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와이즈 어니스트호-푸에블로호 맞교환할 수 있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21] 남·북·미 관계 다시 꿈틀되는 분위기 속 ‘새로운 모멘텀’ 기대할 수도



한겨레2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석 달 넘게 멈춰 있던 남북·북-미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6·12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지난 6월12일 남·북·미 최고지도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공개연설, 친서와 조의 전달, 친서 공개 등을 했다.

노르웨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 뒤 기자와 한 문답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6월 안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자국법 위반으로 선박째 몰수는 처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김정은 위원장 친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따뜻하고 멋진 친서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북-미 협상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건재함을 공개 확인하자, 톱다운(하향식) 방식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12일 별세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대한 조의문과 조화를 보냈다. 이를 주고받으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남북 고위 인사의 첫 공개 접촉이다. 이날 조의문, 조화 전달 자리에는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기자들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을 묻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북-미 관계가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높아졌지만, 양쪽 이견과 걸림돌은 여전하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 시한을 올해 말까지로 못 박고, 미국에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칭찬하면서도 “제재는 계속된다”(the sanctions are on)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은 해상 불법 선박 환적(옮겨싣기)이 대북제재의 빈틈이라 보고 북한을 압박한다. 미국은 서해에 불법 환적 단속 선박을 보냈고, 국무부 누리집에 대북제재 위반 사례를 신고하면 포상금 500만달러(약 59억원)를 준다는 포스터를 올렸다. 지난 3월부터 미국 해안경비대(USCG) 소속 경비함 버솔프함(WMSL-750)이 서해에서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감시·단속을 하고 있다. 버솔프함의 임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원유, 석탄 같은 상품의 환적을 단속하는 것이다. 미국이 불법 환적 의심 선박을 해군 전투함이 검색하는 것보다 해상 단속 업무가 전공인 해안경비대에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버솔프함은 경비함이지만 배수량이 4500t급으로, 한국이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병한 한국형 구축함(KDX-Ⅱ)과 비슷한 규모다.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처리도 변수다. 미국은 지난 5월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 이 배의 몰수 소송을 냈다.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지난해 북한 남포항에서 석탄 2만6500t을 싣고 운항하다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 당국에 억류됐고, 지난해 7월 미 연방법원이 압류 영장을 발급했다.

미국이 이 선박을 압류하고 몰수 소송을 제기한 근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미국 국내법상 대북 수출 제재, 수입 제재, 그리고 금융 제재 위반이다. 미국이 자국법 위반을 이유로 북한 선박을 직접 압류 몰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두고는 미국의 국내법에 근거한 외국 재산 압류·몰수 조처가 국제법으로 정당한지가 쟁점이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은 불법 거래 관련 북한 선박의 압류·몰수를 명시적으로 허용하지만, 유엔 집행기구가 아닌 회원국이 국내법을 적용해 외국 자산에 취한 법적 조처를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미국은 국내법에 따른 조처라고 하더라도 국제법적 근거가 있으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주권국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 나라 사법권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방코델타아시아 사태 재연 우려



북한은 5월1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 미국의 조처를 “불법무도한 강탈행위”이자 “6·12 조(북)-미 공동성명의 기본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지체 없이 우리 선박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북한은 5월17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냈고, 5월21일 유엔 주재 북한 대사의 기자회견, 22일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의 외신 인터뷰 등을 했다. 한대성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는 “큰 결단을 하지 않으면 협상 재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 배의 반환을 북-미 협상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가늠할 리트머스시험지로 여기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2005년 9월19일 6자회담 참가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등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직후, 미국은 국내법을 근거로 마카오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BDA의 북한 계좌에 있던 2500만달러(약 295억7천만원)가 동결됐다.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재개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와이즈 어니스트호 억류가 과거 BDA 사태 때처럼 북핵 협상을 가로막을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 평가했다. 그는 최근 워싱턴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북·미가 서로 압류 자산을 교환하는, 와이즈 어니스트호와 (1960년대 북한이 나포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교환하는 수준의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푸에블로호를 돌려받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굉장한 업적이 되니 김정은 위원장한테도 나이스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와이즈 어니스트호와 푸에블로호를 맞교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5월25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와이즈 어니스트호 반환 요구와 관련해 “지금은 미국의 푸에블로호 반환 문제를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51년 동안 ‘대미 승전’의 상징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23일,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영해 침범’을 이유로 북한군에 나포됐다. 북한은 승조원 82명을 1968년 12월 돌려보냈지만 푸에블로호 선체는 돌려주지 않았다. 선체는 북한에서 51년 넘게 ‘대미 승전’의 상징 구실을 하고 있다.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준다면, 북한과 미국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로 들어서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이나 미국에 새로운 협상 프레임이 필요한 때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