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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국과 권재진, 그리고 민간인 사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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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진 前 민정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은 차이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권재진 前 수석이 참여한 이명박 정부와 조국 수석이 몸담은 문재인 정부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출신 배경, 검찰권에 대한 입장, 정치 성향까지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권재진 수석의 이명박 정부 때나 조국 수석의 문재인 정부 때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인사권을 손에 쥔 실세 장관에게 복종한다.'라는 공무원 사회의 철칙이다. 검찰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관료 사회를 인사권으로 통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권력을 감시하는 사정기구인 검찰을 통제하는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의 공직 윤리와 법률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직접 책임졌던 민정수석 출신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 2012년 검찰이 민간인 사찰 수사에 실패한 이유

역사는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검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권재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뒤인 2012년 벌어진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2차 검찰 수사가 대표적 사례다. 2012년 3월 장진수 前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2010년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자신을 비롯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만 처벌받았지만,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진짜 윗선은 청와대 이영호 비서관과 박영준 차관이었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장진수 씨는 자신이 청와대 개입 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청와대 측이 집요하게 회유했고, 나중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측이 '관봉'[=조폐공사에서 발행한 뒤 밀봉한 상태 그대로의 돈 묶음] 5천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장진수 씨의 폭로 이후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로 수사하겠다."라며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핵심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폭로를 막기 위해 관봉 5천만 원을 건넨 것이 사실인지 규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처에만 가도 갈피를 잃었다. 장진수 씨가 지목한 시기의 민정수석은 2012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권재진이었다. 검찰은 대통령의 측근이자, 검사 인사권과 검찰총장 지휘권을 쥐고 있던 권재진 장관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기자들이 권 장관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불편해했다. 권재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때 직속 부하였던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에 대해서도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 서울중앙지검에 사무실을 차렸던 검찰 특별수사팀은 50m 거리에 있는 서울고검에 근무하고 있던 김진모 전 비서관을 일과시간이 끝난 뒤 소환해 참고인 신분으로 몇 시간 조사한 뒤 사건을 끝냈다. 2012년 6월 13일,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배포한 기소자 명단에는 권재진 장관은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무자는 한 사람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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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나쁜 사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교체되자 검찰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2018년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총리실 민간인사찰 사건 수사기록을 다시 펼쳤다. 맹렬한 수사 끝에 검찰은 장진수 씨에게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관봉 5천만 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나온 돈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장 씨의 폭로 그대로였다. 2012년에 스치듯 조사했던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동원해서 자금을 만들었고, 역시 권재진 전 민정수석의 부하였던 장석명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제3자를 통해 장진수 씨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2012년과 달리 김진모와 장석명은 2018년엔 모두 기소됐고 2심까지 유죄가 선고됐다. (※ 김진모 전 비서관은 2018년 조사에서도 '윗선'은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권재진 전 장관은 기소되지 않았다.)

2012년의 검찰은 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수사에 실패했던 것일까? 당시의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 출신 권재진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인물이 검사 인사권과 검찰총장 지휘권을 가진 현직 장관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였다. 바꿔서 말하면, 민정수석 출신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사정기관인 검찰의 청와대 관련 수사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설령 '착한 민정수석' 출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관련 수사에 개입하지 않아 검찰이 정상적으로 수사를 하더라도,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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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자의 선의를 전제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이명박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사찰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은 권력자에 대한 '불신'에 기초해야 한다. 권력자가 선한 존재라고 가정하면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권력 남용 제한 조항, 인권 보호 조항은 존재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의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청와대는 나쁜 청와대였기 때문에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보내는 것이 부적절하고, 문재인 청와대는 좋은 청와대이기 때문에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보내도 문제가 없다.'라는 주장은 권력자의 선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고, 권력 남용 과정에서 악해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민주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기본 원칙이다. 사정기관 역시 권력자가 언제든 권력을 남용할 수 있고, 부패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움직여야 한다.

설사 청와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착한 민정수석' 출신 법무부 장관이 수사에 개입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 역시 무책임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더구나 2012년 민간인 사찰 사건 사례에서 보듯이, 진짜 문제는 검사들에 대한 인사권자인 장관이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인사권의 대상인 검사들 수사 과정에서 눈치를 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7년 전 사례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바로 올해 초에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해보자. 올해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김태우 前 특별감찰반은 윗선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을 했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검찰은 이후 수사를 통해 김태우 前 특감반원의 폭로가 대부분 근거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폭로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때 법무부 장관이 조국 민정수석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폭로와 관련된 일부 사건은 검찰이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수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는 것이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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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사찰 사건의 교훈과 문재인 정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추적한 한국일보 법조팀은 2013년 단행본을 펴냈다. [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펼치면 첫머리에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쓴 추천사가 나온다.

"사건의 몸통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여야 간에 합의했던 국정조사도 여당의 방해로 열리지 못했습니다. 검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끝났습니다. 대선 기간 중에 벌어진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민간인 불법 사찰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조적·제도적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여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후략) - 문재인 (국회의원)"

문재인 대통령이 비판했던 검찰의 '꼬리 자르기' 수사의 구조적 원인은 청와대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시킨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6년 전 밝혔듯이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조적·제도적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에 대해 지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실패 역시 여기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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