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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손님' 정겨운 벽화…'가슴 철렁' 쪽빛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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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대게 원조 마을 품은 울진 후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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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 등기산공원에서 출렁다리를 지나 바다 위로 스카이워크가 놓여져 있다. 후포리 ‘백년손님’ 벽화마을은 사진 오른쪽 등기산 뒤편이다. 울진=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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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돌초광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울진 후포항 입구의 아치형 광고판에는 아직도 지난 3월초 끝난 대게 축제 홍보 문구가 걸려 있었다. 해안선 길이만 112km에 달하는 울진의 최남단이자, 가장 큰 항구인 후포는 대게 항구로 널리 알려졌다. ‘영덕대게’의 브랜드파워에 밀려 한때 대게 공급 기지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울진대게’의 중심 항구로 떠올랐다.

◇대게마을에 ‘백년손님 남서방’ 벽화골목

특산물이든 음식이든 ‘원조’를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그럼에도 울진군은 ‘왕돌초’를 내세워 후포를 원조 대게 어항이라 주장한다.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약 25km 지점 동해상의 왕돌초는 동서 21km, 남북 54km에 걸쳐 있는 거대한 수중 암초로 대게를 비롯해 각종 어류가 서식하는 황금어장이다. 무엇이든 넉넉하고 후하다는 의미의 후포(厚浦)도 원래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을 뜻하는 ‘후리’에서 비롯됐다니 후포는 예부터 이래저래 큰 항구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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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 후포등대 부근에서 내려다본 후포항. 대게 집산지이자 울진에서 가장 큰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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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원조마을을 자부하는 평해읍 거일리 포구에 게 발 조형물이 서 있다. 뒤편은 해상 낚시터인 ‘바다목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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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읍 거일리 포구와 ‘바다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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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평해읍 거일리다. 거일리 포구 앞에도 ‘원조 대게 마을’을 알리는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왕돌초 해역에서 잡은 대게가 가장 먼저 육지에 닿은 곳이었다는 안내문도 장황하게 새겨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ㆍ임원경제지ㆍ대동지지 등 역사 문헌을 들춰 오래 전부터 이곳이 대게 집산지였고, 주민들이 불러온 마을 이름이 ‘게알’이었다는 점도 원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름은 대게철이 아니다. 후포항 주변 횟집과 식당에서 대게 요리를 맛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거의가 러시아산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5~9월은 대게잡이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홍게로 널리 알려진 붉은대게도 이달 말까지만 잡을 수 있다. 왕돌초광장에 위치한 후포여객선터미널 2층 홍보전시관에 가면 대게와 붉은대게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요 근래 후포에서 대게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지난해 종영한 SBS의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의 남서방(남재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서방 때문에 후포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어촌마을이 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마을은 왕돌초광장에서 도로 하나 건너 등기산을 빙 둘러싸고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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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 ‘백년손님’ 벽화마을 초입은 ‘진이발’ 외벽. 이발관 사장임이 머리 감기는 물통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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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의 남서방(남재현) 처가로 이어지는 골목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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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방 처갓집 앞에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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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과 식당, 수산물 가공공장을 지나면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진이발’ 사장님이 머리 감길 때 쓰는 물통을 들고 있는 대형 그림을 시작으로 백년손님을 주제로 한 벽화가 이어진다. 남서방과 ‘후타삼(후포리 타짜 삼인방)’ 외에 대게, 오징어, 문어 등 주민과 뗄 수 없는 수산물을 소재로 한 그림이 낮은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삼척 정라진이나 동해 논담골처럼 이곳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산자락에 빼곡히 자리를 잡았을 텐데, 그 가난의 그림자는 밝고 정겨운 벽화로 어느 정도 가려졌다. 파랑과 빨강 계열 원색 지붕 아래 마당에 소나무 가지가 늘어진 집 담장엔 소나무 기둥, 장미꽃이 화사한 담장엔 붉은 장미, 능소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 담장엔 능소화 넝쿨을 그렸다. 이도 저도 없는 담장에는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여인으로 장식했다. 소담스러운 벽화 골목을 빠져나가면 정식 이름도 갖지 못한 작은 해변이 반긴다.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바다색이 초록이다. 모든 것이 비워진 휴식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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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아트 형식의 후포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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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일까, 쉼터일까. 꽃 그림 담장에 낡은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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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공원과 후포리 쪽빛 바다

후포항 뒤쪽 바다로 톡 튀어나온 산마루, 등기산은 바다와 항구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쪽에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바닷가에서도 길이 나 있다. 마을에서 오르는 계단은 물고기 모양 타일로 장식돼 있다. 계단 중턱에 1998년 막을 내린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한 집이 있다. 벌써 20년도 더 된 드라마 촬영장을 표시해 놓은 게 의아한데, 울진으로서는 아쉬움이 큰 장소다. ‘그대 그리고 나’는 후포와 영덕 강구를 오가며 찍었지만 주 무대는 강구였다. 최고 시청률 66.9%를 찍은 드라마 덕에 강구항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영덕대게’가 명성을 얻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영덕에 대게의 명성을 빼앗긴 울진의 회한을 보는 것 같아 슬쩍 웃음이 묻어난다. 촬영장에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알록달록 원색 지붕의 후포리 마을이 정겹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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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에서 등기산 오르는 길목의 ‘그대 그리고 나’ 촬영장 표시. 무려 21년 전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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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공원의 신석기유적전시관. 바로 이 자리에서 출토된 유적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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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능선에 오르면 가장 먼저 돔 형태의 작은 전시관이 눈에 띈다.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으로 1983년 이곳에서 발견된 신석기인의 집단 매장 유적과 유물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진품은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 아쉽다.

