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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인도 견습공 월급 14만원…삼성 정규직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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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3개국 삼성 공장 노동자 129명 설문·인터뷰

월급 평균 37만원…20.9살에 입사해 37개월 근무

“고교 갓 졸업뒤 2~3년 주기 교체”

인도 견습공 급여 ‘정규직의 1/3’

월세 아끼려 2~3명이 단칸방 동거

“할당량 못 채우면 퇴근도 못해요”

시너 등 화학물질 사용 인지 못해

10명 중 4명꼴 “입사 뒤 건강 변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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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한겨레

<한겨레>는 삼성전자 아시아 공장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3개국 노동자 129명을 만났다. 인도 노이다, 베트남 박닌, 인도네시아 치카랑에서 각각 74명, 51명, 4명 등 129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해 임금과 근로시간, 안전·보건 등에 대해 직접 답했다. 삼성전자 해외 공장을 대상으로 한 이런 규모의 설문조사는 처음이다.

설문조사는 출퇴근 시간대 공장 주변에서 삼성 사원증이나 유니폼을 착용한 노동자들에게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후 심층 분석을 위해 10명의 전·현직 노동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129명 중 일부는 인터뷰에도 참여했다. 중복을 감안하면, 설문과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는 모두 136명이다. 무작위 설문이어서 통계적으로 대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 삼성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조사 내용을 소개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노동자 수십명이 순식간에 모여들기도 했다. 인도 노이다에서는 회사 쪽 관리자와 보안요원이 설문조사 중단을 요구해 일부 문항에서 무응답 비율이 높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는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류하경 변호사, 아부 무파키르 아시아노동정보센터(AMRC) 연구원,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조 디간지 아이펜(IPEN) 과학전문 상임고문 등 5명이 자문단으로 참여해 함께 분석했다. 노동자 신원 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적는다.

평균나이 24살, 월급 37만원

<한겨레>가 만난 노동자 129명이 매달 손에 쥐는 돈은 평균 37만6113원(무응답 9명)이었다. 베트남이 45만410원(900만8200동)으로 비교적 높았고, 인도는 31만6384원(1만8545루피)이었다. 근속연수가 2년 미만인 생산직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그 절반 수준인 20만5806원이었다. 일부는 초과근무 시간에 따라 월급이 15만원까지 차이 난다고 대답했다.

평균 20.97살의 나이로 삼성에 입사해 37.76개월 일했다. 대부분 삼성이 첫 직장이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것으로 추정됐다. 근속연수 중앙값(자료를 크기 순서대로 배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값)은 24개월에 그쳤다. 인도에서는 응답자 57명 중 19명이 견습공 또는 계약직이라고 답했는데 이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쫓겨날 것”이라고 답했다.

류하경 변호사는 “이들 노동자 구성은 미숙련과 저연령, 불안정 3가지 키워드로 집약된다는 점에서 국내 삼성 노동자들과 비슷하다”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 노동자들이 2~3년 주기로 교체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 인도 견습공들 “돈 없어 저녁 굶었다”

129명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들은 인도 견습공 17명이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인 이들은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적은 임금을 받았다. 견습공들의 평균 월급은 14만1921원에 불과했다. 정규직(43만275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삼성이 일을 많이 시키는 대신 돈은 많이 준다’는 통설은 반쯤 맞았다. 견습공 칼림(20)은 “내 월급은 9200루피(약 15만원)인데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은 2만루피를 받는다”며 “할당량도 같고 근무시간도 같은데 월급만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은 견습공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적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을 아끼고자 단칸방을 나눠 쓰고 저녁을 굶었다. 월급 8449루피(약 14만원)를 받는 아비드(23)는 다른 견습공 2명과 함께 원룸에서 생활한다. “4000루피에 이르는 월세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프타르(21)도 “10평이 채 안 되는 방에서 같은 견습공 2명과 함께 살았다. 거의 모든 견습공이 이렇게 생활한다”고 말했다.

