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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월드컵]'등록선수 11만 대 5천' 계란으로 바위 깨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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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프랑스 랭스의 스타드 오귀스트-들론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여자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노르웨이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대표팀의 강채림 등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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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예견된 결과였는지 모른다. 한국 여자축구 환경에서 성적을 기대한 것 자체가 큰 욕심이었다. 4년 전 16강 진출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대표팀은 18일(한국시간) 프랑스 랭스의 스타드 오귀스트-들론에서 열린 노르웨이와 2019 FIFA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에서 1-2로 패했다.

4년 전 대회에서 사상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던 한국은 2회 연속 16강행 목표가 무산됐다. 조별리그 A조에서 3연패를 당하고 최하위로 대회 일정을 마쳤다. 1골을 넣고 8골을 실점했다.

역대 세 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 여자축구가 3연패로 탈락한 것은 첫 본선 진출이었던 2003년 미국 대회(3패·1득점 11실점)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은 대회 공식 개막전이었던 개최국 프랑스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0-4로 완패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어 필승 상대로 여겼던 나이지리아와 2차전에서 뼈아픈 자책골이 나오면서 0-2로 졌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노르웨이와 최종전에서 1-2로 져 끝내 탈락의 쓴맛을 봤다.

그나마 노르웨이전에서 0-2로 뒤진 후반 33분 여민지(26·수원도시공사)의 만회골 덕분에 ‘사상 첫 월드컵 무득점’이라는 불명예는 벗어났다.

공교롭게도 여자축구 대표팀은 비슷한 시기에 열린 20세 이하(U-20) 남자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남자 U-20 대표팀에 가려져 관심 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차가운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한국 여자축구는 2010년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같은 해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면서 황금시대를 활짝 여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더 발전하기는 커녕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됐다.

여자축구 저변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 여자축구 전문 등록선수는 1472명이다. 지난해 1539명 보다 67명이나 줄었다. 여주대, 영진전문대, 한양여대 등 여자축구 명문팀 조차 팀을 해체했다. 한양여대는 대표팀 간판스타 지소연(28·첼시 레이디스)을 배출했고 여주대는 대표팀 주장 조소현(31·웨스트햄)이 나온 학교다. 학교나 동호회에서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는 동호인 등록선수(3752명)까지 모두 합쳐도 겨우 5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였던 노르웨이는 여자축구 등록선수만 11만4059여명이다. 등록된 전문 축구클럽만도 1787개나 된다. 11만 대 5000의 저변 차이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최국이자 한국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였던 프랑스는 2019년 현재 등록선수가 13만8883명이었다.

저변이 좁아지면서 대표팀 경쟁력도 후퇴했다. 대표팀 간판스타인 지소연, 조소현 등은 이미 10년 전부터 대표팀을 이끌어왔다. 조소현은 30대에 접어들었고 지소연도 서른 줄을 바라보고 있다.

안타까운 부분은 이들을 이을만한 기대주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3~4년은 대표팀을 이끌 수있다고 해도 그 이후는 정말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여자축구의 근간인 WK리그도 침체를 이어가고 있다. 8개 구단이 경쟁하고 있지만 인천 현대제철이 6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7년 여자축구 명문 이천 대교가 해체되는 등 출범 10년도 안돼 3개 팀이 해체될 정도로 상황이 안좋다.

리그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선수들의 개인 능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소연, 조소현, 이민아(고베 아이낙) 등 해외파와 국내파의 기량 차가 현저하다.

대표팀이 조별리그 3패로 탈락했지만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프랑스전을 제외하고 나이지리아와 노르웨이전은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체력이나 조직력 면에선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골결정력, 일대일 마크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뚜렷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여자 월드컵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4년 뒤엔 개최국으로 본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출전과 별개로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저변 확대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부상 악재가 대표팀 발목을 잡았다. 주전 골키퍼 윤영글(한수원)이 무릎 수술로 출전이 무산됐다. 그 자리를 메울 베테랑 김정미(현대제철)는 최종 소집을 앞두고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최종 소집 멤버 중 그나마 A매치 출전 경험이 가장 많은 강가애(스포츠토토) 마저 허벅지 부상으로 정상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 월드컵 이전까지 A매치 2경기 출전에 머문 신예 김민정(현대제철)이 본선 내내 골문을 지켜야 했다.

노르웨이전을 마친 뒤 지소연은 “이 아픔을 너무 빨리 잊지 않고, 각자 팀에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뼈있는 소감을 전했다.

주장 조소현 역시 “좋은 선수가 많은 유럽 등 해외에서 경쟁하면 더 기량이 늘고,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라며 “패기 있는 어린 후배들이 많이 올라와서 저희와 경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덕여 감독은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던 반면 우리 선수들이 위축된 경기 운영을 하면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아쉽지만 4년 전 대회보다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은 향상됐다고 본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대표팀 선수 대부분은 소속팀으로 돌아간 뒤 24일부터 재개되는 WK리그에서 뛰게 된다. 잉글랜드에서 활약 중인 지소연, 조소현은 새 시즌을 준비하고 일본 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민아도 시즌을 이어간다.

여자축구 대표팀은 오는 12월 부산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한 뒤 내년 2월 도쿄 올림픽 예선전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