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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학교의 안과 밖]4년제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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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제는 6-3-3-4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4년제 고등학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물론 실제로 학제에 대한 것은 아니고 재수생 비율이 높은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가 5년마다 진행되는 자사고 재지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논란인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등학교를 3년 다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수가 재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경향신문

이 학교는 전라북도에 소재한 전국단위 자사고다. 학교게시판에 공지된 내용에 따르면 2019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40명을 비롯하여 275명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중에서 재학생 비율이 48%, N수생이 52%라고 한다.

이렇게 대입 합격자 중 대입 재수생의 비율이 높은 것은 2018학년도에 재수를 선택한 학생들의 비율이 무려 57%나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학교알리미에 올라온 재수생 비율을 보면 47.7%로 전국 21.6%나 전라북도의 14.4%에 비해 크게 높다.

다수의 학생들이 상위권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인 것은 분명한데 굳이 재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학교는 일반고에 비해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자사고로서 국민공통교육과정의 50%와 선택교과의 100%를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요즘 대입 전형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에 최적화된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시 학생부전형으로 진학하는 학생보다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18학년도에는 서울대에 수시전형으로 9명이 합격했으나 정시 수능전형으로는 수시의 두 배가 넘는 21명이 합격하였고, 이 중에서 재수생이 다수로 알려져 있다. 결국 우수한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집할 수 있는 자사고로서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자율권을 수능 학습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결과 수능에 강한 재수생을 양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의 경우 서울대에 합격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재학생들이어서 대조가 되고 있다.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수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교육 수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찬성하는 쪽은 수능 대비 교육이 중심이 되면 고등학교 교육 환경이 황폐해지기 때문에 수능형 자사고의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역량을 갖춘 건강한 시민의 육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학입시가 최우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큰 틀의 논의와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정시 수능전형의 확대를 밀어붙인 정부가, 수능에 적극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를 반대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부모들은 교육정책의 혼란이 두렵고, 사교육계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혼란을 자꾸 만드는 정부의 어설픈 손길이 걱정되는 이유다.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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