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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IF] 가재와 게 껍데기,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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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과학계에서는 천연 물질을 이용해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크게 늘고 있다. 현재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분리한 고분자 물질로 만드는데, 완전히 분해되려면 수백 년이 걸려 생태계에 심각한 오염을 일으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가재·게와 같은 갑각류의 껍데기에 주목하고 있다.

가재의 껍데기에는 '키틴'과 '키토산'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를 가공하면 플라스틱 대체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천연 물질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분해돼 사라지고, 양도 유기물질 중 셀룰로오스(식물 세포벽 주성분) 다음으로 많아 원료 확보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바다에서 거꾸로 플라스틱 오염의 해결책을 찾고 있는 셈이다.

생분해되고 항균 기능까지 제공

갑각류 껍데기의 약 30~40%는 키틴으로 이뤄져 있다. 키틴은 플라스틱의 주원료인 폴리에틸렌처럼 사슬 구조로 이뤄진 고분자 물질로, 열을 가하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 자연에서 수개월 내에 완전히 분해가 된다. 매년 전 세계에서 600만~800만 톤의 갑각류 껍데기 쓰레기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마구 버려지는 키틴을 활용해 플라스틱을 만들려는 연구가 최근 활발하다. 키토산은 키틴에 열을 가해 일부 성분이 바뀐 물질이다.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식품과 화장품에도 많이 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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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대와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공동 연구진은 지난 3월 키틴을 사용해 친환경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분쇄기를 이용해 껍데기를 곱게 부순 다음 식초로 녹여 키틴을 얻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얻은 키틴에 열을 가해 원하는 형태의 플라스틱 용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최근에는 쉘워크라는 스타트업을 세워 키틴으로 제작한 플라스틱 컵과 그릇 등 일회 용기를 판매하고 있다. 연구진은 "모든 제품에는 화학 첨가물이 사용되지 않고 잘 분해돼 나중에 퇴비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스타트업 크루즈폼은 올해 초부터 키틴으로 만든 서핑 보드를 판매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부러진 서핑 보드를 바다에 그대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폴리스티렌으로 만든 기존 보드는 완전 분해되기까지 최소 500년이 걸린다. 반면 이 업체의 친환경 서핑 보드는 6개월 정도 지나면 햇빛에 분해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최근 폐비닐 처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키틴 소재로 대체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황성연 박사는 지난 4월 자연에서 100% 분해되면서 강도가 기존 친환경 비닐보다 2배 높은 비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수준으로 가늘게 뽑아낸 뒤 이를 목재 펄프에 첨가해 가로·세로 30㎝ 크기의 친환경 비닐봉지로 만들었다. 연구진은 이 봉지를 땅속에 묻었더니 6개월 내에 모두 분해됐다고 설명했다.

게 껍데기로 만든 천연 비닐은 일반 비닐과 달리 환경 호르몬 배출 문제가 없는 데다 항균(抗菌) 기능도 한다.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키토산 덕분에 식품 부패를 막는 것이다. 황성연 박사는 "키토산이 들어간 비닐과 폴리에틸렌 성분의 일반 비닐을 나란히 대장균에 노출시켰는데 48시간이 지나자 기존 비닐은 대장균이 거의 죽지 않았지만 친환경 비닐의 대장균은 90%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독성물질 대신 미생물로 키틴 추출

키틴 플라스틱은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서 독성물질을 쓰고 유해물질도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는 키틴을 얻으려면 염산과 수산화나트륨 등 다량의 독성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버려지는 물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만만치 않다.

스코틀랜드 바이오기업 쿠안텍은 지난 4월 갑각류 껍데기를 분해하는 세균을 이용해 키틴을 추출하고 이를 이용해 친환경 식품 포장 비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업체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영국 수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스 앤드 파트너스에 키틴 비닐을 공급할 예정이다.

머레이 그린 쿠안텍 최고경영자(CEO)는 "미생물 공법으로 수산화나트륨 사용을 기존 대비 5% 수준으로 줄였고, 에너지 사용도 3분의 2로 낮췄다"며 "항균 기능으로 연어의 유통기한도 기존 포장 비닐보다 3일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최근 갑각류 껍데기에서 단백질 등 키틴을 제외한 물질만 골라 섭취하는 미생물을 발견했다. 이 미생물을 이용하면 키틴 추출 과정에서 단백질 제거에 쓰는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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