전직 견습공 란초다스(25)는 “견습공을 하는 1년 내내 저녁을 굶다시피 했다”고 털어놨다. 6800루피(약 11만원)를 받았던 그는 4200루피인 월세를 룸메이트 1명과 나눠 냈다. 란초다스는 “밖에서 밥을 사 먹으려면 200루피가 드는데 부담스러웠다”며 “빵이나 우유를 사다 먹었고, 고기는 두달에 한번 정도 먹었다. 아무것도 안 먹은 날도 많다”고 했다.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밤늦게까지 공장에 남는 견습공들도 있다. 칼림은 “초과근무 1시간당 74루피(약 1200원)를 준다. 매일 2시간 하면 월급 2000루피 정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은 혹사로 이어졌다. 란초다스는 “팀장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며 “부모님이 보고 싶었지만 1년간 휴가를 한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돈문 교수는 “노동자들을 분할해서 일부에게는 혜택을 주고 일부는 배제하는 삼성 특유의 ‘분할통치’ 방식을 해외에서도 활용하고 있다”며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를 이용해 연대는 물론 사소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 6일 근무하고 잔업까지 “쉴 틈 없어”

초과근무는 일상이었다. 무응답을 제외한 115명 중 102명(88.69%)이 ‘초과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일주일에 8.88시간(3개국 평균)을 더 일했다. 할당량이 정해진 이들에게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었다. 아프타르는 “목표(할당량)를 채우지 못하면 집에 보내지 않았다. 한번은 일주일 동안 72시간 일한 적도 있다”며 “우리는 초과근무를 하기 싫었지만 팀장이 ‘그럴 거면 그만두라’고 욕을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비마(23)는 “성수기에는 주 7일 근무하고 매일 3~4시간 잔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교대 체제는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인도 노이다 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주 6일 근무하며, 2조 2교대 체제가 2주 주기로 순환된다고 대답했다. 2번째와 4번째 토요일은 휴일이지만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야간조에서 주간조로 바뀔 때는 일요일 새벽에 퇴근해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24시간 쉬고 다시 일하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되도록 짧은 주기로 순환하고, 교대가 바뀔 때는 반드시 휴일을 배치하도록 권고한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노이다 공장의 교대제를 두고 “건강에 대단히 해로운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의학적으로 3일 연속 야간근무를 하면 건강 손상 위험이 있다고 보는데, 이들은 주말에 쉬더라도 5∼6일 연속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 주야 전환 사이에 충분한 휴식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며 “생산물량이 많은 시기에 잔업이나 특근까지 할 경우 과로사 위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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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나쁜 냄새 났다”

응답자 106명 중 76명이 ‘작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함께 분석한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화학물질을 쓰거나,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더라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란초다스는 “(인도 노이다 휴대전화 공장에서 일하는) 1년 동안 화학물질을 쓴 적이 없다”면서도 “공장에서 나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품질관리 부서에서 일한 그는 한달에 15~20번 시너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닦았지만 그게 화학물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란초다스는 “병에 아무런 글씨가 없고, 사람들이 ‘신나’라고 불러서 그냥 그런 줄 알았다”며 “아무도 그게 위험하다거나 조심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시너는 희석제로 쓰이는 다양한 유기용제 혼합물이어서 실제로 무슨 성분이 포함되었는지가 중요하다”며 “화학물질 성분과 유해성, 노출 예방법과 노출 시 대처법 등을 게시하고 교육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응답한 노동자 26명도 어떤 물질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16명이 알코올이라고 대답했고, 실리콘이나 방사선, 에탄올이라고 응답한 이들도 있었다. 조 디간지 상임고문은 “알코올은 메틸알코올(메탄올), 에틸알코올(에탄올),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각각 유해성이 다르다. ‘알코올’이라고만 알려줬다면 알려주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부 무파키르 연구원도 “노동자들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화학물질의 명칭, 구성성분, 유해성, 취급주의 사항 등을 명시한 사용설명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불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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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4명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건강 변화”

무응답을 제외한 109명 중 48명이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건강에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이 중 26명은 ‘몸이 약해졌다’고 답했다. 일부는 어지러움, 코피, 불면증 등을 겪었다고 했다. 란초다스는 “교대가 바뀌면 밤에 잠을 못 잤다”며 “다음날에는 일하면서 자주 어지러웠다. 집에서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일할 때만 그랬다”고 했다.

실신, 시력 저하 등의 이상 증세를 경험했다고 대답한 이들도 있었다. 비마는 “서서 일하고 계속 작은 거에 집중하다 보니 눈이 아프고 시렸다. 어질어질할 때도 있었다”며 “같은 라인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실신은 과로나 화학물질 때문일 수도 있다. 한번이라도 발생했다면 회사 차원에서 경각심을 가지고 조사해봐야 할 내용”이라고 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이재연 김완 옥기원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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