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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안보에 ‘北 목선’ 정무적 판단?… 정부·軍, 이래도 되나 [현장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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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 삼척항 방파제에 북한 어선이 왔다는 신고에 삼척 파출소 경찰들이 목선을 타고 온 북한 주민들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강원도 삼척항에서 이뤄진 북한 어선의 ‘해상 노크 귀순’ 논란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 6·25전쟁 기념식 등 챙겨야 할 외교·안보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는 난감할 것이다. 어선이 발견된 지난 15일만 하더라도 정부로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논란은 정부의 자업자득을 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어선 발견 이틀 뒤인 17일 공개된 군 당국의 브리핑은 “북한 어선 1척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에 함축됐다. 나중에 발견 장소가 ‘삼척항 방파제’로 드러났지만, 군 당국은 태연히 ‘인근’이라고 규정했다. 거기에다가 북한 어선의 ‘표류’로 설명하고, 북한 어선이 레이더 전파의 반사율이 낮은 나무로 만들어진 선박이어서 파도가 높은 당일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내놓았다. 그것도 수차례 부연했다. 거짓 해명이었다. 삼척항 인근에 표류했다는 어선은 ‘자체 동력’으로 삼척항에 입항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이튿날 북한 어선이 자체 동력으로 항구로 들어온 뒤 접안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 화면에서 확인된 것이다. 군 당국은 올해만 북한 어선 70여척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퇴거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축소하려던 의도에서 덧붙인 설명으로 보였다.

군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는 이튿날부터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범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모습이 확인됐다. 사건 발생 직후 군 당국을 비롯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 등은 사건 발생 직후 북한 목선의 접안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군 당국은 ‘인근’, ‘표류’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세계일보

이정우 외교안보부 기자


잘못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청와대 안보실의 행정관이 국방부의 관련 브리핑에 비공개로 참석한 사실도 드러났다. 관행일지 모르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유독 ‘축소 지향’의 모습을 드러낸 군 당국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행정관의 브리핑 참석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사연이 있을 수 있다. 야당은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삼척항까지 내려가 정부와 군 당국을 규탄했다.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혹시라도 정부나 군 당국이 이번 사건에서 정무적인 판단을 우선시했다면 잘못된 일이다.

24일엔 군 당국의 대응 잘못에다가 기강 해이까지 재론됐다. 동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육군 8군단이 지난 18일 저녁 음주를 곁들인 회식자리를 가진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는 정치 영역도 아니고,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문도 아니다. 안보는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대응법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둬야 하는 분야이다. 이는 국민은 물론 안보 분야를 책임진 정부를 위해서도 필요한 원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첫 브리핑이 이뤄진 17일을 되돌아보자. 군 당국이 당시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북한 주민 4명이 탄 어선이 자체 동력으로 삼척항에 입항했다. 군이 경계에 소홀해 이를 발견하지 못해 죄송하다.”

그랬다면 안보 대응력이 약화됐다는 비판을 받았을지라도 투명한 정보 공개로 문재인정부의 신뢰도가 제고됐을 것이다. 거짓 해명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한반도 화해 무드 조성에 노력하는 우리 정부에 더욱 필요한 말이다.

이정우 외교안보부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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