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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아이 멍 자국 내밀어도…CCTV 공개 버티는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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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설치는 의무화됐지만 공무원 동행 열람 신청해도

어린이집 ‘사생활 침해’ 등 이유 열람 거부하면 뾰족수 없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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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ㅅ어린이집에 당시 15개월된 딸 민지(가명)양을 보낸 박정은(가명·29)씨는 등원 5일째 되는 지난 4월5일 저녁 민지 오른쪽 팔에 멍 자국이 다섯 군데나 있는 걸 발견했다. 전날 목욕시킬 때 없던 멍이었다. 박씨는 주말을 넘긴 8일 ㅅ어린이집 원장에게 시시티브이(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원장은 박씨에게 “경찰을 데려와야 보여줄 수 있다”며 열람을 거부했다.

이에 박씨는 보건복지부에 해당 사실을 문의했고,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거나 관계 공무원이 동행할 경우 시시티브이를 ‘즉시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한 정형외과에서 ‘팔꿈치, 어깨·위팔 타박상’ 진단을 받고 다시 원장에게 시시티브이 열람을 요청했다. 하지만 원장은 여전히 열람을 거부했다. 박씨는 경기도 광주시청 여성보육과에 신고했고, 담당 공무원은 “11일로 시시티브이 열람 약속을 잡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4월11일에도 박씨는 시시티브이를 볼 수 없었다. 박씨는 시청 공무원과 함께 의사 소견서를 챙겨 ㅅ어린이집에 찾아갔지만, 원장은 “박씨가 뗀 의사 소견서를 믿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박씨와 시청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당시 ㅅ어린이집 원장과 원장의 남편은 임신 35주차인 박씨에게 “만약 시시티브이 영상을 본 뒤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언성을 높였다. 박씨는 “1시간 동안 ㅅ어린이집 원장과 그 남편에게 ‘옛날에는 선생님 그림자에 금도 안 밟았는데, 어른한테 무슨 태도냐. 천벌을 받을 거다. 어디서 갑질을 하냐’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고성이 오간 끝에 결국 시청 공무원은 박씨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본인만 시시티브이를 봤다. “상황이 지속되면 싸움으로 번질 것 같다”는 이유였다. 시시티브이를 보고 나온 공무원은 박씨에게 “시시티브이를 본 결과 학대 정황이 없다”며 “어린이집 원장이 언제라도 박씨가 원하면 시시티브이를 보여주겠다 했다”고 전했다. 결국 박씨는 이후에도 한 번 더 시시티브이 열람을 거부당한 뒤 4월24일 경기 광주경찰서에 ㅅ어린이집을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박씨는 “공무원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시청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ㅅ어린이집 원장은 1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씨가 지난 4월8일 시시티브이 열람을 요청한 뒤 그날 저녁 시시티브이를 보러 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서 “학부모들의 열람 요청에 일일이 대응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 학부모가 주장하는 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광주경찰서에서 시시티브이를 열람한 결과 학대로 의심될 만한 정황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씨가 시시티브이를 확인하고 싶은 건, ㅅ어린이집 원장이 1년 전 운영했던 같은 동네 ㅂ어린이집에서도 아동학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ㅂ어린이집에 3살 아들 민우(가명)군을 맡겼던 양숙희(가명·37)씨는 4월 말 민우가 어린이집에 다녀온 뒤 팔꿈치가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아이들이 어깨는 빠질 수 있지만 팔꿈치는 성인이 힘으로 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우는 2주간 팔에 반깁스를 해야 했다. 양씨는 “시시티브이를 보니, 아이가 팔이 아프다고 울고 있는데 원장이 옆에서 걸레질하며 못 본 체하고, 아픈 팔을 잡아 일으켰다”며 “진단서를 떼고 이틀 내내 어린이집에 가서 항의해 어렵게 시시티브이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유아보육법은 2015년 9월부터 어린이집이 의무적으로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고, 보호자가 보호 아동의 안전을 확인할 목적으로 열람을 요청할 경우 열람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영상정보 보관기관인 60일은 넘어 파기한 경우나 영유아의 피해의 정도, 사생활 침해 등을 고려해 열람을 거부하는 것이 영유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어린이집 원장이 열람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생활 침해 정도와 영유아의 이익’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에 시시티브이를 의무화하는 건 어린이집뿐”이라며 “사생활 침해와 잦은 열람 요청으로 어린이집 원장들이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7조(과태료의 부과기준)를 보면, 시시티브이 열람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1차 50만원, 2차 100만원, 3차 1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경우를 위반 횟수로 세어야 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이 때문에 박씨는 ㅅ어린이집 원장이 열람 거부를 4번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광주시청은 1회 거부로 보고 과태료 50만원만 부과했다. 담당 공무원은 “8일과 11일 ㅅ어린이집 원장이 시시티브이 열람을 거부했을 때 앞으로 보여준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믿고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며 “어떤 경우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지 명확히 나와 있지 않아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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