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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강호원칼럼] 벼랑에 선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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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 ‘항미 동맹’ 다짐한 북·중 / 북한은 중국의 대미 항전 지렛대 / 시진핑, 북한 핵무장 용인 가능성 / ‘평화 망상’은 위기 부르는 독배

14년 만에 평양에 간 중국의 일인자. 왜 갑작스레 갔을까.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걸까. 오래 준비된 방문이 아니다. 미국과의 담판을 앞두고 재촉한 인상이 짙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어떤 한반도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평양 방문 전날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시진핑의 기고문. 판에 박힌 과거 연설문과는 다르다.

세계일보

강호원 논설위원


“중조(中朝) 친선을 계승해 시대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자”, “우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굳건하며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 “조선 동지들과 함께 조선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견지하고 지지한다”, “원대한 계획을 함께 작성하자”…. ‘조선반도 무핵화’(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장’은 무엇이며, ‘원대한 계획’이란 또 무엇일까.

북한 태도도 전과는 다르다. 2인자 장성택 처형 판결 때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었다”며 중국을 싸잡아 비난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1박2일, 27시간의 평양 방문. 퍼레이드와 집단체조에 동원된 평양 주민만 해도 40여만명. 과거 장쩌민·후진타오 주석조차 받지 못한 후한 대접을 했다.

갑작스러운 방북, 칙사대접. 그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이나 북한이나 “미국 콧대를 꺾지 않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69년 전 6·25전쟁 때 북·중의 ‘끈끈한 동맹’은 되살아나고 있다. 그때와 똑같은 항미(抗美) 기치를 내걸고.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이는 걸까. 미·중의 패권전쟁. 무역분쟁을 넘어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미 국무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 대만을 국가라고 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40년 만에 깨지고 있다. 그런 대만에 미국은 또 20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팔기로 했다. 홍콩 문제까지 불거졌다. “독립” 구호가 터져 나온다. 미국은 “G20 정상회의에서 홍콩 사태를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힘을 재는 바로미터이다. 미국에게는 중국을 흔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이다. 두 곳이 반중 기치를 치켜든다면? 신장위구르, 티베트의 독립 문제도 고구마줄기처럼 이어져 터져 나올 수 있다. 55개 소수민족 문제는 또 어떨까.

시진핑의 방북. 그것은 미국의 압박을 거부하는 전면 대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한 것은 시진핑과 김정은의 대화다. 무슨 말을 나눴을까.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똘똘 뭉쳐 항미에 나서자”는 다짐. 북한 비핵화도 주문했을까. 그럴 리가. 북한은 중국의 항미 지렛대다. 대만이 중국을 흔드는 미국의 이이제이 칼이라면 북한의 핵탄두는 미국을 흔드는 중국의 이이제이 칼이다. 중국은 북핵으로 대미 항쟁에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시진핑은 차라리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한반도의 미래는 어둡다.

대북 제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치는 ‘최대의 압박’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중국은 북한에 수출 문을 터주기 시작했다. 북한의 4월 대중국 수출은 유엔의 대북제재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 북한에 무상 비료 원조까지 재개됐다. 제재의 둑은 이미 허물어지고 있지 않은가. 최대의 압박? 헛구호로 변하지 않을까.

시진핑의 방북에 대한 청와대의 평가. “대화의 동력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닐까.

한반도의 안보지형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북·중의 밀월. 그것은 대화의 모멘텀이 아니라 북한 핵 위협의 고착화를 알리는 신호다. ‘시대의 새로운 장’과 ‘원대한 계획’. 그 말에는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는 패권전쟁을 준비하는 중국의 생각이 담겨 있다.

역사는 7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냉전 시대로. 한반도는 태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터무니없는 ‘평화 망상’에 사로잡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면 재앙을 막을 기회조차 잃게 된다. 그것이 걱정스럽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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