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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르포] "왜 '원산'이 '안면'보다 먼저냐, 소송 불사"…보령-태안, '원산-안면대교' 이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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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태안, 다리 이름 놓고 ‘기싸움’
‘원산대교’ VS ‘솔빛대교’ 맞서자 ‘원산-안면대교’ 결정
"왜 ‘원산’이 ‘안면’보다 먼저 나오나" 태안 반발
"다리 이름에 지역명 들어가면 땅값 상승·홍보 효과"
"‘서해안 관광벨트’ 주도권 경쟁" 해석도

"다리 이름 앞에 ‘안면’이 안 붙으면, 차라리 지역명 빼고 ‘솔빛대교’로 하자."<태안군 안면도민 신창성(73)씨>

"안면도는 이미 유명하니 양보 좀 하자. 원산도를 알려야 하는데 ‘원산대교’로 하자."<보령시 원산도민 이모(62)씨>

지난 12일 오후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고남면 영목항. 태안군 ‘안면도’와 보령시 ‘원산도’를 잇는 1.76㎞ 연륙교(連陸橋)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다리 중간에는 태안의 군목(郡木)이자 보령 시목(市木)인 소나무를 형상화한 주탑(主塔) 두 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러나 두 지역의 상징이 사이좋게 새겨진 다리라는 게 무색하게 태안 고남마을 곳곳에는 ‘안면도를 우롱하는 다리 명칭 폐기하라’ ‘충남도는 즉각 다리 명칭 재심의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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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충남 태안군 영목항에서 바라본 태안군 안면도와 보령시 원산도를 잇는 대교의 모습.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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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안면대교? 태안이 바보인 줄 아느냐"
태안군과 보령시는 오는 9월 임시개통을 앞두고 있는 연륙교 지명 선정을 두고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보령시는 다리 이름에 반드시 ‘원산’이라는 지역명이 들어가야 한다며 ‘원산대교’를 주장하는 반면, 태안군은 다리 설계 단계 때부터 10년간 불려왔던 ‘솔빛대교’를 사용하자는 입장이다.

충청남도는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중재에 나섰고, 지난달 태안군과 보령시에 모두 접해있는 ‘천수만대교’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달 21일 열린 충청남도 지명위원회에서는 당초 논의되지 않았던 ‘원산-안면대교’를 다리 이름으로 의결했다. 도 지명위원회는 "보령시가 절충안인 천수만대교에 대해서도 보령 지역과 거리가 있다며 반대해 두 지역 이름이 모두 들어간 새로운 다리 명칭을 내놓게 됐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두 지역 갈등의 불쏘시개가 됐다. 그동안 한 번도 논의한 적 없는 다리 이름인데다, 지역명 순서 때문에 태안군이 "왜 원산(보령시)이 안면(태안군)보다 앞에 있느냐"며 크게 반발한 것이다.

안면도 고남리 주민 한석순(63)씨는 "어느 한쪽 지명만 들어가도 문제고, 양쪽 지명이 다 들어가도 순서를 두고 싸우니 답이 없으니 솔빛대교를 주장한 건데, 충남도에서 보령시 편을 들어준 꼴이 됐으니 태안군민 입장에선 화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태안 군민들은 "우리라고 바보라서 처음부터 우리 쪽 지명이 들어간 ‘안면대교’나 ‘영목대교’를 주장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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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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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로 태안군수는 "충남도의 결정은 시·군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명시된 법률 위반이자, 지자체 간 싸움을 부추긴 졸속 행정"이라며 "지역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도(道)에서 어느 한쪽 편만 들어선 안 된다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소송도 불사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태안군은 전체 군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만3000여 군민이 서명한 탄원서를 충남도청에 제출했다.

◇도대체 왜? "사실상 서해안 관광벨트 주도권 경쟁"
보령시와 태안군이 다리 이름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이유는 ‘충남 서해안 관광벨트’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10일 보령시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 국내 최장 6.9km 길이의 해저터널이 뚫린 데 이어 연륙교까지 개통되면, 보령 대천항·대천해수욕장에서 원산도와 안면도까지 한 번에 육상으로 이동이 가능한 관광벨트가 형성된다.

보령시 관계자는 "서해안 관광벨트가 완성되면 원산도에도 상당한 경제효과가 유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1000여 명이 거주하는 원산도를 다리 이름에 넣음으로써 관광객들이 서해안 관광벨트 중심에 있는 원산도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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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고남면 곳곳에 붙어있던 ‘원산-안면대교’ 지명 철회 요구 플래카드.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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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보령시는 지난해부터 원산도를 관광벨트 거점으로 키우기 위해 해양관광 단지 조성 사업에 나섰다. 보령시는 대명레저산업과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약 7000억원 투입해 2400실 규모의 초대형 리조트와 워터파크, 승마장, 캠핑장 등 해양리조트 건설을 추진 중이다. 보령시는 리조트가 문을 열면 4만3000명의 고용창출과 생산유발 2조4723억원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안 안면읍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전성현 반석공인중개 대표는 "다리가 놓여지는 것만으로도 외지와 접근성이 확연히 좋아져 양쪽 도(島)는 모두 수혜를 입지만, 다리 이름에 지역명까지 들어가면 땅값이 더 오를 수 있다"면서 "안면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연산도는 이왕이면 다리 이름에 지역 명칭을 넣어 도를 홍보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지에서 만난 태안군과 보령시 주민들도 ‘지역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관광 1번지’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원산도민 이모(62)씨는 "다리 이름은 지역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안면도는 이미 관광지로 유명하니 원산대교로 이름을 양보할 만하지 않으냐"고 했다. 반면 안면도민 신창성(73)씨는 "보령시 요구처럼 지역 이름을 다리에 쓸 거면, 이미 관광지로 유명한 안면도가 앞에 나와야 대중들도 쉽게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령·태안=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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