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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지평선] 황당 ‘짝사랑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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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황교안 대표와의 대화-대한민국 청년들의 미래와 꿈'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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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비상대책위 체제를 가동하고 명망가 모시기에 골몰했다. 개혁 의지와 방향을 대변하는 당의 간판을 잘 내세워야 기회를 잡는다는 판단에서다. 이국종 김병준 김형오 김용옥 김종인 김황식 황교안 박관용 정의화 이정미 이회창 등등 정파와 이념, 직종을 가리지 않는 수많은 이름이 거론됐다. 당사자들이 손사래를 치고 일부는 “거명만으로도 부끄럽다”며 거세게 항의하자 지도부는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물러섰다. 체면도 팽개친 한국당의 짝사랑이 빚은 희극이자 비극이었다.

□ 당시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를 만나 “매너리즘에 빠진 당을 (의료계에서 쌓은) 신선한 감각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혁신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런 역량과 내공은 김 대행 같은 정치권 인사가 월등히 뛰어나다”는 비아냥 섞인 답변만 들었다. 당의 쇄신 각오 없이 남의 이름값으로 분칠할 생각이 앞섰으니 반응이 고울 리 없다. 김종인과 김용옥을 들먹인 것에선 헛웃음이 나오고, 이정미와 이회창을 소환한 것에선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짝사랑도 권세와 금은으로 누르면 사랑이 되는 줄 아는 사또 심보다.

□ 그 오만한 버릇이 다시 도졌다. 한국당은 최근 내년 총선에 대비해 사회 각계의 영입 대상 2000명을 추렸다고 밝혔다. 논란은 현역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서 10명씩 추천받아 작성한 이 명단에 이국종이 또 포함되고 레전드 야구선수 박찬호와 다음 창업자 이재웅 등도 오르면서 불거졌다. 그냥 추린 명단인데도 몇몇 당직자들이 ‘다 익은 밥’처럼 떠벌린 까닭이다. 진위를 묻는 언론에 이들이 “과분하지만 당혹스럽다”고 겸양의 도를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은 잘 고른 것같다. 그러나 ‘사또 심보’의 짝사랑도 성폭력이 되는 시대다.

□ 뭐가 문제일까. 최근 만난 한국당 지지자들은 한결같이 공감 능력 부족을 꼽았다. 황교안 대표가 최근 대학 특강에서 특성화된 자질을 강조하며 아들 사례를 꼽았다가 구설수를 자초한 것 역시 ‘짝사랑 리스트’와 유사한 코미디다. 앞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최저임금을 주장한 것이 무지의 소산이라면, 아들 얘기는 정치적 감성 빈곤을 드러낸 것이니 말이다. 북한 목선의 대기 귀순, 김해신공항 재검증, 탈원전 및 4대강 보 철거 후폭풍 등 호재가 넘쳐나도 한국당 지지율이 요지부동인 이유를 알겠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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