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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북한 귀순 선박’ 57시간 동안 3번 보고도 손 놓은 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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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삼척항 해상 해 뜰 때까지 엔진 정지 ‘대기 귀순’

신고 주민에 “서울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 휴대폰 요구

군, 당초 장비 노후 핑계…국방장관 “관련자 책임져야”



경향신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2019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회의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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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한 북한 소형목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사흘 동안이나 군의 작전 책임구역인 동해상에 머물렀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그럼에도 군경은 민간인 신고가 있을 때까지 귀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이 과정에서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북 어선 입항은 ‘근무기강 해이’

정 장관은 북한 어선의 삼척항 입항을 ‘근무기강 해이’로 규정했다. 그는 “북한 어선 관련 상황에 대해서 우리 모두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가 100가지 잘한 점이 있더라도 이 한 가지 경계작전에 실패가 있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경계작전시스템과 전력 운용 부분의 문제점을 식별해 조기에 즉시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며 “장비 노후화 등을 탓하기 전에 작전 및 근무기강을 바로잡아 정신적인 대비태세를 완벽하게, 굳건하게 할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와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안 감시전력 보강 및 견고한 해안 감시시스템 구축 등 크게 두 방향에서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합동조사 중간발표를 통해 “경계작전 실태 조사 과정에서 일부 과오나 미비점이 발견됐다”며 “조사 진행 과정에서 지휘 책임에 대해서는 분명히 (문책이) 있어야겠다고 해서,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지난 17일 첫 발표에서 노후 장비 등 작전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보완해야 할 점은 있지만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 장관의 ‘책임을 묻겠다’는 발언이 나온 후 말을 바꾼 것이다. 군 수뇌부가 야전지휘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 무슨 일 있었나

합동·조사 중간발표를 보면 북한 선박은 지난 9일 함경북도에서 출항해 10일 동해 NLL 북방에서 조업 중이던 북한 어선군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처럼 위장 조업을 하다가 12일 오후 9시쯤 NLL을 넘었다. 13일 오전 6시쯤 울릉도 동방 30노티컬마일(약 55㎞) 해상에 도착했다. 이후 기상악화로 표류하다가 최단거리 육지방향으로 항해했다.

선박은 14일 오후 9시쯤에는 삼척항 동쪽 2~3노티컬마일(3.7~5.5㎞)에서 엔진을 끈 상태로 날이 밝기를 대기했다. 야간에 곧바로 삼척항에 접근할 경우 군의 사격 가능성을 우려한 행동으로 분석됐다. 어선은 15일 해가 뜬 이후에야 출발해 오전 6시20분쯤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 끝부분에 접안했다. ‘대기 귀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군과 해경은 57시간이 넘는 동안 이 선박의 동태를 식별하지 못했다. 북한 어선이 야간에 먼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대기에 들어가는 순간, 군의 해안감시 레이더에 미세하게 포착됐다. 당시 동해상 파고는 1.5~2m였고, 북한 어선은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였다. 레이더 감시요원들은 포착된 표적이 정지 상태여서 부표나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 그러나 군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이 선박이 나중에 28마력 엔진으로 움직였던 사실을 숨겼다.

15일 오전 6시15분쯤 삼척항 인근 해안선 감시용 지능형 영상감시체계에는 삼척항으로 접안하는 북한 선박의 모습이 1초간 2회 포착됐다. 해양수산청과 해경의 폐쇄회로(CC)TV에도 해당 선박 모습이 찍혔지만 조업 활동을 마친 남측 어선으로 판단,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는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면서 “동해상이 넓은 지역이어서 감시 정찰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북한 어선과 선원들은 15일 오전 6시50분쯤 산책 나온 주민에게 발견됐다. 신고자는 차림새가 특이한 북한 선원을 발견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북한 선원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답했다. 한 북한 선원은 “서울의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1명은 인민복, 다른 1명은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2명은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민간인으로 확인됐다고 군은 전했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에게 “GPS 흔적을 분석한 결과 북한 선원들이 어로 활동을 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목선은 처음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고기잡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북으로 돌아간 2명은 귀순 의도를 가진 선장 때문에 딸려 내려온 경우”라고 보고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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