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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인생 최고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돌아보는 독일전과 그 이후[독일전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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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신태용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26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에서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때 국민의례 사진을 배경으로 촬영에 응하고 있다. 성남 |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독일전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시계를 꼭 일 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8년 6월27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이 1승의 의미는 숫자 그 이상이었다. 한국은 2연패를 당했으나 독일을 두 골차로 이기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면 16강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스웨덴이 멕시코를 이기면서 뒤집기 16강은 좌절됐으나 한국이 이긴 팀이 독일이라는 존재감은 컸다. 당시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세계랭킹 1위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셀러브리티 개리 리네커는 한국의 승리를 본 뒤 “축구는 90분간 싸워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는 나의 1990년 발언을 이제 수정할 때가 됐다”고 했다.

자연스레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신태용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신 감독은 월드컵 1년 전,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떠난 대표팀에 소방수로 부임했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2경기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본선 진출 실패 위기까지 몰린 팀을 가까스로 구해냈고 연속 기록을 9회까지 이어갔다. 대회 직후에는 조별리그 탈락에 대한 책임론이 일기도 했으나 ‘카잔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대반전극은 오늘날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이끈 모멘텀으로 여겨진다. 지난 26일 독일전 승리 1주년을 앞두고 성남 자택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신 감독의 표정은 한결 편안했다. “독일전은 내가 감독직을 수행하며 치른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다. 인생을 통틀어도 가장 머릿속에 크게 남아있다“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건 감독으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지만 선수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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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의 신태용 감독과 선수단이 2018년 6월27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국민의례를 준비하고 있다. 카잔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이제는 말할 수 있다…“독일전 인터뷰, 전술이었다”
당시 신 감독은 독일전 사전 인터뷰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상대할 팀이 디펜딩 챔피언이다. 우리가 아무리 조직력으로 부딪혀도 독일이라는 벽을 쉽게 넘지 못할 거란 느낌이 든다”는 발언 탓이었다. ‘감독이 먼저 기가 죽었다’, ‘선수단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이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신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이 아시아 팀을 제대로 된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마지막 평가전을 통해서 자만하는 태도를 봤다. 한국에도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라도 이기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본다면 한국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던 독일이 그때부터는 경계심을 갖고 준비하리라 생각했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그들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내부에선 ‘한 번 일을 내보자’는 의지가 들끓었다. 신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조별 예선 경기는 물론 대회 참가 전 치른 평가전들까지 철저히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용병술을 뚝심있게 밀고 갔다. 핵심 전력이었던 기성용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민 역적’으로 몰려있던 장현수 카드를 고집한 게 대표적이다. 경질론까지 점쳤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신 감독은 “2차전이 끝난 후 현수가 ‘더이상 팀에 민폐를 끼칠 수 없다’며 3차전에 못 뛰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성용이가 다친 이상 그 자리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는 현수 뿐이었다. ‘난 돌아가면 대표팀 감독 그만 할거다. 다 내려놨으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깨끗하게 옷을 벗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설득했다”고 돌이켰다. 결국 독일전에 선발 출격한 장현수는 흔들리지 않고 신 감독의 주문을 잘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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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2018년6월27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카잔의 카잔 아레나에서 진행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신태용 감독을 끌어안고 있다. 카잔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원래 그런 걸 즐기는 놈” 손흥민, 독일전이 낳은 최고 ★
아시안게임 금메달부터 벤투호의 선전,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까지 한국 축구의 부흥을 지켜본 신 감독은 “정말 가슴 뿌듯하다”고 했다. “만약 독일에 졌다면 그대로 늪으로 빠져들지 않았겠나”라며 최대 수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태극전사들에게 장착된 ‘자신감’이다. 그는 “공은 둥글다는 걸 확인했다. 객관적으로 실력이 모자랄 경우 어떤 것을 해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 깨닫게 된 계기였다”며 “아무리 감독이 전술을 짜낸다고 해도 선수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의심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예전이라면 우리가 먼저 기가 죽었겠지만 이젠 누구라도 일단 한 번 해보자는 자신이 생겼다. 한국 축구가 큰 힘을 갖게 됐다”고 바라봤다.

두 번째는 독일전이 낳은 최고의 스타 손흥민이다. 이를 계기로 지난 1년간 소속팀에서도 ‘커리어 하이’를 달리며 세계 최정상의 반열에 올라섰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대표팀의 ‘주장’ 구실까지 소화하고 있다. 손흥민을 얘기하는 신 감독의 목소리에서는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아시안컵을 위해 UAE에 온 직후 중국전 풀타임 가까운 시간을 뛴 손흥민을 떠올리며 “(감독이)선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나는 걔를 잘 안다. 흥민이는 그런 걸 즐기는 놈이다. 체력 저하, 시차 적응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고 이 정도를 소화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며 일화도 소개했다. 신 감독은 “훈련을 마친 뒤에도 자신만의 슈팅 훈련을 빼놓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꼭 그걸 마무리하더라. 흥민이를 예쁘게 보는 이유다. ‘손흥민존’도 결국 이런 노력에서 나왔다. 대성할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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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꺾은 축구대표팀이 2018년 6월2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신태용 감독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공항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신태용의 제언 “K리그여, 패배를 두려워 말라”
인터뷰 말미 신 감독은 자신이 인터넷에서 읽은 댓글 하나를 입에 올렸다. “월드컵 때나 축구에 관심 가져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라고 하더라”며 자조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K리그가 살아야 한국 축구도 계속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국 리그를 토대로 선수 수급이 원활해야 대표팀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잔의 기적’에 남은 마지막 과제다. 사실 새롭진 않다. 성남 일화의 지휘봉을 잡았던 10년 전부터 입이 닳도록 해온 얘기다. 유스 육성 정책 업그레이드, 스타플레이어 중심의 마케팅 탈피 등 고민의 시간 만큼이나 제언의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동료 지도자들에게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최소한 지지 않는 경기보다는 적어도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팬들은 ‘패배는 아쉽지만 잘했다’고 생각하고 다음을 기대한다. 반면 느슨하게 경기하다가 1-0으로 승리했다고 치자. 팬들은 ‘이런 경기를 90분이나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라며 욕할 수 있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팬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렇다면 신 감독의 철학을 K리그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그는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내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을 믿어준다면 어디가 되든 좋다. K리그에서부터 해외 진출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다음 여정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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