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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자사고 폐지하면 고교 교육이 하향평준화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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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친절한 기자들】 재지정 평가 둘러싼 오해와 진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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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상산고와 경기 안산동산고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이 나면서, 자사고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입니다. 한쪽에서는 고고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 사교육 팽창 등 부작용을 일으킨 자사고에 대해 엄정한 평가를 통해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고교 체제 개편 속도를 더 내야한다고 촉구합니다. 반면 “평가를 빌미로 자사고 죽이기”를 한다거나 “학교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자사고 학생·학부모 등의 반발도 있지요.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오해는 없는지, 자사고 관련 궁금증을 모아 정리했습니다.

자사고를 폐지하면 하향 평준화되고, 다양한 교육이 안 되나요?

자사고가 애초 설립 취지처럼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에 방점을 찍었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10여년 동안 자사고가 대폭 늘었지만, 자사고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펴왔습니다.

교육부는 국어·영어·수학 편중 교육을 막기 위해 “국·영·수가 교과 총 이수단위의 50%를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일반고는 이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부여받은 자사고한테는 ‘권고사항’이지요. 자사고들은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명분으로 자율성이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뒤 사실상 일반고보다 국·영·수 교과 시간을 더 많이 배치해왔습니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은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을 원합니다. 정부는 이런 요구를 반영해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교육과정은 교과별 이수단위를 최소 수준으로 설정해 일반고도 선택 중심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오히려 일반고가 자사고보다 더 국·영·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지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학생 선발권만 사라질 뿐, 교육과정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상산고 같은 곳에서 오히려 다양한 아이들에 맞는 맞춤 교육을 해준다면, 일반고는 더 다양해질 수 있고 상향 평준화되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4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권혁선 전주고 교사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전북 자사고인 상산고와 일반고를 비교해보니 상산고는 80개, 일반고는 103개의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주당 수업 시간을 비교해보면 “상산고는 일반고보다 하루 1~2시간 이상 수업을 더 편성하고 있다”고도 지적했지요. 결국 “자사고는 교육과정 자율권을 이용해 교과 시수를 최대한 확보해, 학생들의 자율적이고 자기주도적 학습권을 오히려 박탈하고 입시 중심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수월성 교육이란 현실에서는 ‘소수의 뛰어난 학생들만 구분지어 교육을 시킨다’는 엘리트주의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교육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구현하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소수만을 특정 학교에 모아 더 뛰어나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수월성’ 개념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높은 학비를 지불할 수 있는 학생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들만의 학교’가 과연 우리 교육을 다양화했는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기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 아닌가요?

전국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그동안 전국의 학생들을 뽑아온 ‘선발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일반고로 전주 지역 학생들이 추첨을 통해 학교에 입학하게 되지요. 만약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내년에 1학년은 일반고, 2·3학년은 자사고 체제로 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혼란이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있는데요. 이범 교육평론가는 “자사고였다가 재정난 등으로 일반고로 전환된 학교 사례들을 보면, 과도기 중에 큰 혼란이나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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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안산동산고의 경우, 일반고로 전환되면 채플이나 종교 관련 교육을 할 수 없냐는 우려가 있는데요.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교육과정 안으로 편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채플은 선택과목이 되겠지만,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학교 재량으로 종교 관련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일반고의 자율성도 과거보다 크게 확대됐습니다.

상산고 같은 자사고가 일반고가 되면 지역 교육이 위기에 처하나요?

이러한 발언은 주로 전국에서 학생을 뽑는 상산고 등 10개의 자사고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예컨대 상산고는 한 학년 350여명 가운데 전라북도 학생은 70여명(전체의 20%)뿐입니다. 권혁선 교사는 “전북에는 130여개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중 상산고 70여명 때문에 전북 교육이 망한다는 말에 화가 났다”며 “상산고가 자사고로 전환된 뒤 오히려 전북 지역 교육 환경은 더 나빠졌다”고 전합니다. 전북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자사고가 많은 편인데, 상위권 학생이 특목고 외에도 자사고 등으로 빠지면서 일반고의 학생 분포 구조가 무너졌다는 것이죠.

오히려 이런 자사고가 지역 학생에게 더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학 육성법)에 따라 의대, 한의대, 치대, 약대 등에서 지역 인재를 30%까지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역에서 다녀야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는데, 올해 입시부터는 법 개정으로 고등학교만 지역에서 졸업하면 지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사회교육과)는 “얼마 전 전북대 의대 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런 제도 때문에 타 지역 학생들이 입학을 많이 하게 되고, 그 학생들이 대학 졸업하면 자기 고향이나 큰 도시로 떠나버려 의료 공백 현상이 걱정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습니다. 천 교수는 “지역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전북의 경우 지역 위기와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제 지역에서 살면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콘텐츠와 가치를 재생산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사고 폐지로 고교 서열화, 입시 위주 교육 같은 공교육의 문제가 해결되나요?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고교 서열화 문제가 당장 해결되거나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공교육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자사고 폐지는 교육 개혁의 시발점이자 고교 체제 개편의 첫 단계라고 말합니다.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우리 교육은 학생 선발권에 몰입하고 경쟁해왔는데, 단위 학교 차원에서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2025학년도에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 전에 해결돼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전 소장은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고교 체제 개편, 내신과 수능평가 시스템 전환, 교사 개인별 평가권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고교 체제 개편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전 소장은 자사고 설립 당시에 아이들을 분리해서 가르치는 한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 소장은 “학교 안에서 나와 다른 환경, 가정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야 서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동료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커뮤니티를 어떻게 구성해서 아이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킬 것인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사립학교는 어디까지나 공교육의 보완재 역할이며, 국공립 학교에 우선해 학생을 선발할 권리는 없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 금지 취소’ 소송에서 행정법원 판결문 내용을 살펴보면, “자사고가 국·공립학교에 우선해 학생을 선발할 권리는 헌법상 보장되는 사학의 자유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자사고로 전환하는데 우선 선발권이 주된 요소로 고려되긴 했지만, 사립학교는 공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인 만큼, 자사고 측은 학생 우선 선발권이 그대로 유지될 수 없음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사법부도 밝힌 바 있습니다. 자사고 부모들이 주장하는 ‘학교 선택권’이나 자사고가 주장하는 ‘학생 선발권’이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양선아 최원형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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