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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배중 기자의 핫코너]‘사회인 리거’서 프로로, 첫 비선출 KBO리그 출격 앞둔 한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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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야구에는 나름의 위계가 있다.

프로구단을 거쳤거나 고교 혹은 대학까지 엘리트 선수로 활약한 일명 ‘선출’, 야구를 오래 전 그만뒀지만 어린 시절 기본기를 배우고 경기에도 나가 일반인보다 기량이 좋은 ‘중출’(중학교 선수 출신), ‘초출’(초등학교 선수 출신) 등. 선출 꼬리표가 붙으면 프로무대에서 쓴맛을 봤을지언정 사회인 리그에서는 일반 동호인들보다 실력이 좋아 각 팀에서 프로구단의 외국인 선수 같은 대우도 받는다.

‘비선출’(선수 출신이 아닌 일반인을 지칭) 중 야구를 잘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선출이 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거쳤기에 치명적인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지 않은 이상 선출과 비선출의 엄연한 실력의 경계선은 있다. 그렇기에 선출 중 투수에게 만 40세 이전까지 투구를 금지시키거나 타자에게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규제하는 등 각 리그에서 선출과 비선출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지만 선출은 ‘낭중지추’처럼 그라운드에서 선출 특유의 포스를 뽐낸다.

그런 사회에서 최근 위계를 뒤흔든 한 인물이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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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회인 야구를 하다 독립리그, 일본 독립리그를 거쳐 지난해 프로구단 LG의 지명을 받고 1군 데뷔를 앞둔 한선태.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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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태(25·LG).

비선출로 서울경기지역 사회인 리그에서 활약하던 그는 지난해 비선출 사상 최초로 프로구단 LG의 지명(2차 10라운드 95순위)을 받았다. 부천공고에서 금형 기술을 배우던 일반 학생으로 고3때까지 야구공을 잡아본 적이 없다는 한선태는 약 7년 뒤 십 수 년 동안 밥 먹고 야구만 한 엘리트들도 바늘구멍이라 여기는 프로구단 지명, 더 나아가 1군 진입에도 성공했다.

류중일 LG 감독이 13일 서울 잠실구장으로 그를 불러 불펜투구를 지켜본 뒤 약 열흘 만이다. 퓨처스리그에서는 이미 0점대 평균자책점(19경기 25이닝 1패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0.36)으로 검증을 마쳤다. 25일 동아일보와 연락한 한선태는 “어제까지 정말 긴장됐는데 다행히 잠은 잘 잤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선태의 ‘프로 입문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야구의 ‘야’자도 몰랐지만 소질이 있던 청년은 매년 기량이 급성장했다. 스무 살이 된 2013년부터 사회인 리그 기록통계사이트 게임원에 ‘족적’을 남긴 한선태는 2017년까지 5년 동안 투수(타자기록은 제외)로 5개 팀에서 82경기 34승 11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했다. 군 제대 후인 2016~2017년에는 매년 30경기 이상을 뛰며 평균 90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도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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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태의 사회인리그 성적은 사실 경이롭다. 사회인 리그는 동호인들이 ‘괴물’ ‘흉기’ 등으로 부르는 고반발력을 가진 알루미늄 혹은 카본 배트를 들고 나와 무자비(?)한 타격전을 벌여 매 경기 팀별로 10점대의 점수가 나오는 걸 어렵지 않게 본다. 또한 타격 친화적이기에 야수들의 실책에도 비교적 관대하다. 선출이 드물기에 수비실책도 잦아 야수들의 도움을 받기도 녹록치 않다. 타석에서 손맛을 못 봐 슬픈 표정을 짓는 이가 있을지언정 마운드에서 실점을 많이 했다고 같은 표정을 짓는 이는 없다. 10점을 내주면 11점을 내서 이기면 된다.

그런 ‘정글’에서 비선출이 기록한 초특급 성적이다. 한선태와 한 팀에서 활약했거나 그를 본 동호인들은 한선태를 야구에 미쳐 레슨장에서 마치 선수처럼 훈련에 열중하던 선수, 공이 매우 빨랐던 선수로 기억한다.

사회인 리그에서 보기 드문 언더핸드 투구동작으로 시속 120~130km 사이의 강속구를 손쉽게 뿌렸던 한선태는 2017년 팔각도를 올려 스리쿼터로 동작을 바꾼 뒤 구속이 10km 증가했다. 구속만큼은 고교야구 엘리트 선수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비선출들이 엄두를 낸 적 없는 ‘프로진출’을 꿈꾼 것도 이맘때다. KBO리그에 비선출의 프로진출 규정이 없어 좌절할 만도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는 한편 일본진출도 염두하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17년 가을 한선태를 프로선수로 탈바꿈시켜준 ‘선출’ 김수인 쇼케이스포츠 대표를 만나 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로 진출했고, 그곳에서 일본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등서 활약했던 김무영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성장했다.

그사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규정을 신설(2018년 1월 이사회)해 비선출의 프로진출 가능성을 열었고 한선태는 그해 8월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일반인 자격으로 참가해 시속 145km의 공을 던져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한 달 뒤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100명 중 95번째로 LG의 부름을 받았다.

엘리트에 비해 하얀 도화지 같은 한선태의 학습력도 어마무시했다. 프로구단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한선태는 짧은 시간 동안 2군 무대에서 주름잡을 만큼 성장했다. 입단 직전까지 입단동기 중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던 그는 야구를 잘해 엘리트 출신들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팀 내 ‘셀럽’이 됐다. 프로입단 전 최고 146km까지 던져봤다던 그는 2군에서도 146km의 공을 던져 입단 전 자기 PR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도 증명했다.

한선태의 장점은 일반인이라 하기에 뛰어난 운동신경과 영리함에 있다. 김 대표는 “비선출인 한선태가 공을 던지는 걸 보고 어느 날 문득 프로구단 유니폼을 입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유연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다”고 한선태에 대한 첫 인상을 설명했다. 한때 프로구단 지명을 받았던 선출의 눈에도 한선태는 ‘물건’이었던 것. 게다가 한번 가르치면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단다. 일본에서 투수 출신의 김무영 코치에게 주자견제, 번트수비 등 디테일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배워 결코 고교 선수보다 기본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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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립리그 소속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활약할 당시의 한선태. 한선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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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태를 계기로 KBO리그도 선수층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김 대표는 “한선태 이후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비선출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눈에 그중 2명이 한선태와 비슷한 자질을 선보여 성인인 1명은 올해 트라이아웃에서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선태가 1군 무대에서도 진화한 모습으로 만화 같은 모습을 이어간다면, 소위 ‘밭 갈던 마크 트라웃’들이 스파이크를 고쳐 매고 수준 이하 경기력으로 지탄받고 있는 위기의 KBO리그를 구하러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한선태의 KBO리그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