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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탐사하다] 3년 전 두 아이에 몹쓸짓한 그놈, 감옥 갔다 놀이터 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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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아동 성범죄자 그 이후 <하>

행동반경 제한 핵심은 전자발찌인데

돌아온 아동 성범죄자 절반이 안 차

법원 “인권침해 소지” 부착 신중

법원의 전자발찌 청구 기각률

2013년 50%→2018년 67.5%

법원 부착 기준도 제각각

주민 A씨(57)의 이름 석 자만 댔는데도 서울 B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그가 누군지 곧바로 알았다.

“여기서 있었던 일 때문에….”

직원이 언급한 ‘여기서 있었던 일’은 3년 전 A씨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덟 살과 열 살 여자 어린이에게 한 짓이었다. 그는 “라면을 끓여주겠다”며 교회에 다녀오는 아이들을 꾀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추행했다. 범행을 부인하던 A씨는 경찰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들이대고 난 뒤에야 추행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중앙일보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신상이 공개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가운데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살고 있는 215명 중 범행지가 속한 시·군·구으로 돌아가 거주하는 84명의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자발찌를 부착한 경우는 46명뿐이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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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출소 뒤 다시 그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 때 그 집이다. 지난 18일 B아파트를 찾아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 등에게 A씨에 대해 물었다. 혼자 살고 있는 A씨는 자주 술을 마신 채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고, 놀이터에 가서 앉아 있기도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불안해하는 주민들이 많지만,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A씨가 자율방범대 유니폼처럼 보이는 제복을 입고 모자도 쓰고 다닌다고 했다. “그가 방범대원 자격증 같은 것을 보여준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할 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지구대는 물론 자율방범연합회에 확인해도 방범대원 명단에 그런 이름은 없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두 어린이를 집으로 유인하기 전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이 적힌 명함을 먼저 건넸다. 아이들의 믿음을 사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명함이 자율방범대 복장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A씨가 평소 갖고 다니던 명함’이라고만 돼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순진한 아이들은 그런 제복을 보고 명함을 받으면 (상대 어른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B아파트 단지 내엔 어린이집 한 곳, 놀이터 네 곳이 있다. 바로 길 건너에는 초등학교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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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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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아동 성범죄자에게 놀이터나 초등학교 등 어린이들이 많은 곳에 출입하지 말라고 금지 명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해당 사항이 없다. 전자발찌를 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 성범죄자의 행동반경을 제한할 수 있는 준수사항 부과는 전자발찌를 부착한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12세아 추행범에 전자발찌 7년, 8세아 추행범엔 부착 기각…법원 들쭉날쭉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로 처벌받고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살고 있는 전과자 215명 중 출소 뒤 A씨처럼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와 멀지 않은 곳(범행지가 속한 시·군·구)으로 돌아가 거주하는 84명의 판결문을 전수 분석해 보니 이 중 전자발찌를 부착한 경우는 46명뿐이었다.

A씨의 경우 검찰이 처음 기소하며 전자발찌 부착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추행의 정도가 중하지 않고, 전과가 없다. 실형 복역, 치료프로그램 이수 등으로 왜곡된 성적 충동이 완화되거나 교정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였다. 지금으로선 A씨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나 집 앞 초등학교에 가서 어린이들과 만나는 것을 제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만약의 경우 추적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A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있는 초등학교 관계자는 “주변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사실 얼굴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동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사후관리의 핵심 중 하나가 전자발찌이지만, 법원은 이처럼 전자발찌 부착을 허용하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인권 침해 소지 등 때문이다. 법원의 전자발찌 청구 기각률은 2013년 50.0%에서 2018년 6월 현재 67.5%로 높아졌다.

전자발찌를 채울지 여부를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이 일관적이지도 않다. 아동성범죄자가 또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평가하는 객관적 지표로는 한국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 도구(K-SORAS·0~29점 척도, 7~12점이 중간)와 정신병질자 선별도구(PCL-R·0~40점 척도, 7~24점이 중간)를 통해 계산한 ‘재범 위험성’ 점수가 있다. 아동 성범죄자들의 판결문을 분석했더니, 점수가 비슷한데 전자발찌 부착 여부에선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동종전과가 없는 초범만 비교해본 결과다.

정형외과에서 방사선 기사로 일하던 박모씨는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어린이 환자가 보호자와 떨어져 있다는 점을 이용해 6세 여자 어린이를 추행했다. 박씨의 K-SORAS 점수는 재범 위험성 ‘중간’에 해당하는 12점, PCL-R는 7점(중간)이었다. 법원은 전자발찌 7년 부착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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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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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인의 딸인 8세 여자 어린이를 추행한 강모씨는 K-SORAS 점수가 재범 위험성 ‘높음’에 해당하는 13점으로 나왔는데, 법원은 검찰의 전자발찌 청구를 기각했다. “13점은 재범 위험성 ‘높음’ 중에는 가장 낮은 수치”라는 것이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집에 사는 12세 여아를 성폭행 및 추행한 임모씨는 K-SORAS 결과 ‘중간’에 해당하는 10점이 나왔는데 법원은 전자발찌 7년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10점은 ‘중간’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판시했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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