 80년대까지 상당수 영화 포스터들의 홍보 문구가 서예에 기반을 둔 캘리그래피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거머쥔 묘수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신년에 친필 휘호로 메시지를 던진 기억이 나요. 지금은 서예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졌죠. ‘을’인 위치인데, 살리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죠.”

이 전시를 위해 영화, 연극 등에 꾸준히 지원을 한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의 도움도 받았다. 김 회장은 대가 없이 기부했으나, 유 사장은 “예술기부도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이다. “한번 기부하면 끝인 사례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흥행을 시켜서 돈을 되돌려드리면 다른 어려운 작품에 기부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 사장은 공언한 것들을 하나둘씩 이뤄내고 있다. 예술기관 수장의 추상적인 말들은 헛된 신념을 강요하고 혼란과 괴리감을 빚어낸다. 명분과 실리는 친구사이다. 유 사장이 가교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주춧돌은 세우고 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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