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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Tech & BIZ] 499달러짜리 중국 초고화질 TV의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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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가전 업계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중국 가전업체인 TCL이 1분기 북미(미국·캐나다) TV 시장에서 처음으로 판매량 기준 1위를 차지하는 이변(異變)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세계 TV 시장 1·2위인 삼성과 LG를 모두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세계 TV 시장 출하량 점유율에서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10.8%)를 꿰찼다. 금액 기준으로 보면 삼성·LG·소니보다 아래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양(量)적인 성과를 낸 셈이다.

질(質)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는 지난달 '최고의 대형 할인 TV'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톱 5 제품에 삼성·LG와 함께 TCL의 제품을 꼽았다. 이 매체는 "2018년 모델의 훌륭한 가성비를 보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평했다. 미국 최대 가전 판매점 베스트바이에서 65인치 UHD(초고화질) 삼성 TV가 599.99달러(약 71만원)지만, 비슷한 성능의 TCL 제품은 499.99달러로 100달러가량 싸다.

북미 시장 1위 꿰찬 중국 TCL의 진군

TCL의 '깜짝 1위' 배경에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단기적 밀어내기 성격이 있다는 분석과 함께 중국 가전의 무서운 굴기(崛起·우뚝 섬)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중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중국 업체가 북미 TV 시장 1위를 차지한 사건은 다각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는 "메인 TV는 삼성·LG의 프리미엄 제품을 사지만, 추가로 놓는 세컨드 TV는 가성비를 따지는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500달러 이하 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TCL의 장기(長技)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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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9에서 관람객들이 중국 가전업체 TCL의 부스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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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산(産) 수입품 전체에 25%의 고율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TCL이 중국산 '물량 밀어내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진투자증권 노경탁 애널리스트는 "TCL의 1분기 북미 지역 출하량은 전년 대비 112%나 급증했다"며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고 축적을 위해 출하량이 크게 증가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장조사업체의 출하량 개념은 최종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조사가 유통업체에 넘긴 물량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TCL과 하이센스는 중국 생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저가 정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업체 성공 방정식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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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L은 1981년 TTK라는 이름의 소형 카세트 테이프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1985년 일본 선도 업체인 TDK로부터 유사 상표라는 이유로 피소당해 사명을 TCL로 바꿨다. TV뿐만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스마트폰까지 만드는 종합 가전업체다. 창업자 리둥성(李東生·62)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기술력과 덩치를 동시에 키웠다. 2002년에 독일 가전업체 슈나이더일렉트로닉스, 2003년에는 프랑스 전자회사 톰슨의 TV 사업을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통신업체 알카텔의 휴대폰 사업 부문을, 2016년에는 스마트폰 '블랙베리' 브랜드까지 사들였다. 시가총액은 430억위안(약 7조3500억원).

TCL은 한국 업체들의 성장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삼성·LG처럼 TV용 패널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수직 계열화했다. 디스플레이 업체 차이나스타(CSOT)가 자회사다. 올 하반기에는 8K(UHD 대비 4배 선명한 해상도) 패널을 본격 양산하고, 2020년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QLED(양자점 발광 다이오드) TV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자발광 QLED는 현재 삼성도 개발 중인 제품이다. 광고 모델로 세계적인 축구 스타 네이마르를 기용하고, 미국 LA 할리우드 거리 중심가의 극장 이름에 'TCL 차이니즈 시어터'란 이름을 붙이는 등 스포츠·문화 마케팅에도 공을 들인다.

TCL은 현재 한국에도 진출해 있다. 지난해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에 입점해 65인치 UHD TV를 삼성·LG의 절반가에 판매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저(低)화질의 영상을 4K 수준의 고화질로 보정해주는 기능을 탑재했고, TV 두께도 9.7㎜로 얇다.

온라인 구매 후기에도 "싼 가격에 성능도 준수하다" "가성비 좋은 TV"라는 호평이 많다. 아직 유통망이 제한돼 한국 시장에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스마트폰·생활 가전에선 샤오미가, TV는 TCL이 침투하며 조금씩 벽을 허물고 있는 형국이다. TCL은 저가의 비결을 "전 세계에 2000만대 이상의 TV를 팔고 있고 TV의 모든 원자재를 자체 생산해 비용을 낮게 유지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박순찬 기자(ideac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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