언덕 가장자리로 발길을 옮기면 1968년부터 불을 밝힌 하얀 등대가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등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등기산은 낮에는 흰 깃발로, 밤에는 봉홧불로 어선의 길을 밝혀온 곳이었다. 등대 하나가 불을 밝히던 이 언덕에 산책로가 나고 정자가 들어서더니 지난해에는 스카이워크까지 설치됐다. 오래된 나무 그늘에서 선선한 바닷바람 맞으며 하염없이 망망대해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시절이 된 거다. 땅끝에서 연결된 구조물은 거침없이 바다를 침범한다. 하늘을 이고 살아온 바닷가 주택 위로는 출렁다리가 지나고, 수십m 공중에서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일렁이는 초록 바다는 차갑고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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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에서 스카이워크로 이어지는 출렁다리. 마을 위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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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 무료 입장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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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갓바위와 초록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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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워크 외에도 등기산 공원에는 이집트 파로스, 스코틀랜드 벨록, 프랑스 코르두앙, 독일 브레멘하펜 등 세계의 특색 있는 등대 모형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 지중해를 연상케 하는 전망대와 몇 가지 설치 작품도 마련해 사진 찍기 좋도록 했다. 바다 조망은 기본이고 보기에 깔끔하고 산책하기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것이 동전의 양면 같아서 이따금씩 길손이 우연히 들러 땀을 식히고 가던 옛날의 호젓함은 사라져 버렸다.

스카이워크 바로 앞에 ‘동해바다-후포에서‘라는 신경림의 시비가 서 있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어지러운 세상에서 남에겐 엄격하고 나에겐 너그럽게 살아왔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어가 새겨져 있다. 주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망망대해만 주시하며 온전히 파도소리에 귀 기울일 때만 건져낼 수 있는 시심이다. 나 보란 듯 바다 위로 삐져나온 콘크리트 난간에서 나들이객의 호들갑스런 탄성을 들으며 나올 수는 있는 감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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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에 설치된 지중해풍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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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에 설치한 독일 브레멘하펜 등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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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의 프랑스 코르두앙 등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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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공원의 키스 조형물과 팽나무. 사진작가들이 일출 사진을 주로 찍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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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서 보는 후포항 풍경도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한갓지던 해변 귀퉁이에는 마리나항 건설 공사가 한창이고, 대게와 홍게 경매가 이뤄지는 수협공판장 뒤편엔 덩치 큰 새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등기산 공원에서 시인의 서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곳이라면 오래된 팽나무 주변이다. 등기산이 공원으로 조성되기 전부터 사진작가들이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알음알음 발길을 하던 자리다. 짙은 팽나무 그늘 너머 검푸른 바다에 한낮의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고, 살랑대는 바닷바람에 노란 살구 몇 알이 툭 떨어져 언덕을 데굴데굴 구른다. 바로 옆 산책로에는 까맣게 익어 윤기 반들반들한 버찌가 무심한 발길에 톡톡 밟힌다.

사진으로 남기는 바다가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바다 여행을 바란다면 고려시대 바다 전망대인 월송정이 그만이다. 후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측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있다. 행정구역상 평해읍인데 후포가 평해의 일부였던 점을 고려하면 구분에 의미가 없다. 관동팔경의 하나라는 수식에 고전적이고 진부함이 느껴질 법한데, 주변에 현대식 관광시설이 없어서 분위기가 한없이 호젓하다. 월송정의 한자 표기는 달빛과 어울린 솔숲(月松)이 아니라 솔숲을 날아 넘는다(越松)는 의미다. 이름처럼 정자 주변에 아름드리 솔숲이 조성돼 있다. 월송정 솔숲은 평해사구습지 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빼곡한 산책로를 걸으면 솔 향과 바다 내음에 흠뻑 젖어 든다.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의 재주야 넘을 수 없겠지만 시심만큼은 뒤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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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정에서 평해사구로 이어지는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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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무렵 월송정 평해사구 앞바다. 갈매기들이 바위 하나씩 꿰차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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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면과 평해읍 주변 관광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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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항 여행 정보

▦고속버스가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까지 하루 18회, 후포까지 6회 운행한다. 4시간~4시간30분가량 걸린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동해고속도로 근덕IC에서 후포항까지 약 100km,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약 120km 거리다. 서울에서 전체 경로는 풍기IC에서 봉화를 거쳐 가는 길이 짧지만, 금강송면부터 울진까지 도로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남부지방에서 가면 상주영덕고속도로 영덕IC에서 약 40km 거리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별도로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만 문을 열어 일출과 일몰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후포항에서 월송정까지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면 7번 국도로 안내한다. 그보다 해안도로를 이용하면 거리도 짧고 작은 포구와 바다 정취를 즐기기 좋다. ▦후포항의 울진요트학교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1인 3만원이면 하루 종일 요트ㆍRC요트ㆍ트램펄린ㆍ래프팅 등 4가지 해양 레포츠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지치지 않는 체력이다.

울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