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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천하제일의 명검들, 모두 '운석'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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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권 통과하며 자동 제련된 '운철검', 강도 및 내구성 우수

극소수 귀족들의 무기였던 철의 보편화...전쟁규모도 거대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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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성분 분석결과 운석으로 만든 것이 확인된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단검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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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지난 1925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황금마스크만큼 큰 관심을 받았던 유물은 단검 2자루였다. 3000년이 지나도 조금도 녹슬거나 부식되지 않은 이 검은 철제 단검이었으며, 당시에는 이집트에 아직 철제기술이 도입되기도 전이라 학계에서 큰 논란이 있었다.


해당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것은 지난 2016년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과 피사 대학, 이집트박물관 연구진이 해당 단검을 X선 형광분석법 등을 이용해 구성성분을 분석한 뒤였다. 분석결과 해당 철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그중에서도 철의 함유량이 극도로 높은 '운철(meteoric iron)'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철제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철제단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글자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이었던 셈이다.


투탕카멘의 단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운철로 제작된 운철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손꼽혔다.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검으로 알려진 '간장막야(干將莫耶)' 역시 전설상에서 운석을 제련해 만든 검으로 알려져있고, 중동은 물론 인도, 유럽 등 모든 문명권에서 운철로 제작한 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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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발견됐던 운철의 모습. 운철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마찰열로 불순물이 제거돼 철의 함유량이 매우 높고 니켈, 코발트 등 합금이 표면에 뒤덮여 녹이 슬지 않고 내구성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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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철검이 천하명검으로 손꼽혔던 이유는 철의 함유량이 많은데다 니켈 등 광물질이 표면에 뒤덮여 스테인리스 효과까지 뛰어나 수천년이 지나도 녹이 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운철이 대기권을 통과하며 발생하는 막대한 마찰열로 불순물이 모두 타 없어지고 순수한 철과 일부 금속성분만 남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렇게 형성된 운철은 니켈과 코발트 비율이 인공적으로 제조한 철에 비해 훨씬 높아지며 강도나 내구성이 매우 우수해진다.


청동기시대까지 철의 대량제조 기술은 발견되지 못한 상태였고, 결국 철제 무기는 소량의 운철로 만든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운철검은 하늘의 선택받은 지도자, 왕, 황제들의 검으로 애용됐다. 수메르 지역에서는 아예 철이란 금속 자체를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라 뜻의 '안바르(ANBAR)'라 불렸다고 할 정도다.


도검 제조와 관련해서도 각종 신화들이 만들어져 처녀의 피나 손톱, 노예의 몸 등을 달군 칼을 냉매제로 썼다는 등 설화가 난무했다. 특히 운철검은 안 그래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매우 귀한 운철로 만든 것이었기에 각종 판타지들과 더욱 잘 결합되면서 특수한 힘을 가진 무기로 신성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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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시대에 들어서 텅스텐, 니켈, 망간 등이 함류된 합금상태의 품질좋은 철광석이 대량 생산되고 이를 이용한 무기들이 등장했다. 로마제국은 이 철제무기들을 활용해 대제국을 건설했다.(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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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초기 철기시대로 넘어온 이후에도 인공적으로 대장장이들이 제조한 검은 강도나 내구성이 매우 훌륭하진 못했다. 철을 완벽히 환원시키려면 섭씨 150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했지만, 이정도 온도를 충분히 올리기가 어렵다보니 철광석을 화학적 제련을 통해 분리한 괴련철이 주로 제작됐다. 철의 함량이 낮은 괴련철로 검을 제작하다보니 운철검에 비해 강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강철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동양에서는 중국 진나라 시대 이후,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 이후부터였다.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강력한 행정력을 지닌 제국의 등장으로 텅스텐, 니켈, 망간 등이 함유된 합금상태의 품질 좋은 철광석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철은 인간의 일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신성한 철이 보편화되면서 전 세계 전쟁터의 룰도 크게 바뀌게 된다. 소수 귀족들만의 전차, 기병전에 불과했던 전쟁은 규모가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각국은 농민들의 손에 강철검을 들려보냈고, 한 회전당 수만에서 수십만명이 동원되는 집단전이 보편화됐다. 양날을 지닌 강철검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규모를 둘다 극도로 거대화시킨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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