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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잠들었던 오백 나한 …그 속에서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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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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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展).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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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사 오백나한

굳은 돌 너머

푸른 숨결

오백 법문 읊조리고

어스름 미소

천년 주인공

매무새 풀고 다가오라

세상길

돌무더기 길

달빛 아래 건너 주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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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의 포스터. 은근한 미소를 짓는 얼굴을 강조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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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성황리에 전시 중인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을 관람했다. 전시 주제가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이란다. 주제명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작년에 춘천국립박물관에서 큰 갈채를 받았던 전시라 그런지 여러 매스컴에서 극찬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전시실에 들어가니 온통 컴컴해 영화관에라도 들어온 듯하다. 두 눈이 서서히 적응하며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두운 방 안은 우리를 차분하게 이끄는 힘이 있다. 이곳에서만큼은 번잡한 세상사를 잠시 잊고 새로운 국면으로 초대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검은 벽면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은 그믐 하늘의 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돌 나한상만이 내 의식을 사로잡는다.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나한상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눈의 초점이 모이자 나는 저절로 '아!' 하고 탄식을 짓고 말았다. 한 자 남짓한 크기의 거친 화강암 조각상이 검은 좌대에 앉아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데 마치 내게 무어라 말을 거는 것 같다. 넓고 높은 공간에서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며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어디 숲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이다.

32개의 돌 나한상이 어찌 표정과 자세가 그렇게 다르고 특색이 있는지 모르겠다. 눈, 코, 입 최소한의 형태만으로도 다양한 표정이 연출되는 것이 감동이다. 하나하나의 절묘한 미소에 걸음을 멈추니 시간도 멈춘 듯하다. 심지어 어떤 좌대 앞에는 편한 의자까지 마련해두어 맘껏 대화를 나누어보라 한다.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뒤에서 바꾸어가며 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관람객 모두 소중한 순간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잠시 아뜩한 현기증을 느꼈다. 다리가 풀리는 기분도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면에 긴 의자가 배치돼 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잠시 쉬면서 전체 작품을 감상하라고 배려해 둔 것이리라. 저쪽 좌대 한 곳이 비어 있다. 각자 나한이 되어 빈 좌대에 오르라는 의미겠다. ‘스탕달 신드롬’에라도 걸린 것일까. 이해해서 아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어떤 가락에 동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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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의 돌이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다. 비슷한 듯, 다른 표정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어 시간이 멈춘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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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앞쪽은 직사각형이고 뒤쪽은 원형이다. 흔히 말하는 원방형(圓方型)인데 원형은 하늘을, 방형은 땅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공간형태다. 단군왕검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도, 불국사 석굴암도 원방형을 따른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작품과 대화를 나눠보려는 데 예정에 없었던 큐레이션이 열린다. 그것도 이 전시를 총감독한 춘천박물관장이란다. 전시의도와 작품 배경해설이 정말 생생하다. 말이 폭넓고 유머러스해 이해가 깊어진다. 나한상에 다가가 낱낱이 알고 싶은 나의 간절함이 받아들여진 것일까. 인연이 이끈 것일까.

2001년 영월에서 밭을 갈던 농부가 우연히 석상들을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발굴하니 그곳이 12세기 고려 중엽 창령사 터였다. 나한은 범어 ‘Arahat’의 음역으로 원래 부처께 직접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각자를 일컫는다.

오백나한은 신처럼 추앙되는 부처와 달리 우리 같은 범속한 사람이었으나 부처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기에 더 친근하고 접근하기 쉽다. 어떤 전형적인 모습인 불상과 달리 오백나한은 파격의 자세로 인간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우리에게 친구이자 위로자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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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오백나한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들은 범인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어 경지에 다다랐다.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데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공감이 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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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은 여럿인지라 모든 사람의 인생길을 대표한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나한이 한 분쯤은 있겠다 싶은 거다. 그래서 오백나한은 임금부터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기도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 때 가뭄이 들면 임금이 직접 나한재(羅漢齋)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 이성계도 왕이 되게 해달라고 나한재를 드렸단다. 그러다가 세조 때 누군가 단종을 위해 나한재를 드리다가 발각돼 집권세력이 시기했고, 창령사를 훼손하면서 오백나한상의 목을 자르고 땅에 파묻은 것은 아닌지 추측한다고 설명한다. ‘숭유억불’ 정책과 정치적 음모에 공연히 백성의 신앙과 뛰어난 예술적 기품이 600여 년 동안 잠든 것이란다.

다행히 때가 돼 ‘고려의 미소’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기쁨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우리나라 조각과 미술품의 진수는 오묘한 미소에서 그 가치가 빛난다. 신라의 미소는 대표적으로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기와에 새긴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찬연히 빛난다.

백제의 미소는 ‘서산 마애 삼존불’에서, 조선의 미소는 안동 하회탈에서 느낄 수 있다. 그동안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에서만 보았던 고려의 미소, 관음보살의 미소와 아주 다른 오백나한의 미소를 알게 되어 그 질과 폭이 풍부해졌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에는 마주하는 사람의 무장을 해제하는 힘이 있다. 실눈처럼 뜬 눈웃음, 입을 살며시 벌린 것, 기둥 뒤에 숨은 미소, 단정치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입술, 화강암에 철회현상이 들어 붉은 입술연지를 바른 듯한 것까지 정말 다양하다.

마주하는 사람의 무장을 해제하는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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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기분이 든다. 깨달음을 미소로 표현하는 이유는 달빛의 은은한 비춤을 비유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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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보여준 전시형태와 여러 가지로 달랐다. 현대 설치 작가인 김승영 작가와 협업해 현대인들이 접근하기 더 좋게 했다. 700여개의 여러 나라 제품 스피커를 탑처럼 쌓고 도시의 직선적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가끔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잘 들으면 깨달음으로 이끄는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중앙에 먹물 분수를 만들어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상징을 나타냈다. 스피커 사이사이 나한상 중에 얼굴만 있는 나한상은 절창이었다. 베토벤처럼 위대한 음악가가 몰입해 자신의 곡을 지휘하는 듯한 울림이 나왔다. 내 작은 가슴이 또 울렁인다.

깨달음은 무엇인가. 또 오랫동안 어두운 땅에 파묻혔다가 이제 밝은 미소를 드러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깨달음을 미소로 표현하는 이유는 달빛의 은은한 비춤을 비유하는 게 아닐는지. 나한은 허물을 잔뜩 지닌 보통사람으로서 깨달음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타인의 허물을 단죄하기보다 누구라도 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멘토 같은 역할을 한다.

비슷한 말이 노자 27장에 나온다.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구제하여 포기하거나 버리는 사람이 없으며, 사물도 잘 건져 버리는 물건이 없다. 이를 일컬어 ‘습명(襲明)’이라고 한다.” 여기서 ‘습(襲)’자의 해석이 몹시 어렵다. 보통은 밝음을 ‘거듭 깨닫는다’ 정도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襲의 원뜻은 죽음이 엄습해 온 시신을 염하며 두 벌 옷을 입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습명은 빛이 너무 밝아 세상 사람의 눈을 상하는 게 걱정돼 빛에 너울을 씌운 것을 말한다. 마치 하느님을 뵙고 십계명 판을 받아들고 내려온 모세가 광야의 죄 많은 유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빛나는 자기 얼굴에 너울을 썼다는 거와 같은 맥락이다.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지며 언행일치를 이루는 사람이다. 자신에게는 엄하며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외유내강의 모습을 지닌다. 오백나한의 미소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미소와 너울의 참뜻은 세상에는 아직도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있겠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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