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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한 지검장의 언행불일치와 검사 윤석열의 소박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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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서영지의 오분대기

검경수사권 조정안 반대하는 윤웅걸 전주지검장 그동안 행적 보니…

‘국정원 정치개입’ 재판 중 증거제출 막는 등 소극적 공소유지 일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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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서 요즘 빠지지 않는 얘기가 검경수사권 조정일 것입니다. 한동안 검사장급 이상 검사들은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싸고 국회의원 300명에게 전체 전자우편을 보내는가 하면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수사권 조정안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검찰이 의견을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눈에 띄는 문구가 있어서 뒤늦게나마 짚어보고 가려고 합니다.

윤웅걸 전주지검장은 지난 10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지난 4월29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골자는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데 대한 우려입니다. 윤 지검장은 “검찰은 개혁돼야 하고, 그 개혁은 권력자에게는 불편하게, 국민에 편안한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검찰은 그간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해 권력자에게는 충성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국민들에게는 불편을 주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것이 서구 선진국 검찰의 모습과 다른 우리 검찰의 모습이다. 이러한 이유로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됐다면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제시된 검찰개혁안과 같이 권력의 영향력은 그대로 둔 채 검찰권만 약화시킬 경우 개혁은커녕 힘 빠진 검찰의 정치 예속화는 더 가중될 것이다. 거악척결이라는 검찰 본연의 임무는 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력의 비리를 수사할 때 대단한 검사가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검사가 소박한 용기만 가져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권력의 눈에 벗어난 검사들이 과오에 대한 규명 없이 인사권의 행사에 따라 함부로 쫓겨나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권력에 충성하는 검사들을 줄 세우는 일도 막아야 한다. 물론 잘못이 있는 검사는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징계, 탄핵 또는 처벌을 받으면 될 것이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윤 검사장 스스로도 과연 그런 원칙을 지키고 살아왔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게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 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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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건 항소에 부정적


윤 지검장은 2014년 1월부터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근무하며 국정원 수사 지휘라인에 있었습니다. 당시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1심 재판이 한창이었죠. 박근혜 정부는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혐의가 유죄를 받으면 정권에 치명타가 된다고 생각해 수사를 막는 데 급급했습니다. 원 전 원장은 2014년 9월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수사팀은 항소를 원했지만, 윤 지검장은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 이 수사를 잘 아는 관계자는 “윤 지검장은 공직선거법에 대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 무죄가 맞다는 취지로 얘기해 수사팀이 반발했다. 항소장 제출 시한을 하루 앞두고 공소심의위원회(공심위)를 개최하겠다고 하더니 정작 회의 때 수사팀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항소를 포기하거나 항소제기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걸 남기기 위해서 윤 지검장이 중앙지검 부장들을 모아놓고, 각자 의견을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수사팀인 박형철 부장이 있어서 다른 부장들이 얘기를 못 하니까 박 부장보고 나가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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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심위는 2014년 9월17일 2013년부터 사건을 맡아온 수사팀을 뺀 채 오전 11시30분부터 4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습니다. 결국 검찰은 항소하기로 했지만, 당시 윤 지검장의 브리핑을 보면 ‘마지못해’ 한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윤 지검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선거법 위반 부분은 토론이 있었다. 기소 당시에도 논란이 있어서 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뒤늦게 드러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공심위가 열리던 날에 ‘공소심의위원회-참여 수사검사-규정 참고, 비정상의 정상화-기소검사 배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원 전 원장을 기소한 검사는 공심위에 배제하라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반면 윤 지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심에서 디지털 증거능력을 좁게 해석해 항소를 하려고 했다. 선거법 관련해서 이견은 있었지만, 디지털 증거능력 때문에 선거법에 무죄에 대해 항소를 하자는 입장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1심이 국정원 직원 이메일 파일에 들어 있는 트위터 계정들에 관해 이 직원이 법정에서 ‘모르는 내용’이라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부분을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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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서 ‘통화내역’ 증거제출 막아


이뿐 아니라 선거개입 관련 재판에서 증거제출을 막기도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4년 2월 국정원 사건 수사 축소·은폐 혐의를 받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사팀은 유죄입증을 위해 경찰과 정치권의 ‘핵심고리’인 국정원에서 국내정보 상황을 총괄하는 박아무개 국익정보국장을 증인으로 소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윤 지검장은 “공소유지와 관계가 없고,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만들어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증인신청을 막아섰습니다. 그러자 수사팀은 박 국장의 통화내용이라도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통화내역이 왜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박 국장은 2012년 12월11일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을 벌이던 국정원 요원 김아무개씨의 원룸을 기습했을 때부터 경찰의 한밤 수사결과가 있었던 12월16일까지 청와대와 정치권 등과 수차례 연락을 했습니다. 이를 다룬 <한겨레21> ‘청와대·국정원·새누리당·경찰 4각 통화 커넥션 드러났다’ 기사 중 일부입니다.



하금열 청와대 비서실장도 국정원 쪽과 직접 연락했다. 하금열 실장은 최근 구속된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1급)에게 12월12일 아침 8시22분(2분43초)과 15일 오후 5시8분(2분25초) 두 차례 전화를 건다. 박 국장은 당시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한겨레21>은 당시 통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하금열 실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엿새 동안 국정원 쪽과 가장 통화를 많이 한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권영세 실장이다. 권 실장은 12월12일과 14일 박원동 국장과 총 14번 전화를 했고 1번 문자를 보냈다. 이 밖에 서상기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이 박원동 국장과 총 3차례(12월15일), 원세훈 원장과 총 1차례(12월15일),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가 원세훈 원장과 총 3차례(12월13일), 윤상현 박근혜 캠프 후보 수행단장이 박원동 국장과 총 2차례(12월12일, 13일) 통화한 것이 확인됐다(2차례 이상 통화만 포함).

결국 윤 지검장은 정 내고 싶으면 사람이름은 빼라고 했고, 수사팀은 전화번호의 이름은 뺀 채 전화를 주고받은 번호만 첨부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당시 수사팀은 이렇게라도 통화내역을 낸 이유는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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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랑 뜻을 같이한다”


국정원과 관련해서 ‘좌익효수 사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직원 유아무개씨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좌익효수’라는 필명으로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디시인사이드 등에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방한 내용의 글 수백건을 확인했습니다. 선거개입 혐의가 뚜렷하다고 판단했지만, 2014년 6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좌익효수를 소환 조사하고도 기소 결정을 미뤘습니다. 당시 지휘라인 역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은 1년4개월간 사건을 더 ‘뭉갠’ 뒤 2015년 11월에서야 유씨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마저도 수백개 글 중에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와 관련이 있는 10개의 글만 기소해 ‘봐주기 기소’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윤 지검장과 관련된 비슷한 일화는 차고 넘칩니다.

2014년 1월 서울 서부지검 차장검사로 근무하던 윤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며 기자단과 점심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검찰은 지난 수십년 동안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해 왔는데, 권력의 주구나 정권의 시녀와 같은 이런 비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국가의 이익이 기준이고, 그걸 지켜온 역사가 있다. 이런 기준에서 정권이랑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정권의 시녀가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검사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수진영에서는 그를 ‘코드인사’라고 말하지만, 그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윤웅걸 지검장이 말한 대로 불이익을 받을 상황이 예상되는 데도 ‘보통 검사의 소박한 용기’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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