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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보수적 세계관 벗은 ‘디즈니 월드’, 다양성 가치 입고 ‘뉴 월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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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최근작 흥행 이유

‘알라딘’ ‘토이스토리4’ 박스오피스 1·2위…

원작과 다르게 성별 고정관념·인종 편견 없는 이야기로 부활

경향신문

추억의 힘일까, 아니면 변화의 힘일까. ‘정치적 올바름’을 기반 삼아 부활한 디즈니 과거 명작들이 최근 극장가를 제패했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박스오피스 1·2위는 디즈니 영화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가 나란히 차지했다. 1993년 발표된 원작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한 <알라딘>은 관객 700만명을 돌파했고, 1995년 시리즈 첫 편을 발표한 <토이스토리4>는 개봉 4일 만에 121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친숙한 이야기와 캐릭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흥행 요인으로 분석된다. 다음달 17일 개봉하는 영화 <라이온킹>도 기대되고 있다.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의 주 관객층은 어린 시절을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과 함께 보낸 20~40대다. 추억의 힘이 세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추억보다 더 센 것은 과거 명작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현재로 길어올리는 디즈니의 힘이다. 최근 두 영화를 잇따라 본 회사원 조모씨(30)는 “어릴 적 디즈니 영화를 좋아했지만, 자라면서 성별 고정관념이나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보수적인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으며 불편해졌다”면서 “하지만 <알라딘>과 <토이스토리4>에는 원작과는 달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극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공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외형에서 벗어나 폴리네시아인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모아나> 속 모아나(왼쪽). 원작과 달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한 영화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가운데)와 <토이스토리4>에서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보핍(오른쪽).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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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작되고 있는 디즈니 리메이크·속편 영화 대부분은 이야기와 인물, 음악 등 많은 요소를 원작 그대로 이어간다. 달라진 것은 세계관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문화적 다양성을 배려하는 ‘정치적 올바름’이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예컨대 <알라딘>은 원작에서 보조적 역할에 그쳤던 공주 ‘자스민’을 극의 중심에 둔다. 그는 여성은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전근대적 법과 문화에 반발하는 독립적인 인물로 재탄생했다. <토이스토리4> 역시 2편 이후 자취를 감췄던 여성 캐릭터 ‘보핍’을 재소환해, 주인에게 종속된 인형이 아닌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주요 인물로 그려냈다.

“세 살 딸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금지했다.” 배우 키라 나이틀리의 지난해 발언이다. 과거 ‘디즈니 영화’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확산하는 ‘보수적 세계관’의 첨병처럼 여겨졌다. 이제 페미니즘을 포함한 정치적 올바름은 디즈니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정치적 올바름은 수렁에 빠졌던 디즈니를 구해낸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름답고 착한 여성이 남성의 선택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산다’는 평면적 ‘디즈니 월드’는 대중의 공감을 받는 데 실패했다. 디지털 기술과 진보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라이벌, 픽사와 드림웍스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 시기 디즈니는 경영 악화로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

‘살아날 구멍’은 지금의 CEO 밥 아이거와 함께 왔다. 2005년 부임한 그는 이듬해 경쟁사였던 픽사를 인수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2009년에는 마블스튜디오를 사들이며 ‘소수자 감수성’을 수혈했다. 디즈니는 거대해지는 동시에 다양해졌다. 2013년 <겨울왕국>은 ‘공주’라는 고전적 소재에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대로 녹여낸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공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외형에서 벗어난 폴리네시아인 여성이 주인공인 <모아나>(2016)도 호평받았다. 디즈니 계열사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마블스튜디오는 이전과는 다른 흑인, 여성 히어로를 내세운 <블랙팬서>(2018), <캡틴 마블>(2019)을 선보였다. 디즈니가 2012년 인수한 루카스필름은 여성과 다양한 인종이 중심이 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를 발표했다.

이러한 디즈니의 행보가 마냥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매력을 훼손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 미국 잡지 할리우드리포터 조사 결과 미국인의 55%가 영화를 리메이크할 때에는 시대상에 맞는 변화된 가치를 담기보다는 원작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1%만이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리메이크에 찬성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 최초로 아시아계 여성으로 출연한 배우 켈리 마리 트랜은 ‘시리즈의 전통을 훼손했다’는 원작팬들의 심각한 ‘댓글 테러’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안일한 수준'으로만 구현됐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토이스토리4>에서 '보핍' 캐릭터가 이전 시리즈보다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남성인 '우디'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디즈니가 앞으로도 진보적이고 참신한 콘텐츠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월 21세기폭스까지 인수해 경쟁자 없는 ‘초대형 공룡 기업’이 된 디즈니가 혁신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이미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이 더뎌진 상황”이라면서 “지금의 디즈니를 유지하려면 아이디어 뱅크 지원책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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