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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잊어버리면 소멸하잖아요”…인간의 존엄 붙드는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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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재해석한 뮤지컬 ‘신과함께’

경향신문

창작가무극 <신과함께_이승편>은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몰린 집을 지키는 가택신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0주기를 맞은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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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곳에서 여섯 명이라…큰 사고가 있을 것이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함께_이승편>은 저승차사들이 6명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새로 받는 데서 끝난다. 저승차사가 선 자리는 재개발 철거 대상지역에서 집을 지키려는 이들과 밀어내려는 이들이 맞선 곳. 2009년 용산참사를 직접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민담에서 걸어나온 가택신들의 잔상이 세지만, 주 작가가 이승편에 담은 메시지는 신들의 이미지보다 훨씬 묵직하다.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은 올해, 서울예술단이 이를 재해석한 동명의 창작가무극(~6월29일까지, 엘지아트센터)을 선보인다. 김태형 연출가는 원작에 충실하되, ‘신들과 함께’ 집을 지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더 부각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문구가 된 ‘여기 사람이 있다’가 곳곳에 등장하고, 극중 철거용역 박성호의 이야기도 확장됐다.

“잊어버리면 소멸한다”고 말하는 주 작가, “인간의 존엄을 말하고 싶었다”는 김 연출을 지난 21일 엘지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경향신문

<신과함께_이승편>의 원작자 주호민 작가(오른쪽)와 김태형 연출가. 서울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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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주호민 작가

“웹툰 원작은 끝까지 암울한데

공연에선 희망 담겨 굉장히 좋아”

재조명하며 잊지 않는 게 중요


- 원작자로서, 무대화한 연출가로서 소감은.

주호민(주)= “원작은 끝까지 암울한데 공연에선 마지막에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것 같아요.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아서 ‘아 이렇게 그릴걸…’ 하며 봤습니다.”

김태형(김)= “후반부 작업을 하면서 원작을 다시 정독했어요. ‘우리 작품보다 재밌는 거 같은데…’ 하면서 대사 손질도 하고요. 오신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죠.”

연출가 김태형

가택신과 ‘철거용역’ 이야기 확장

“개발의 상징, 강남 한복판서 공연

의미 충분…다른 작품 뒤로 미뤄”


- 하필 공연할 극장이 ‘개발의 상징’인 강남 한복판인데.

김= “제가 이 공연을 하겠다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사실 스케줄이 안 맞았거든요. 역삼동에서 철거민들이 시위하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고?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공연을 뒤로 미루고 참여했어요.”

이번 공연은 ‘하늘과 가까운’ 달동네인 한울동 사람들이 재개발 계획에 따른 철거에 맞선다는 원작의 줄기를 따라간다. 집을 지키려는 인간들을 성주 단지에 깃든 성주신, 부엌에 깃든 조왕신 같은 가택신들이 돕는다. 주 작가는 “한국의 신은 다른 나라 신화에 비해 생활감이 강하다”며 “가까운 곳에서 인간을 돌보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그 존재들을 불러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인간세상에 대한 것이다. 특히 사라지는 것들, 소멸하는 대상들에 시선을 맞춘다. 곧 철거될 동네, 떠나는 사람들, 소멸하는 가택신들은 경제논리에 밀려난 가치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붙들려 한 것은 무엇일까.

주=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에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잊혀졌을 때 죽는다’는 대사가 있어요. 신화 같은 것들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방식은 이를 이용한 창작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민담이나 설화처럼 잊혀져 가는 이야기들을 계속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또 ‘이승편’은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만들었는데, 그 뒤 세상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잊어버리면 소멸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재조명을 하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김= “ ‘신과함께’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공연의 로그라인(이야기를 설명하는 한 줄) 중 하나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과 그것을 돕는 신들의 이야기’라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존엄성을 담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방향을 고민하던 지난해 말에 아현동에서 철거민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났어요. 깜짝 놀랐어요. 2018년에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아직 지나가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원작과 가무극은 ‘박성호’라는 캐릭터를 두고 차별점이 부각된다. 월세도 못 내 궁지에 내몰린 취업준비생, 철거용역으로 일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이다. 가무극에선 ‘서로 돕는 인간들’의 연대를 꿈꿔보게 하는 인물로 역할이 확대됐다. 주 작가는 “원작에서 강한 사람은 악하게, 약한 사람은 선하게 묘사되는 면이 있어 마음에 걸렸는데 박성호의 롤이 커지면서 제가 고민한 지점들이 해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24일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주 작가와 김 연출의 말을 들은 지 겨우 사흘 만이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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