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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돈의 고향’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 탐방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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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한 장 8단계 공정 거쳐 제작 / , 40일의 시간 소요

세계일보

지난 18일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생산공장에 요판인쇄를 끝낸 5만원 전지가 놓여있다. 한국조폐공사 제공


이순신 장군부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까지...이 위인들의 ‘현대’ 고향은?

뜬금없는 넌센스 퀴즈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힌트는 바로 ‘현대’다.

정답은 바로 경상북도 경산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이라면 위에 열거한 조선시대 위인들이 모두 화폐에 등장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화폐는 경북 경산에 위치한 ‘돈의 고향’ 한국화폐공사 화폐본부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저들의 오늘날 고향은 바로 경산이다.

18일 오후 경산에 위치한 조폐공사 화폐본부. 기자단을 태운 버스가 들어가기 전 조폐공사 관계자는 스티커 한 장씩을 배부했다. 휴대폰 카메라에 붙이라는 것. 이유는 화폐본부가 철두철미한 보안을 요구하는 ‘가급’ 국가 중요 보안시설이기 때문. 화폐본부의 모든 곳은 허가없이는 사진 촬영이 제한됐다. 7만2800㎡(2만2017평)의 건물과 46만3400㎡(14만200평)의 대지로 이뤄진 화폐본부는 출입통제시스템이 256대나 설치되어 있고, 426대의 CCTV가 출입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화폐 반출 사고를 철저히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삼엄한 보안 속에 화폐본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폐를 제조하는 인쇄처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약간 비릿한 잉크냄새가 코를 찔렀고, ‘위잉~위잉~’ 쉴새 없이 돌아가는 지폐제조 관련 기계 수십대들이 저마다의 굉음을 내며 기자단의 귀를 자극했다. 수십대의 기계가 돌아가는데다 밖의 온도도 상당히 높다보니 인쇄처 안이 무더울 법도 했지만, 선선한 느낌이었다 이유를 묻자 박상현 생산관리과장은 “지폐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이곳은 항상 온도를 23도를 기준으로 +3, -3도를 유지하려고 하고, 습도는 55%로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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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생산공장에서 5만원권 전지에 홀로그램이 부착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제공


5만원권 지폐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총 8단계의 공정을 거치며, 4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5만원권 생산의 첫 단계는 지폐의 배경을 찍어내는 ‘평판인쇄’다. 지폐의 원료는 종이가 아닌 목화 섬유다. 그래서 물에 젖어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충남 부여에 있는 조폐공사 제지본부에서 경산으로 목화 섬유가 배송되어 오면 5만원권 지폐 28개가 만들어지는 가로, 세로 각각 671mm, 519mm크기의 커다란 전지에 평판지문 인쇄로 지폐제조가 시작된다.

이후 금액을 표시하는 ‘스크린인쇄’, 위조방지를 위한 '홀로그램' 부착, 오목판에 나머지 그림을 채우는 '요판인쇄'가 차례로 진행된다. 5만원권 지폐의 띠형 홀로그램에는 우리나라 지도와 태극문양, 4괘무늬, 숫자 50000 등이 숨어있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3~4일씩 기다려야 한다. 잉크가 완전히 말라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때 잉크가 번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40여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요판인쇄를 마치면 인쇄가 잘됐는지 확인하는 전지검사를 거친다. 불량이 나오면 폐기하거나 수정작업을 거친다. 검사를 마치면 ‘활판인쇄’를 통해 일려번호를 부여받고, 낱장으로 잘려 100장씩 묶여 포장된 후 한국은행에 전달된다. 하루 동안 5만원권이 인쇄된 전지의 생산량은 약 9만장으로 이를 금액을 환산하면 약 1260억원 어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다 만들어진 5만원권을 검사하는 인쇄처 직원에게 하루종일 신사임당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게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이게 제 직업인걸요. 제겐 5만원권 지폐가 ‘돈’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합니다. 그래서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니까요”라고 말하며 씩 웃었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돈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는 직원들 덕분에 우리나라 지폐의 생산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선 불량률도 3%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위조지폐 방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조 과정에서 위변조를 막기 위해 특수잉크와 홀로그램 등의 보안장치, 특수 인쇄기술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폐를 만들기는 여간 쉽지 않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위조지폐 발생 사례는 100만장 기준으로 0.12장에 불과하다. 영국이 129.1장, 유로존 34.0장, 호주 19.7장, 캐나다 11.0장인 것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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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북 경산 화폐본부 생산현장에서 평판인쇄를 끝낸 5만원권 전지가 놓여있다. 화폐제조 첫 번째 공정은 평판인쇄로, 신사임당 얼굴의 윤곽 등 밑그림을 인쇄하고 잉크가 묻어나지 않도록 말린다. 한국조폐공사 제공


40여일이 소요되는 은행권(지폐) 생산과는 달리 주화(동전)는 일관 생산 라인 시스템 덕에 30분만에 만들어진다. 소전(무늬가 새겨지기 전 동전) 투입부터 압인을 거쳐 포장하기까지 모든 공정과 불량품 검사까지 모두 자동화된 정밀 계측기로 이뤄져있다. 하성희 주화생산관리과 하성희 차장은 “주화생산을 위한 일관 라인 시스템은 조폐공사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폐본부에는 ‘100 - 1 = 0’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이는 100개의 제품 중 고객이 99개에 만족하더라도 1개의 제품에 불만족하면 고객 만족은 0이라는 의미다.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은 “‘100 - 1 = 0’ 슬로건은 그야말로 조폐공사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기업 중 유일한 제조 공기업인 조폐공사의 핵심가치는 바로 ‘품질’이다. 돈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단 1개의 부적합 제품도 공급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어간 게 바로 ‘100-1=0’이라는 문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산=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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