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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상 당할 때나 휴가” 집배원 첫 파업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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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률 93% … 내달 9일 돌입 예고

예비인력 없어 휴가자 일 맡아야

1인가구 늘며 배달 더 힘들어져

작년부터 34명 과로사 “못 참겠다”

우정본부 “증원은 국회 심의사항”

중앙일보

25일 서울 한국노총에서 열린 전국우정노조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우정노조 측은 92.9% 찬성으로 쟁의행위가 가결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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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집배원들이 소속된 우정노조가 사상 최초의 ‘총파업’이란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우정노조 측은 25일 “전날 총파업 실시 여부 찬반 투표 결과 93%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며 “쟁의조정 시한인 26일까지 우정사업본부가 조합의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다음 달 9일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정노조가 파업할 경우 우편물·택배 대란이 예상된다. 우정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1958년 우정노조가 출범한 이후 60년 만에 처음이다.

우정노조는 공무원 2만여명과 비공무원 7000여명으로 구성된 우정사업본부 내 최대 규모 노조다. 행정직 공무원과 달리 집배원 등 현업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파업 등 노동 운동이 허용된다.

우정노조는 “쟁의 행위의 압도적 찬성은 중노동 과로에 시달리는 집배원을 살려 달라는 조합원의 열망이 그만큼 뜨겁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기수철 우정노조 조사국장은 “지난 19일 충남 당진우체국 소속 강길식(49) 집배원의 사망 원인이 뇌출혈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지난해 집배원 25명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9명이 과로로 세상을 등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우편물이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1인 가구의 증가와 주택 분포의 확산으로 배달 집 수와 배달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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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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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노조 측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집배원 증원 ▶주 52시간제에 따른 임금 보전 ▶토요일 휴무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우편 물량이 감소한 데 비해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재정 상황이 악화했다”며 우정노조의 요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집배원들은 이렇게 된 구조적인 원인으로 ‘겸배(兼配)’와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꼽는다. 중소 도시에서 집배원으로 최근까지 일했던 익명을 요구한 전직 집배원은 “누군가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출근하지 못하면 못 나오는 사람의 몫을 나눠서 나머지 사람이 돌려야 한다”며 “내가 쉬면 다른 집배원이 고생할 게 뻔해 휴가도 일 년에 1~2일 정도만 쓰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상을 당하거나 아기가 태어나는 일 정도가 아니면 연차를 쓸 엄두를 못 내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박영환 우정노조 당진지부장은 “집배 예비 인력이 없다 보니 집배원 1명이 연차를 사용할 경우, 다른 집배원이 10~20% 정도의 초과 물량을 배달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이라 5월 말 기준 당진우체국의 외근직 근로자의 연차 사용일수는 평균 1.1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제도도 독이 됐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배달 마치면 2~3시간 우편물 분류 … 한달 두세 차례 토요근무까지

기수철 우정노조 조사국장은 “주 52시간을 지킬 수 밖에 없다 보니 시간 내 일을 끝내기 위해 노동 강도는 세지고, 연장 근로 수당 등이 줄면서 임금은 깎이게 됐다”고 말했다.

시간 내 일을 끝마치기 위해 단체협상에 명시돼 있는 2시간 근무 후 15분 휴식은커녕, 무급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조차 도시락으로 때우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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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노조 파업 찬성 관련 주요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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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뇌출혈로 집배원이 사망한 당진우체국의 경우 당번 조는 오전 7시 30분까지, 나머지 집배원의 경우 오전 8시까지 출근한다. 공동 분류작업과 개별 출국(배달) 준비를 마친 후 10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배달 업무를 한다. 마감 후 다음날 배달 우편물을 분류하고 나면 오후 7시~8시에 퇴근이 가능하다. 여기에 한 달에 2~3회 정도는 토요일에 근무해야 한다. 당진 우체국의 경우 1인당 하루 평균 배달 물량은 일반 통상 우편물 813통, 등기·택배 130개에 달한다(5월 31일 기준).

익명을 요구한 전직 집배원은 “오후 5시에 배달을 끝내고 우체국으로 돌아와 마감 정리를 한 뒤엔 다음날 배달할 등기와 택배를 분류해야 한다”며 “대도시엔 분류 기계가 있지만, 중소도시에선 기계가 없어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 국장은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되는 사무직과는 달리, 집배원 일은 미룰 수가 없는 일”이라며 “본인이 늦게 남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출근하든 분류 작업을 해놔야 당일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 측은 예산 부족과 국회 심의 사안이란 이유로 우정노조 측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우편 물량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집배 인력 1700여명을 증원했다”며 “특히 지난해엔 1112명을 대규모로 증원했다”고 말했다.

또 우정사업본부는 국가공무원법(공무원 기준)과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비공무원)을 고려해 편성한 예산으로 급여와 각종 수당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우정사업본부가 자체적으로 임금이나 수당을 올려주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토요일 휴무에 대해서도 “서민 생활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며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우정노조 측은 “3년간 1700여명의 인력 증원으론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반박한다. 기 국장은 “일반 우편 물량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등기·택배는 오히려 늘고 있고, 택배 같은 경우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2%나 늘었다”고 말했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다음 달 9일에 실제 파업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은 기간 우정 노조와의 대화를 지속해 최대한 조속히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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