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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를 뛰어넘은 대가는 없었다"… 중국 사로잡은 210년만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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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展

문이 열리자 기골장대한 먹글씨가 관람객을 맞았다. '계산무진(谿山無盡·계산은 끝이 없구나).' 시내 계(谿)자는 골짜기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하고, 뫼 산(山)자는 위로 올려붙여 여백을 확보했다. 게다가 무진(無盡)을 2줄로 써서 연결한 파격적 배치라니!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68세 무렵 쓴 것으로 넉 자(字)의 문자가 빚어내는 조형미에 넋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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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마지막 글씨 '판전'(왼쪽)과 5~6세에 쓴 '입춘대길'.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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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특별전이 개막했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치바이스와의 대화'전에 이은 한·중 국가 예술 교류 프로젝트다. '괴(怪)의 미학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 추사박물관 등 9개 기관과 개인 소장처 25곳에서 모은 추사의 현판·대련·서첩·병풍 등 117점이 중국에서 처음 공개된다. 추사가 1809년 연행(燕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지 210년 만이다.

◇한중묵연(韓中墨緣)의 시작

추사는 사신으로 떠나는 부친 김노경(1766~1840)을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갔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 이때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을 만난다. 필담(筆談) 대화가 이어진 첫 만남부터 강렬했다. '동쪽 나라에 이렇게 영특한 사람이 있었던가.' 노(老)학자는 즉석에서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고 휘호를 써줬고, 중국인 제자들도 출입이 제한돼 있던 서재를 마음껏 출입하게 했다. 석 달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추사는 이 연행에서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며 경학·금석학·서화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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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쓴 '계산무진'. 165.5×62.5㎝. 우에서 좌로 서서히 올라가다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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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쓴 '유희삼매(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 천진하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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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9세기 추사와 청나라 학자들 간 교류를 통해 '필묵 공동체' 동아시아를 강조한다. 옹방강과 추사가 1810년 주고받은 필담서는 그들이 맺은 묵연(墨緣)의 첫 장을 확인하는 자료다. 1817년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가 처음 나왔다. '(…) 보내준 인삼은 매우 감사하며 노쇠한 몸이 이것에 의지해 지내고 있습니다.' 무려 3m 길이에 빼곡히 써내려간 편지글에 제자를 향한 스승의 신뢰와 사랑이 묻어나온다.

◇"괴(怪)하지 않으면 서(書)가 아니다"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추사였지만 우리가 아는 추사체는 말년에 완성됐다. 전시장 말미에 5~6세 때 쓴 '입춘대길(立春大吉)'과 70세에 쓴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이 나란히 걸렸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추사가 대단한 것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며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수천년 이어져 온 중국 서법을 모두 섭렵한 뒤 우리 전통까지 융합해 창조한 것이 추사체"라고 했다.

30대의 추사가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비후한 맛을 보인다면, 50대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맛이 두드러진다. 8년간의 제주도 유배 후에는 '한 티끌도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지고의 경지'(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에 이른다.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큰 산과 강, 대자연을 보는 듯한 그의 글씨는 기상이 웅대하고 변화무쌍한 품격을 지녔다"고 했다. 우리구(吳笠谷) 중국 벼루문화위원회장은 "청나라 시대 서예의 대가인 등석여·이병수 등은 전서와 예서를 추구하는 데 머물렀지만 추사는 고전적인 각체를 두루 섞어 쓰면서 학예(學藝)가 일치하고 서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경지로까지 나아갔다"며 "중국에 수많은 서예가가 있지만 추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를 뛰어넘는 대가는 단연코 없었다"고 했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베이징=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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