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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삐삐삐' 울린 감지기, 그저께 낮술도 걸렸다···윤창호법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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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호법 첫날 음주운전 단속 동행취재]

중앙일보

25일 0시5분 음주단속에 적발된 한 택시 기사가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기사는 이틀전 낮에 술을 마셨다고 밝힌 기사는 혈중알코올농도 0.022%로 측정돼 훈방됐다. 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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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우유 마시면 안 됩니다. 어서 내리세요"

25일 0시 5분 서울 마포구 강변북로 진입지점. 택시 운전석에서 한 손에 우유갑을 든 백발의 운전자가 내렸다. 택시기사 A씨(69)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항의했지만 음주감지기는 노란불을 내며 깜빡거렸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려 하자 A씨는 숨이 차다며 수차례 측정기에서 입을 뗐다. 택시에 탄 승객은 황당한 표정으로 소란을 지켜봤다.

25일 0시부터 음주 단속 기준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시행됐다. 기존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 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개정 후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했다. 0.03%는 몸무게 65㎏의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사고를 내 피해자가 다치거나 사망하게 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조항은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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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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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을 맞아 이뤄진 음주단속 시작 5분 만에 적발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22%. 면허 정지 기준보다 약간 낮았다. A씨는 "그저께 낮에 동료들과 소주 5,6병을 먹은 게 전부"라며 "오늘은 빵과 우유만 먹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술 마신 다음날까지 체내에 있던 알코올이 측정된 '숙취운전'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날 낮술을 했다 해도 나이, 체중에 따라 충분히 알코올이 측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제였으면 면허 정지…오늘부터 '면허 취소'
중앙일보

25일 0시38분 음주단속에 적발된 경차 운전자가 음주측정을 받고 있다. 혈중알코올농도 0.083%가 나온 운전자는 면허 취소됐다. 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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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0시 38분. 두 번째 음주운전이 적발됐다. 경차에서 내린 B씨(33)의 양 볼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B씨는 "홍대에서 테킬라 4잔을 마셨다"고 말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83%였다. 전날이었다면 면허 정지에 그쳤을 수치다. "윤창호법이 시행된 걸 몰랐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같은 경우 면허 취소뿐 아니라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과거 혈중알코올농도 0.08%의 음주운전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제 윤창호법에 따라 형량이 1년 이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에는 대다수 음주운전자가 낮은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면서 "법이 바뀐 만큼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만 적발돼도 '상습 음주운전'
중앙일보

25일 1시30분쯤 단속을 피해 후진하던 흰색 다마스 차량이 받은 대형 밴. 차량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로 면허 취소 수준이다. 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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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시 35분. 단속 현장을 향해 오던 흰색 다마스 차량이 후진으로 내달렸다.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 주차된 대형 밴과 부딪힌 뒤에도 차량은 멈추지 않았다. 쫓아간 지구대원의 손에 이끌려 나온 C씨(44)의 몸에서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C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C씨는 4년 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무면허 운전자였다. 기존에는 3회 이상 음주운전에 적발될 경우 '상습 음주운전'으로 분류했지만, 기준을 2회로 낮춘 윤창호법에 따라 C씨는 가중 처벌을 받게 됐다.

8시간 만에 153명 적발…"그렇게 홍보해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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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0시 서울 마포구 강변북로 진입지점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이날 자정을 기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됐다. 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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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이날 오전 0시부터 8시까지 벌인 반짝 단속에 전국적으로 153명의 음주 운전자가 적발됐다. 한 시간에 19.1명씩 나온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153명 중 면허정지(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0.08% 미만)는 57명, 면허취소(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는 93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나머지 3명은 음주측정을 거부했다.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면허정지·취소 기준선은 각각 혈중알코올농도 0.05%, 0.1% 이상이었다. 이번 단속현장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0.05% 미만으로 측정된 운전자는 13명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훈방’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형사처분을 받을 처지로 바뀌었다.

단순히 단속기준만 강화된 것이 아니다. 벌칙 수준도 높아졌다. 0.03% 이상~ 0.08% 이하만 측정돼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 2회 이상 상습 음주 운전자의 경우도 처벌조항이 신설됐다. 경찰의 정당한 음주운전 측정에 불응했다가는 최대 5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도 선고될 수 있다. 경찰청 박종천 교통안전과장은 “앞으로 2달간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술 한잔쯤이야’도 이제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 1~5월에는 5만463명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하루 평균 334.2명에 달하는 수치다.

남궁민·김민욱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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