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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파워인터뷰]잠수함 닮은 야구인생 30년… “고향팀서 후배 키우는게 마지막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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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해설위원 & 요식업 대표로 ‘제2인생’ 김병현

동아일보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불렸던 김병현은 요즘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겸 요식업체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했을 때 모든 게 낯설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30년간의 야구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고향팀 지도자로서 후배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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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핵잠수함’으로 불렸던 김병현(40). 그의 야구 인생은 화려했지만 아픔도 적잖았다. 메이저리그 생활 초기에 그는 거침없이 공을 던지며 리그를 호령했다. 좌우로 꿈틀대는 슬라이더와 시속 150km를 오르내리는 강속구로 내로라하는 강타자들과 정면승부를 즐겼다. 그 결과 2001년 애리조나, 2004년 보스턴 시절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마이너리그 강등과 방출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11년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 입단했지만 끝내 1군 무대는 밟지 못했다. 국내 무대로 돌아와 부활을 꿈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요즘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겸 요식업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불혹을 넘어서며 과거 반항적인 악동의 이미지도 벗고 있다. 21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김병현을 만나 30년 야구 인생과 요즘 일상을 들어봤다. 》

○ 잠수함 투구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다

김병현은 광주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1999년 1월 대학(성균관대)을 중퇴하고 메이저리그 애리조나에 입단했다.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인다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그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대결을 펼쳐 국내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입단 첫해 5월 30일 뉴욕 메츠전에서 8-7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라 세 타자를 처리하며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첫 세이브를 따냈다. 당시 메츠의 강타자 마이크 피아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오른 주먹을 하늘로 올리는 장면은 백미였다.

―메이저리그가 꿈이었나.

“솔직히 아니었다. 프로야구 해태(현 KIA)에 입단하고 싶었다. 미국 프로야구 애리조나에서 계약금 225만 달러(약 26억 원)를 제시했을 때 아버지가 ‘미국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알겠다’고 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 시절인 2002년 8승 3패 36세이브에 평균자책 2.04로 최고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보스턴과 콜로라도 플로리다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팀을 옮기면서 하락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방출되고 말았다. 데뷔 초기의 투구 폼과 구속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병현은 성적이 한창 좋을 때에도 자신의 공에 불만이 많았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3년 보스턴 시절에도 경기가 끝난 뒤 혼자 그라운드를 뛰면서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관계자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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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시절


―예전의 강속구를 잃어버린 이유는….

“스무 살 때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심신이 모두 힘들었다. 무엇보다 말이 안 통했고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 식단 조절을 잘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가리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먹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겼다. 패스트푸드를 즐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신인 시절에는 75kg였던 몸무게가 몇 년 뒤 10kg이나 불어 있었다. 2012년 국내에 돌아와 술을 끊고, 투구 폼도 여러 번 바꿔봤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해법은 뭐였나.

“올바른 먹거리를 먹는 일이었다. 2016년 고기와 밀가루, 탄산음료까지 끊고서야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호주 리그에서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0.93을 기록했을 때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공 스피드는 시속 140km에 머물렀지만 기분만큼은 신인 시절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일본과 미국에서 26년간 프로생활을 하며 안타 제조기로 불렸던 스즈키 이치로가 왜 매일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했는지 그때서야 알 것 같았다.”

○ “최고 전성기 맞은 류현진, 오래 활약할 것”

―아직 공식 은퇴를 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나.

“은퇴식은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나 하는 것이다. 마지막 고향 팀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미안할 뿐이다. 사실 올해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그동안 나를 위해 희생해 준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30년 야구 경험을 묵히기엔 아깝지 않은가.

“야구는 내가 어릴 때부터 제일 잘할 수 있고 나를 세상에 보여준 존재다.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을 하게 된 것도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야구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투수가 공을 던지는 타이밍이나 밸런스를 보면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었는지 아닌지만 보면 재미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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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시절 러닝하는 모습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LA다저스 류현진의 호투가 화제인데….

“올 시즌 류현진은 최고 전성기인 것 같다. 정교한 컨트롤 외에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그를 보면 자신감이 넘치고 여유가 흐른다. 장타를 맞아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포커페이스(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다. 중심 이동이 좋아 직구와 변화구의 회전이 탁월하다. 투구 폼이 일정해 상대 타자들이 무슨 공이 오는지 알기 어렵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선 구속이 빠른 투수를 선호하기에 기교파 투수 류현진의 가치가 더 빛나는 듯싶다. 야구 지능이 뛰어나고 승부처에서 완급조절을 할 줄 안다. 나이가 들어서도 선발로 오래 활약할 투수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으로 독특한 어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류현진을 비교해 달라고 하자 “찬호 형은 아슬아슬하게 던져 가슴 졸이게 하는데 류현진은 너무 편안하게 던져 다소 재미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류현진이 타석에서 안타를 잘 못 치자 “투구에 집중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도 했다.

○ 고향팀 야구 지도자가 궁극적인 꿈

김병현은 2012년 결혼해 2남 1녀를 두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가족과 함께하면서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결혼한 뒤 뭐가 달라졌나.

“가족과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 아이들과 함께 집 부근 슈퍼마켓을 다녀오는 게 행복하다. 예전에 몰랐던 바람, 꽃 냄새를 느낀다는 게 즐겁다.”

―만약 아들이 야구를 하겠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야구를 하겠다면 찬성한다. 다만 대충하는 건 안 된다. 정말 절실하게 야구에 몰입한다면 밀어줄 생각이다.”

―언젠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지도자) 제안이 들어온다면 하고 싶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고향팀(KIA)에서 투수 후배를 키워보고 싶다.”

김병현은 최근 자신의 고향 광주에 수제버거 집(‘광주제일햄버高’)을 오픈했다. 가게 이름은 고교 시절 모교(광주일고) 이름을 사용해 직접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 경기 양수리에서 정말 맛있는 수제버거를 발견했다. 천연 식재료를 사용한 고기 패티에 신선한 빵을 곁들인 맛이 일품이었다. 그 가게가 조만간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레시피를 받아 수제버거 집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병현은 이미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초밥집을 오픈해 성공을 거뒀다. 최근엔 서울에 태국 음식점, 광주에 일본 라멘집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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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이 운영하는 수제버거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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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이 운영하는 타이음식점 마스코트와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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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에 이처럼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선수생활을 오래하지 못한 게 인스턴트 음식 때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마지막으로 올해 마흔이 된 김병현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안 좋았던 때도 있었고 잘못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며 살자.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여유로움을 잃지 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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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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