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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비누·칫솔도 없이 악취 진동"…美, 이민아동 수백명 방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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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격리해 멕시코 접경 구치소에 350명 수용…수주간 씻지도 못해

"독감에 기생충 감염된 아이도"…비난일자 뒤늦게 다른 시설로 이송

연합뉴스

2019년 6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 카운티 클린트에 있는 국경순찰대 기지의 모습.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미국 텍사스주의 멕시코 접경 국경지대에서 부모와 격리된 이민자 어린이 수백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가까이 구금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텍사스주 엘패소 카운티 클린트에 위치한 국경순찰대 구치소에는 최근까지 350명이 넘는 이민자 어린이와 젖먹이들이 갇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 가족의 부모와 미성년 자녀를 격리해 수용하는 '가족 분리' 정책을 펴다가 연방법원이 이를 금지토록 하고 아동학대라는 비난 여론이 일자 작년 6월 중단했다.

하지만, 그 이후 자녀 단위로 입국하는 중미 출신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민자 억류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일부 어린이들을 별도의 시설로 옮겨 수용한 것이다.

이달 중순 현지 변호사들이 확인한 구치소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국경을 넘은 뒤 한 달 가까이 옷을 갈아입지 못한 어린이들의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젖먹이를 안은 10대 엄마의 옷은 모유로 얼룩져 있었고, 도와주는 사람은 물론 일회용 기저귀조차 없어 7∼8살 어린이조차 아기들을 돌보는데 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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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3일 미국 텍사스주 맥앨런시에서 억류시설에서 풀려난 이민자 어린이들이 이민자 지원센터에서 다른 어린이들과 놀이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자료사진]



이들에겐 비누와 치약, 칫솔도 지급되지 않았다.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어린이들은 수 주 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으며, 배가 고파서 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컬럼비아 로스쿨 이민자 인권 클리닉의 엘로라 무케르지 국장은 "이렇게 끔찍한 환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맨바닥에서 한 달 가까이 잠을 청하다 보니 어린이 중 상당수는 독감에 걸렸다. 이 등 기생충에 감염된 어린이도 다수였다.

규정상 이민자 어린이들은 체포 후 72시간 이내에 미 보건복지부(HHS) 산하 보호시설로 옮겨져야 한다. 하지만 관련 당국은 보호시설이 포화 상태란 이유로 어린이들을 구치소에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거센 비난이 일자 국경순찰대는 구치소에 있던 어린이 중 약 300명을 보건복지부 산하 보호소와 엘파소의 임시 천막 시설로 이송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토안보부 당국자는 엘파소 천막 시설의 환경은 구치소보다 훨씬 나은 편이라면서 어린이들이 도착하자마자 건강 검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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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미국 텍사스주 맥앨런의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온두라스 출신 불법 이민자가 미국 국경순찰대에 체포돼 신체검사를 받자 두려움에 질린 어린 딸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EPA=연합뉴스자료사진]



하지만, NYT는 이민자 억류시설 대다수가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까닭에 천막 시설의 실제 생활환경이 어떤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멕시코와의 국경을 통해 불법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이민자 행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한 멕시코 정부가 국경에 군병력을 배치하면서 다소 주춤하는 추세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보호시설에 수용된 이민자 어린이를 데려가려는 가족 구성원의 지문을 채취하도록 한 정책을 완화한 것도 어린이와 젖먹이들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문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칫 신원과 함께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 체포되거나 강제송환 될 것을 우려했던 미국 내 가족이 좀 더 신속히 어린이들을 데려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있는 불법 이민자 규모는 1천100만 명으로 추정되며, 멕시코와 중미 출신이 절대다수를 점한다.

지난달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한 이민자는 14만4천278명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10만명 이상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이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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