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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수란을 곁들이는 담백한 콩나물국밥, 전주 오면 꼭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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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35)
중앙일보

전주에는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다. 전주에 와서 높은 퀄리티의 일상 음식을 경험하길 추천한다. 사진은 전주에서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남부시장 청년몰.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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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더,오래]에 전주의 음식문화에 대한 글(2018.12.17, 토박이도 뭘 먹을지 고민···전주에 맛집이 없는 이유는)을 통해 전주를 찾는 분들께 전주에서는 ‘맛집 탐험’보다는 일상 음식의 높은 수준을 느껴보라고 제안했었다.

지난 4월에 전주로 이사 온 후 거의 매일 한 번꼴로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주말 외식’ 같은 특별이벤트가 아니라 ‘한 끼’ 때우는 일상의 식사였다. 이를 통해 전에 쓴 글을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25년간 직장생활 하며 바깥 음식에 익숙해진 내가 일상에서 접한 전주 음식은 어떠했는지 두 차례에 걸쳐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은 콩나물국밥, 순댓국, 백반, 비빔밥, 청국장, 시래기 국밥, 보리밥, 돈가스, 짜장면 등 아주 평범한 것들이다. 때로는 소머리국밥, 감자탕, 짜글이처럼 술 한잔 곁들이는 음식도 먹고, 민물 매운탕이나 회처럼 제법 비용이 수반되는 외식도 가끔 했다.

먼저 외지인이 최고 별미로 여기는 전주비빔밥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이곳에선 돈 벌어주는 효자상품이니 싫어할 리 없지만,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도 애정도 없다. 전보다 가격거품도 좀 빠진 것 같다. 전주사람이 가장 즐기고 자랑스러워하는 생활 속 음식은 단연 콩나물국밥과 피순댓국이다. 콩나물국밥은 어느 곳에서나 담백하고 개운한 진가가 드러난다. 진하고 뜨겁게 펄펄 끓여 달걀을 푼 스타일과 맑고 담백하게 끓여 수란과 함께 내놓는 스타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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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담백하게 끓여 내는 전주 콩나물국밥에는 수란을 곁들인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 수란을 만드는 수고로움 때문인지 국밥에 달걀을 풀어 내오니 전주의 맛에 미치지 못한다. [사진 박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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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水卵)'은 계란을 중탕으로 반쯤 익힌 것이다. 수란에 콩나물 국물을 너덧 숟가락 넣고 김(감칠맛과 풍미!)을 두어장 부수어 넣는다. 그리고 잘 저어 먹어보면 이곳 전주가 맛에 대한 ‘감’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원래 라면이나 북엇국처럼 국물에 풀어 먹는 달걀의 핵심은 연하고 고소한 맛이니, 달걀 맛을 극대화하고 국물 맛을 최소화해서 음미해보는 것이다.

전주의 순대는 선지를 섞은 피순대라 맛이 고소하다. 순댓국은 서울보다 국물이 담백하고 특수부위 고기를 적게 사용한다. 평소 순댓국을 부담스러워하던 이들도 잘 먹는다. 한옥마을 근처 남문시장의 유명한 집들도 맛있고 우리 동네도 맛있고, 또 다른 곳에 ‘현지인 맛집’이 있다는 걸 보면 대체로 다 잘하는 것 같다. 이 두 음식에 실망한 적은 거의 없다.

의외로 짜글이도 인기 있다. 짜글이는 돼지고기의 좋은 부위를 듬뿍 넣고 잘박잘박하게 끓인다. 일반 김치찌개보다 진하고 개운해서 소주 한잔 곁들이기 좋다. 이 밖에도 일반적인 백반, 국밥, 청국장 같은 것으로 식사한다. 일단 어떤 음식이든 반찬 가짓수가 많고, 반찬의 맛이 슴슴해서 좀처럼 메인 요리의 맛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주에서 식당을 못 찾겠으면 배달 앱(App.)에서 사람들 평가를 보고 배달시켜 먹으라던 친구의 조언대로 해봤다. 그랬더니 다양하고 정갈한 반찬, 세심한 포장 등 배달음식에도 격(格)이 있음을 느꼈다. 물론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한 것도 있다. 생선회는 바다에서 오는 비용이 있어 이곳의 다른 음식은 물론이고 서울에 비해서도 좀 비싼 듯했고 다양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제대로 먹으려면 군산이나 서천으로 가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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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우리 부부의 외식은 ‘주말 외식’ 같은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간단히 ‘한 끼’ 때우는 일상의 식사 개념으로 바뀌었다. 대단한 맛집보다 동네 주변의 ‘무난한’ 식당이면 만족한다. 우리 동네의 6천 원짜리 백반(왼쪽 상단)과 5천 원짜리 청국장(왼쪽 하단). 전주에서는 6천 원 내외면 대단히 잘 먹을 욕심내지 않고 훌륭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 질리지도 않는다. [사진 박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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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짬뽕도 특별히 유명한 곳은 없는 듯하다. 이웃들은 단연 물짜장을 추천하는데 ‘짜장과 물’이라는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주저하다가 한번 먹어보았더니 충분히 권할 만한 것 같았다. 어디나 비슷한 가맹점 식당은 역시 이곳 평균보다 다소 비싸고 양은 적었다. 다만 여기가 원조인 식당(콩나물국밥, 제과점, 칼국수 등) 본점은 아직 의외로 소박하고 손님을 맞는 태도나 정성도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았다. 물론 가격은 몇 해 전과 크게 달라졌지만.

전주에도 엉터리 식당은 많다. 모처럼 신경 써서 잘 먹고 싶을 때 인터넷 정보를 찾다 보면 블로그 광고가 식당 정보를 왜곡하니 가끔 짜증스럽다. 가급적 이웃에게 정보를 얻고 문 밀고 들어가기 전까지 신중하게 이것저것 살핀다.

우리 부부는 하루 한 번 정도 밥해서 두 끼 먹고 나머지는 밖에서 해결한다. 뭔가 먹긴 먹어야겠는데 갱년기 들어 입맛도 없으니 매번 장 봐서 해 먹고 남겨 버리는 것보다 필요할 때 간단히 사 먹는 게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1인당 한 끼 외식비를 계산해보니 6300원 정도였다. 전에는 아파트 1층에 회사 구내식당처럼 밥집이 있어 끼니때 고민 없이 뚝딱 한 그릇씩 먹고 올라오면 어떨까 상상도 해보았다.

전주는 확실히 서울보다 물가가 저렴하다. 동네에서는 5000~7000원이면 일상음식, 1만원 넘으면 특별한 느낌이다. 6000원짜리 백반 먹고 2000원짜리 커피를 마셔도 혀와 뇌에서는 각각 ‘서울의 1만원급’ ‘4000원급’으로 판정한다. 1만 4000원의 효과를 8000원(57%)으로 누리면서 역시 서울은 땅값 비싸고 큰돈 오가는 세상임을 실감한다.

형체도 없는 어떤 테두리에 자신을 가두지만 않는다면 같은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은 지방이 더 높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퇴직 후에 벌 생각보다 덜 쓸 생각을 먼저 하는 나 같은 수비적인 사람에게는 더 그럴 것 같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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