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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창출·제로페이 재원 출연 하라”… 압박 시달리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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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금융당국 요구에 ‘속앓이’ / 금융위 “일자리 기여도 8월 공개” / 5대 은행, 비대면 거래 증가에도 / 하반기 신입행원 확대 채용 검토 / 정부는 “최소 10억 내라” 공문 / “은행에 떠넘기기 지나쳐” 불만

세계일보

시중은행들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압박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공개하겠다며 채용을 늘리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를 덜어주겠다며 만든 제로페이를 민간 법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출연하라고도 한다. 은행권은 두 가지 요구 사항이 모두 ‘자율’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팔비틀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시중 5대 은행은 올해 채용 규모를 최소 100명 이상 늘리는 방향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달 초 금융위원회가 ‘금융권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해 오는 8월 공개하겠다’면서 은행의 직접 고용과 아웃소싱을 통한 고용, 다른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 고용유발계수 등으로 직간접적인 기여도를 측정하겠다고 한 게 계기가 됐다.

금융당국은 ‘단순한 측정’일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시중은행들로선 눈치를 살피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은 이미 상반기 신입 행원으로 1010명을 뽑아 지난해보다 약 120명을 늘렸는데도 당국 압박에 하반기 더 많은 인원을 뽑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350명 채용 계획을 세운 신한은행은 하반기 650명을 더 뽑아 1000명을 채울 예정이다. 지난해 계획보다 100명 늘어난 수치다. 우리은행도 지난해보다 100명 많은 1100명을 올해 말까지 채용할 계획이고, 지난해 각각 600, 500여명의 신입행원을 뽑은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도 하반기 신입 채용 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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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 고용을 마냥 늘리기가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최근 몇 년 새 디지털화 영향으로 비대면 거래가 대폭 늘면서 은행은 영업점 수와 인력을 줄여가야 하는 상황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무조건식으로 고용을 늘리라는 압박은 이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실패를 업계에 떠미는 것”이라며 “당국이 은행들 스스로가 고용을 늘리도록 낡은 규제 철폐 등으로 신사업으로 진출을 유도하는 방향이 맞는 게 아닌가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로페이 민간 법인 전환 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출연하라는 정부 제안이 압박으로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각 은행들은 ‘요청공문’ 여부를 놓고 ‘최소 출연금 10억원을 명시한 공문이 왔다’, ‘공문이 아닌 참고자료 등을 통해 출연을 검토하라는 구두지시가 내려왔다’ 등으로 말이 다르기는 하지만, 적어도 제로페이 민간 법인화 작업에 필요한 돈을 내라는 권유를 받은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은행들은 정부가 처음부터 수익이 나지 않을 제로페이를 예산을 들여 만들어놓고 은행에 민간화 출연금을 떠넘기는 건 지나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특히 은행 대부분이 계열사로 카드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제로페이가 활성화하면 카드사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인데 제로페이에 출연하는 게 시장논리상 맞느냐고 지적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상공인 부담 완화’라는 좋은 명분을 내세우는 사업에 대놓고 출연금 요구를 거절하기엔 정부 눈치가 보이고, 불이익 우려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제로페이 활성화는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닌가.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한 ‘관제페이’에 왜 민간 은행이 나서서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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