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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단독 인터뷰] 끝까지 눈물 삼킨 누나 "가해 10대들, 상상할 수 없는 짓하고도 죄책감도 전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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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10대 집단 폭행 살해’ 피해자 누나 인터뷰
"父 여읜 뒤 母 짐 덜어주려" 취업하러 간 光州서 비극
가해 10대들, 하루에 100대 구타…‘조롱 랩’ 동영상도 남겨
"4일 전 통화 때 돈 보냈으면 덜 맞았을까…가장 후회"
"지금 울면 우리 막내만 불쌍…최대한 벌 받아야"
누나 휴대폰 케이스에는 동생 사진 3장이…"기억하려"

넉 달 만에 영안실(靈安室)에서 마주한 막내의 몸은 얼룩덜룩했다고 한다. 최근에 생긴 멍은 시커멓거나 퍼랬고, 오래전에 생긴 멍은 빠지려다 멈춘 듯 노랬다. 피고름도 가득했다. 시신(屍身)의 색깔은 동생이 폭행당해온 오랜 시간을 짐작하게 했다. 부검의는 "그날 폭행이 없었어도,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소견을 내놨다.

지난 9일 새벽 1시쯤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원룸에서 19세 소년이 또래 4명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광주 직업학교 동기인 가해자들은 숨진 친구를 이불로 덮어놓고 도주했다가, 범행 이틀 만인 지난 11일 경찰에 자수(自首)했다. 네살 터울인 누나 A(23)씨는 다음날 영안실에서 본 동생 B(19)군의 시신을 ‘색깔’로 먼저 떠올렸다. 가해자 10대 4명이 검찰로 송치(送致)된 19일 밤 11시, 직장에서 막 퇴근한 A씨를 대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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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밤 ‘광주 10대 집단 폭행 살해’ 피해자의 누나 A(23)씨를 대구 직장 인근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대구=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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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출신인 동생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광주로 간 건 지난해 7월이었다.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B군은 ‘대학 진학’ 대신 고3 마지막 학기를 이곳에서 보내며 기술을 익힌 뒤, 학교가 연계해준 회사로 곧바로 취직할 계획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홀로 3남매를 키우셨거든요. 오빠도, 저도 성인이 되자마자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동생도 일찍 취업하고 싶어 했던 거 같아요. 엄마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요." A씨가 말했다.

그러나 B군의 효심은 ‘악연(惡緣)의 시작’이 돼버렸다. 직업학교에서 전북 순창·전남 곡성 출신 동갑내기 무리 4명을 알게 된 것이다. 이들 중 한 명은 폭행으로 소년원에 다녀온 전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은 지난 2월 졸업 후 전남 담양에 있는 한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직했지만, 이들과의 질긴 인연은 떼어낼 수가 없었다.

B군은 당초 회사에서 보증금을 대고 구해준 광주의 한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나 한 달도 못 가 회사를 그만뒀고, 혼자 살던 방에서도 나왔다. 결국 지난 3월, 4명의 무리가 모여 사는 원룸으로 ‘불려’ 들어갔다.

가족들은 사고가 있을 때까지 B군이 혼자 사는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처음 기사 났을 때 가족들이 ‘그 친구들이랑 같이 살았다고?’ 했어요. 동생이 말을 안 했거든요. 불과 5월 초까지만 해도 필요한 게 있다고 해서 예전 살던 집으로 택배도 보내줬는데… 동생이 착하니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거기 끌려갔다고 말을 못 했던 거 같아요."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들은 "술이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때리려고 B군을 불러들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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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10대 4명이 광주 북구의 한 원룸에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날 이곳에서 B(19)군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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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옮겨간 원룸은 ‘고문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유족 측 변호인은 "가해자들이 B군을 불러들인 것은 술·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그냥 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며 "청소기나 철제목발 등 여러 도구로 하루에 100대씩 지속적으로 때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때리지 않은 날은 B군이 너무 몸이 부어 몸을 가누지 못한 때 뿐이었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물고문도 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들은 몸져누운 B군을 배경으로 조롱하는 랩도 만들어 불렀고 낄낄댔다.

"눈을 못 뜨고 죽어가고 있고, 피고름이 차서 밖으로 터지고 있고" "너는 움직이지도 못해. 살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그래도 나가서 일을 해야 하지" "피고름이 가득찬 피끓는 20대" 비트(박자)에 맞춰 읊은 가사였다.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분석)을 통해 복구된 가해자 휴대폰에서는 이같은 모습이 담긴 영상 3개가 발견됐다. 폭행당해 부어 있는 피해자의 몸을 전신나체로 찍은 사진 10여 장도 나왔다. 즐기고자 남긴 영상이 되레 ‘증거 자료’가 됐다. 부검 결과에 따르면 항문도 파열돼 손상된 상태였다. "이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이에요? 너무 더럽고, 추악하다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상상 이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동생한테 해놨잖아요. ‘화가 났다’고도 표현하지도 못할 만큼 기가 차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A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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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10대 피의자가 명품 모자를 쓴 채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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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한 달여 전부터 갑자기 동생이 돈을 달라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생전 용돈 같은 거 달라는 소리도 잘 안 하는 애였어요. 그런데 대뜸 5월 초에 ‘친구한테 40만원을 빌렸는데 못 갚았다’면서 돈을 줄 수 있냐는 거예요. 그때는 의심 없이 보내줬어요. 근데 5월 말에 또 전화가 왔어요. ‘술을 마시다가 친구 휴대폰을 하수구에 빠뜨렸다고. 100만원을 달라’고. 가족들한테 다 전화를 돌려서 횡설수설했어요." A씨는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고 했다. "100만원이면 휴대폰을 새로 사는 돈이라고, 제대로 알아봤냐고 막 물었어요. 애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은 거예요. 결국 돈을 안 줬어요. 너무 이상해서."

그리고 며칠 뒤인 6월 5일, 동생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100만원은 못 줘도 친구한테 20만~30만원은 줘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거짓말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어디다 쓸 거냐’ ‘월급은 어디 갔냐’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꼭 누가 옆에서 듣고 있어서 입을 다무는 것처럼…" 그게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들은 B군에게 금품 갈취도 일삼아 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화점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월급 75만원도 몽땅 빼앗아, 먹고 마시는 데 썼다.

A씨는 가장 후회되는 기억으로 그날을 꼽았다. "내가 돈 달라고 했을 때 줬으면 덜 맞지 않았을까.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말 하지 말고 그냥 줄 걸. 그러면 우리가 애를 마지막 순간이라도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인터뷰 내내 애써 담담했던 A씨의 눈에 처음으로 물기가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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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10대 폭행 살해’ 피해자 누나 A(23)씨의 휴대폰 뒷면 케이스에 꽂혀 있는 B(19)군의 사진 3장. /대구=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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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진 사진 3장이 눈에 띄었다. 동생 B군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원래 넣고 다닌 건 아니었는데 이번 일 있고 나서 (넣어놨어요). ‘내가 동생 몫까지 더 오래, 열심히 살아야지’ 이런 다짐을 잊지 않으려고요. 사람이 눈에 안 보이면 잊혀진다잖아요."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A씨는 말했다.

"제가 엄마랑 오빠한테 그랬어요. 지금 울면 우리 막내만 불쌍해지는 거라고. 재판 끝나면 울자고. 그래서 남은 세 가족이 기운 차려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검찰 송치 때 영상으로 가해자들 얼굴을 처음 봤는데 죄책감이 전혀 없어 보이더라고요. 반성을 하든 안 하든 그들 마음인데, 걔네들 꼭 받을 수 있는 벌을 최대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A씨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대구=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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