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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스포츠 포커스] 노 캐디, 노 카트… 여자 골프 혁명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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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세계대회서 체력 한계 절감… 강민구배 여자아마골프선수권

전동카트 타는 관행 포기하고 체력 키우려 걸어다니게 해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의 요람인 강민구배 제43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가 막을 올린 25일 유성컨트리클럽. 1번홀로 내려가는 길목에 최근 우승자들의 얼굴이 담긴 깃발이 나부꼈다. 2005년 신지애, 2006년 김세영, 2012년 김효주, 2013년 고진영, 2015년 최혜진 등 국내와 미국·일본 무대를 주름잡는 화려한 면모들이다. 이 대회는 1976년 창설돼 2000년부터는 유성컨트리클럽에서 줄곧 열리고 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 열린 이날 경기에서 선수들은 18홀 내내 골프백을 얹은 수동· 전동 카트를 손으로 끌고 다니거나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걸었다. 캐디도 없었다. 혼자서 코스 공략을 결정하고 그린을 읽으며 플레이했다. 한 전문가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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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배 제43회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가 막을 올린 25일 유성컨트리클럽에서 출전 선수들이 수동 카트를 직접 밀며 경기를 치르는 모습. 대한골프협회는 국제무대에서 체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치르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선 이 같은 ‘노 캐디, 노 카트’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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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대부분 국내 아마추어 대회는 주말 골퍼들처럼 네 명이 한 조로 전동카트를 타고 다녔고, 클럽하우스 캐디가 조언을 해주고 클럽을 건넸다. 전동카트가 보급된 1990년대 이후 이 같은 관행이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노(NO) 캐디, 노(NO) 카트' 원칙에 따라 경기한 선수들이 가파른 코스를 걸어 올라갈 땐 "에고 힘들어~" 소리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한동엽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연구 교수는 "셀프백에 적극 찬성이다. 여자 선수들의 경우 16~17세 때가 생리적으로 최고 피크다. 이때 체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래야 프로가 됐을 때 여유가 있다. 기술은 나중에 경험과 연습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선수들이 일찍 은퇴하는 조로(早老) 현상도 주니어 시절 체력을 키우지 못한 탓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1라운드 결과 평균 타수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 평균 74.1타에서 올해 74.3타로 0.2타 정도 늘어났다. 중학 1학년인 이정현(운천중)이 5언더파 67타로 고등학교와 대학교 언니들을 제치고 단독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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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선 선수가 전동 카트를 타고 이동했다. /유성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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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던 플레이 시간은 작년 5시간13분에서 올해 5시25분으로 12분 늘었을 뿐이다.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늦었다고 보기 힘들다. 다만 이번 대회에선 전동카트를 끄는 선수가 수동카트나 골프백을 메는 것에 비해 다소 체력적으로 유리하다는 형평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지난해 US여자아마추어오픈 준우승자로 이번 출전 선수 중 세계 아마추어 랭킹(6위)이 가장 높은 전지원(22·앨라배마대학)은 골프백을 메고 경기했다.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온 그는 고등학교는 호주, 대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 그는 "호주와 미국 모두 주요 대회는 노 캐디, 노 카트가 기본"이라며 "한국에서 경험하지 않았던 거여서 처음엔 두려웠는데 적응되니까 체력도 좋아지고 코스에서 독립심이 생기더라"고 했다.

한국 아마 골프가 '노 캐디, 노 카트'를 시도하는 것은 최근 국제대회 성적과 관계가 있다. 한국은 지난해 아일랜드 더블린 세계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남자는 72개 출전국 중 23위에 그쳤고, 여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했다. 2016년 대회에서 여자는 우승, 남자는 13위였다. 당시 현장에 갔던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은 "성적보다 더 심각하게 느낀 것은 체력 차이였다"고 했다. 세계 아마추어 대회는 '노 캐디, 노 카트'가 원칙이다. 대회 초반 상위권에서 경쟁하던 한국 선수들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체력 문제로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허광수 대한골프협회 회장은 "올해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과 한국주니어선수권, 한국아마추어선수권부터 '노 캐디, 노 카트'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며 "한국 골프의 기본 패러다임을 지금부터라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대전=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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